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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고명성

주연 : 김상경, 허성태, 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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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미가 풍기는 추리극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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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이 되면 허무함이 밀려온다. 금요일 저녁, 퇴근할 때만 해도 길게만 느껴지던 주말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요일 저녁의 허무함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러한 무기력함은 소파에 널브러져 멍하니 TV만 바라보게 한다. 그게 싫었다. 뭔가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열두 번째 용의자]라는 영화를 보자고 제안했다. 아내는 끔찍한 살인이 나오는 스릴러 영화를 볼 기분이 아니라고 거부했지만 나는 이 영화가 12세 관람가임을 적극 어필하며 그냥 재미있는 고전적 추리극일 것이라 설득했다.

그렇다. 내가 일요일 저녁 [열두 번째 용의자]라는 낯선 제목의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이 영화가 멍하니 내 두뇌를 자극할 추리극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아무 생각도 없이 재미도 없는 TV만 멍하니 보고 있는 것보다는 머리를 굴리며 진범을 찾는 게임에 동참하고 싶은 욕망이 컸다.

[열두 번째 용의자]의 내용은 이러하다. 한국전쟁의 전운이 채 가시지 않은 1953년 가을밤, 남산에서 유명 시인 백두환(남성진)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예술인들의 아지트인 오리엔타르 다방으로 사건 수사관인 김기채(김상경)가 들이닥쳐 다방 안 모든 이들을 용의자로 지목한다는 내용이다. 과연 백두환을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영화는 관객에게 추리 게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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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적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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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열두 번째 용의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 영화가 상당히 연극적이라는 점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롱테이크로 다방 안 인물들을 차례대로 소개한다. 다방 주인인 노석현(허성태)과 안주인 장선화(박선영)을 비롯하여 시인, 화가, 소설가들이 다방에 앉아 이런저런 잡담을 나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대부분을 오리엔타르 다방에서 진행된다. 과거 회상씬에서 잠시 오리엔타르 다방 밖으로 카메라가 나가긴 하지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영화를 보며 나는 [열두 번째 용의자]가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아닌가 의심이 되었다. 하지만 아닌가 보다.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열두 번째 용의자'라는 제목의 연극은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연극 무대로 옮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열두 번째 용의자]는 영화라기보다는 연극에 더 가까웠다.

오리엔타르 다방이라는 한정된 공간, 그리고 백두환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김기채와 열 명의 용의자들... 잠깐 영화의 제목은 [열두 명의 용의자]이다. 그런데 다방 안의 인물들은 다방 주인을 포함 열 명뿐이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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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되는 두 명의 용의자 (이후 스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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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환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비록 다방에는 없지만 한 명의 유력한 용의자가 언급된다. 바로 파리 유학을 다녀온 신여성 최유정(한지안)이다. 모두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그녀. 그녀가 바로 열한 번째 용의자이다. 하지만 영화 중간 김기채는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백두환이 살해된 장소에서 최유정 역시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는...

그와 동시에 영화의 분위기는 갑자기 급변한다. 처음엔 가볍게 백두환을 죽인 범인을 추리하겠다는 자세로 영화를 보던 나는 갑작스러운 김기채의 변신에 당혹감을 느꼈다. 그의 목표는 백두환을 살해한 범인 색출이 아닌 빨갱이를 잡겠다는 것으로, 다방 안 모두를 위협하고 나선다. 결국 열두 번째, 그러니까 마지막 용의자는 그 누구도 아닌 김기채였던 것이다.

백두환을 죽인 것도, 최유정을 죽인 것도, 모두가 마지막 '열두 번째 용의자'인 김기채의 짓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바로 이 부분에서 영화는 묵직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던진다. 결국 나는 고전적 추리극을 보겠다며 가볍게 [열두 번째 용의자]를 보기 시작했지만 영화 후반부에 가서는 묵직한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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