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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톰 후퍼

주연 : 프란체스카 헤이워드, 제니퍼 허드슨, 이드리스 엘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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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츠]와 함께 한 크리스마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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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에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지 계획을 짜는 것은 나와 같은 중년에겐 참 어려운 일이다. 젊었을 땐 그저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거나, 여자친구와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장소에서 선물을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나니 크리스마스이브 계획은 좀 더 복잡해졌다. 아내에게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해주며 아들에겐 신나는 추억을 안겨줘야 한다. 아내와 아들, 둘 다 만족시켜야 하니 머리가 아플 수밖에...

주머니 사정은 가벼워졌고, 그렇다고 크리스마스이브를 밋밋하게 보낼 수는 없고, 이리저리 고민을 하던 나는 [캣츠] 개봉 소식을 듣고 '바로 이거다'싶어서 아내에게 "우리 크리스마스이브에 [캣츠]볼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내의 대답은 "며칠 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봤잖아"였다. 영화를 보자는데 웬 연극 이야기? 알고 보니 아내는 내가 보자는 [캣츠]가 영화가 아닌 뮤지컬 공연인 줄 착각했던 것이다.

솔직히 내가 노린 것도 바로 그것이다. 뮤지컬 관람료는 비싸다. 하지만 영화 관람료는 비교적 싸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영화를 보며 보낸다면 굉장히 경제적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영화는 매일 볼 수 있다. 그래서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그냥 영화가 아니고 값비싼 뮤지컬 공연 같은 영화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화이기 때문에 관람료는 저렴한데, 뮤지컬 공연을 보는 특별한 기분도 느낄 수가 있다.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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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이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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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츠]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들어 알고 있었다. 특히 영화가 개봉되기 전 공개된 영화의 스틸 사진은 나에게도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배우들이 고양이 분장을 한 모습 그대로 영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영화에겐 특수효과라는 절대적인 무기가 있다. 뮤지컬에서는 고양이에게 연기를 시킬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배우들이 고양이 분장을 한 모습 그대로 관객에게 보여줄 수밖에 없지만, 영화는 특수효과라는 무기를 이용해서 말 그대로 고양이에게 연기와 노래를 시킬 수도 있었다. 그런데 톰 후퍼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캣츠]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굉장히 이질적이다. 주인에게 자루에 담긴 채 버려진 고양이 빅토리아(프란체스카 헤이워드)가 여러 고양이들과 만나 1년에 단 하루,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고양이를 선택하는 운명의 밤을 함께 한다는 내용의 [캣츠]는 고양이 분장을 한 배우들이 춤과 노래를 부르며 관객을 고양이의 세계로 인도한다. 솔직히 아무리 고양이 분장이 완벽하다고 하지만 고양이 분장을 한 배우들의 퍼포먼스를 즐기기 위해서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만 가능하다.

빅토리아는 개성이 다른 여러 고양이들을 만나는데 그중에서 뚱뚱한 집고양이 제니애니닷(레벨 윌슨)의 퍼포먼스는 충격적이다. 제니애니닷은 쥐들을 훈련시켜 악단을 만들고, 바퀴벌레를 훈련시켜 군대를 만들었다. 영화에서 사람이 분장한 것이 분명한 쥐들의 연주와 바퀴벌레의 행렬은 아무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고 해도 엽기적이라는 표현이 딱 알맞다. 특히 제니에니닷은 바퀴벌레 군대를 소개하며 한 마리씩 입에 넣고 먹어 버리는데, 이 장면은 바퀴벌레를 극도로 혐오하는 내게 1996년작 [조의 아파트]에서 바퀴벌레 포르노 장면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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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고나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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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몇몇 엽기적인 장면을 제외하고 [캣츠]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개성이 강한 고양이들의 춤과 노래는 명품 뮤지컬 <캣츠>를 원작으로 한 덕분에 뮤지컬의 매력을 그대로 가져왔다. 특히 그리자벨라(제니퍼 허드슨)가 'Memory'를 부를 땐 전율이 느껴지기도 했다. 제니퍼 허드슨은 빌 콘돈 감독의 2007년 국내 개봉작 [드림걸즈]에서 엄청난 가창력으로 나를 홀딱 반하게 하더니 12년 만에 [캣츠]의 그라자벨라를 통해 다시한번 내게 영혼의 담긴 노래의 마력에 빠지게 했다.

