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가장 사랑하는 슈퍼 히어로는 단연 '아이언맨'이다. 우리 집에는 '아이언맨' 피규어 십여 개가 있는데 내가 보기엔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아들은 신기하게도 이건 마크 몇이라며 달달 외운다. 그렇기에 [어벤져스 : 엔드게임]에서 '아이언맨'이 숭고한 희생을 결심했을 때 아들은 충격을 받았다. 어쨌거나 이제 더 이상 '아이언맨'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

'아이언맨'의 죽음 이후 아들의 관심사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차기작으로 모아졌다. 문제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차기작으로 주목받고 있는 영화 [닥터 두리틀]이 개봉 전부터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며 망작의 스멜을 풍기고 있다는 점이다. 아들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닥터 두리틀]이 망작일까봐 불안해하는 눈치이다.

겨울방학을 맞이한 아들과의 부산 여행. 부산으로 향하는 KTX 기차 안에서 나는 아들을 위해 에디 머피가 주연을 맡은 1999년 개봉작 [닥터 두리틀]과 2001년 개봉작 [닥터 두리틀 2]를 준비했다. [닥터 두리틀]은 부산행 KTX에서, [닥터 두리틀 2]는 서울행 KTX에서 봤으니 이번 부산 여행은 [닥터 두리틀]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

​

​

​

감독 : 스티브 카

주연 : 에디 머피

​

​

[닥터 두리틀]은 동물들과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닥터 존 두리틀(에디 머피)의 어린 시절을 보여준다. 동물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기에 친구가 없었던 어린 두리틀은 타고난 능력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귀신들린 아이 취급을 받게 된다. 급기야 가장 친한 친구였던 반려견이 자신의 능력 때문에 다른 곳으로 보내지자 다시는 동물과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시간은 흘러 성공한 의사가 된 두리틀. 자신이 일구어낸 병원을 대기업에 팔기로 하면서 이제 상류층으로 진입할 기회를 포착해낸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바로 이때 잊고 있었던 옛 능력이 되살아난다. 게다가 두리틀이 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동물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지면서 두리틀의 병원에는 치료를 받기 위해 몰려든 동물들로 가득 채워진다.

두리틀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정신과 치료를 자청하지만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야 한다는 아버지의 후회 섞인 한마디를 듣고 드디어 동물들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펼쳐 나가기로 결심한다.

솔직히 [닥터 두리틀]은 그다지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하여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려 하지 않던 두리틀이 갑자기 각성하는 과정은 85분의 짧은 러닝타임답게 뜬금없다. 그래도 충분히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왕년의 코미디 스타 에디 머피의 코믹 연기가 빛을 발하고, 동물들의 천연덕스러운 더빙이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서커스단의 호랑이 수술 작전은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 덕분에 북미 개봉 당시 1억4천4백만 달러, 월드와이드 2억9천4백만 달러의 흥행을 올리며 전성기 시절 에디 머피의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

​

​

​

​

​

​

감독 : 스티브 카

주연 : 에디 머피

​

​

어쩌면 [닥터 두리틀 2]가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닥터 두리틀 2]는 북미 성적은 1억1천2백만 달러, 월드와이드 1억7천6백만 달러로 전 편에 미치지 못하는 실망스러운 흥행을 기록했다. 이후 '닥터 두리틀' 시리즈는 두리틀의 딸인 마야 두리틀(카일라 프랫)를 내세워 홈비디오용 영화로 탈바꿈했다.

[닥터 두리틀 2]의 실망스러운 흥행 성적은 분명 명확한 이유가 있다. 영화의 내용은 숲이 벌목되는 것을 막아 달라는 비버의 의뢰를 받게 된 두리틀이 멸종 위기종인 패시픽 웨스턴 암컷 곰 아바와 서커스의 수컷 곰 아키를 짝지워줘서 법원으로부터 벌목을 막으려는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들었던 것은 멸종 위기종이 서커스단에 있다는 것부터가 의아했다. 그리고 아키가 사람을 공격했다고 벌목을 허용한다는 법원의 판단도 이상하다. 야생 곰이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사람을 공격하지 않으면 그건 야생 곰이 아니고 애완 곰이지 않은가?

가장 이상한 것은 숲을 지키기 위해 전 세계의 동물들이 파업을 한다는 설정이다. 뭐 웃자고 만든 영화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설정이다. 이미 전 편에서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닥터 두리틀'이라는 설정이 나왔기에 영화의 신선함도 떨어지는데 내용도 무리수를 마구 투척하니 지루할 뿐이었다. 과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닥터 두리틀]은 어떨까? 소문에 의하면 에디 머피의 [닥터 두리틀]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일 것이라고 하던데... 부디 아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재미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