오랜 유학 생활을 하며 서로 사귀다 결혼을 하여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말그대로 외롭고 힘든 유학 생활 가운데 우리는 서로의 가족도 되고 친구도 되어주었지요.

저에게 있어서 울 남편은 어쩌면 가족보다도 친구보다도 더 가까운 존재이면서 의지할 존재이며 내 삶을 늘 제시해주는 존재이자 아무런 비밀도 없을 정도로 친한 존재가 되었답니다.

서로 싸울 일이 있다가도 남편은 "곰곰히 생각해보니 니가 그렇게 화를 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미안..." 하며 늘 내 편에서 생각해주고 이해해주었습니다.
그런 남편이기에 나도 조금씩 자연스럽게 남편 입장에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더라구요.

근데...
요즘들어 자주 남편이 저를 섭섭하게 하네요.
예전부터도 그랬던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아기 낳기 전에는 학교도 다니고 통역도 하면서 바쁘게 생활하던 저였는데...
아기를 낳고는 육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저와 남편이였기에 서로 대화 가운데 제가 아기의 육아를 전담하며 집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하루하루 자라는 아기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솔직히 하루종일 아기와 함께 지내다가 보면 제 자신이 이러다 도퇴되어만 가는 것이 아닌가? 란 불안한 마음이 생길 때도 있고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남편도 직장생활하느라 스트레스를 왜 받지 않겠습니다만...
그래도 한번씩 남편에게 하소연 비슷하게도 하게 되고...
은근 알아서 알아줬으면 하면서 기대도 하게 되고...
근데 남편이 저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예전같지 않은거 같더군요.

어제는...
밖으로 나가야하는 약속들이 있었습니다.
근데 눈이 많이 내리더군요. 길도 많이 미끄러워지고...
아기 들쳐업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해야하는데...
지하로 계단 오르내릴때도 그렇고 그냥 다녀도 미끄러워 잘 넘어질 수도 있기에 많이 불안했습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고 우리한테 왔다가 같이 가면 되겠다 싶어 살짝 안심을 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그러더군요. 구지 내가 거기까지 갈 필요가 있겠냐고...
필요하다면 그냥 집 앞에만 나가면 안되겠냐고요...
그 말에 괜히 섭섭해지더군요.
난 우리를 데리러 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서...
근데 뭐... 그냥 그땐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완전무장시킨 10킬로가 넘는 아기를 앞에 매고 미끄러질세라 중심을 잡으며 눈길을 걸어다닌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더군요. 그것도 해가 짧아져 날이 깜깜해지니 더 불안불안하더군요.
길을 건널 때도 차도 쌩쌩지나가고 양보도 잘 안해주고...늦게 지나간다고 빵빵거리고...
그렇게 약속장소까지 도착하여 일을 보자니...
애가 또 징징거려 일보기도 힘들고...
그러는 중에 남편 퇴근 시간이 되어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언제 마치냐고 묻더군요. 근데 언제쯤 마칠지 몰라서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전화가 갑자기 끊겼습니다.
다시 제가 전화를 해서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전 남편이 우리에게로 오겠다고 하기를 바라면서 남편에게 뭐하냐고 마쳤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 남편은 그냥 회사다...... 그러고는 별 말을 안하더군요. 우리가 있는 곳으로 별로 오기 싫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 갑자기 화가 나는겁니다. 그래서 "그냥 오기 싫으면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도 기분이 나빠졌는지 그냥 끊어 라고 하며 끊었습니다.
그래도 내심 그래도 혹시?? ....왔으면 하고 바랬답니다.
근데 뭐... 남편은 끝내 오지 않고...
우리야 또다시 눈길을 헤치며 집까지 갈 수 밖에 없었지요.
정말 힘들더군요.
그러면서 후회도 했습니다. 괜히 전화로 말 한 마디 잘못했다 이 고생한다 싶기도 하고요...
근데 그러면서 화가 나기도 하더군요. 서글프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고... 이 고생을 시키냐 싶더군요.

집에 돌아와보니 남편은 컴터 앞에 앉아서 우리는 쳐다도 보지 않더군요.
다른 방으로 가서 아기와 함께 놀고 있자니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는 아빠한테도 갔다가 저한테도 왔다하며 싱글벙글거리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냥 툭 터놓고 얘기하며 그냥 이런 분위기를 되도록이면 빨리 끝내버리고 싶더군요.

그래서 남편에게 먼저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먼저 "우리한테 오긴 오려고 했냐"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은 지금 얘기할 기분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솔직히 마음에도 없는 말이 튀어나오더군요. 난 지금 당신 보기 싫다고...
그래서 다시 더 냉전상태...

각자 방에서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또 시간을 보내고 아기는 왔다갔다 하면서 놀고...
시간 얼마 지나 또다시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남편에게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로 상처준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전화로 그렇게 얘기했던 이유와 그 당시 나의 마음 상태가 어땠었고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남편이 뭐라 대답할지를 기다렸지요.
그런데도 입도 벙긋안하더라구요...

아무리 남자들은 화가 나면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실은 저는 남편에게 위로를 받고 싶을뿐인데...

근데.......
예전에는 안그랬는데?? 싶고...
내가 너무 남편에게 기대하면서 사나? 싶고...
이렇게 점점 시간이 흘러 나중에 나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거 아닌가? 싶기도하고...

그냥 좀 서글퍼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