늙었지만 현명한 고양이 듀터러노미를 연기한 주디 덴치와 한물간 극단 고양이 거스를 연기한 이안 맥켈런도 고양이 분장을 한 모습의 어색함을 뛰어난 연기와 노래 실력으로 만회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악역 맥캐버티를 연기한 이드리스 엘바이다. 그의 카리스마는 고양이 분장을 했음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는데, [캣츠]에서 유일하게 영화의 긴장감을 불어 넣어주는 캐릭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처음엔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점점 너무 귀여워서 키우고 싶어지는 욕망을 느끼게 하는 빅토리아를 연기한 프란체스카 헤이워드의 연기도 좋았다. (참고로 난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를 본 후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봤는데 달랑 [캣츠] 뿐이어서 신인 배우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세계적인 로열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더라. 어쩐지 그녀의 춤이 인간의 몸동작이 예사롭지 않다 싶었다. 그것은 발레의 힘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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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그리고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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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츠]의 톰 후퍼는 2012년 연말 [레미제라블]을 통해 우리나라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감독이다. 나는 [레미제라블]을 본 후 너무 감동을 받아서 <레미제라블 25주년 라이브 공연> DVD를 구입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화 [레미제라블]과 <레미제라블 25주년 라이브 공연>이 거의 똑같았다. 스토리 전개와 노래까지도... 뮤지컬 <캣츠>를 보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영화 [캣츠]도 [레미제라블]처럼 뮤지컬과 거의 똑같지 않을까?

지난 3월 메가박스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을 맡은 연극 <햄릿>을 본 적이 있다. 연극을 극장에서 본 것은 <햄릿>이 처음이었는데, 영국에서 공연된 유명한 그리고 값비싼 연극을 집 근처 멀티플렉스에서 그것도 영화보다 약간 비싼 가격으로 편안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캣츠]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것은 값비싼 브로드웨이 뮤지컬 <캣츠>를 집 근처 멀티플렉스에서 값싸고 편안하게 즐겼다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캣츠]는 영화 같지 않았고, 뮤지컬 공연 실황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건 영화가 아니고 뮤지컬 공연 실황이다'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캣츠]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미 [레미제라블]을 통해 뮤지컬 공연 같은 영화를 선보였던 톰 후퍼 감독은 [캣츠]를 통해 뮤지컬 공연과 영화의 경계를 허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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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만족, 아들은 갸우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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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 [캣츠]에 대한 관객의 혹평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특히 아들은 어느 유명 해외 신문에서 [캣츠]를 혹독하게 혹평한 이야기를 하며 영화를 보기 전부터 불안해했다. 하지만 나는 [캣츠]가 만족스러웠다. 1년에 200여 편의 영화를 보는 내게 [캣츠]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영화였다. 영화를 보며 뮤지컬 공연 실황을 보는 느낌을 받다니... 처음엔 이질적이었지만 나중엔 뮤지컬 공연의 감동에 흠뻑 빠져들었다.

아내도 생각 외로 재미있었다고 호평했다. 특히 아내는 [캣츠]를 보고 나니 뮤지컬 <캣츠>도 보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은 고양이 분장을 한 배우들의 연기가 아무래도 이상했었나 보다. 그래도 영화를 보기 전부터 불안해했던 것과 비교한다면 그런대로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데 뜻을 모았다.

어떤 이는 이 영화를 괴작이라 칭한다. 어떤 이는 이 영화를 쓰레기라 욕한다. 개인의 취향이니 이해한다. 어쩌면 내 개인의 취향이 조금 독특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뮤지컬 <캣츠>를 본다면 1인당 1만원으 관람료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인당 1만 원이라는 저렴한 돈으로 뮤지컬 공연 실황을 편안하게 즐기는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는 것만으로도 [캣츠]는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이브를 빛내준 아주 특별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