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2] - 음악에 대한 아쉬움보다 풍성한 볼거리에 대한 만족감이 더 컸다.
감독 : 크리스 벅, 제니퍼 리
더빙 : 크리스틴 벨, 이디나 멘젤, 조시 게드, 조나단 그로프
조용히 영화를 볼 수 있을까?
일요일 아침, 우리 가족은 7시 30분에 모닝콜을 맞춰놓고 일찌감치 외출할 준비를 서둘렀다. 멀리 놀러 가는 것은 아니다. 그저 [겨울왕국 2]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서두르냐고? 그건 조용히 여유롭게 영화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2014년 1월에 개봉했던 [겨울왕국]은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화제작이었다. 당시 거리엔 온통 [겨울왕국]의 주제곡인 'Let It Go'가 흘러나왔고, 어린 여자아이들은 하늘색 엘사 드레스를 입는 것이 유행이었을 정도이다. 그러니 거의 6년 만에 개봉한 [겨울왕국 2]가 개봉과 동시에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미 극장가는 스크린 독점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온통 [겨울왕국 2] 뿐이다. 뭐 이러한 열기는 이미 익숙하다. 화제작이 개봉할 때마다 항상 이런 식이니까... 하지만 [겨울왕국 2]는 조금 다르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극장 안에는 분명 어린이 관객들이 가득할 것이며, 영화를 보며 시끄럽게 떠드는 것은 다반사일 것이다. 우리 가족이 아침 일찍 [겨울왕국 2]의 관람을 서두른 이유는 어린이 관객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나도 아들이 어렸을 적 함께 극장 나들이를 다녔던 부모이기에 어린아이들과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는 되도록이면 성인 관객이 많은 자막 버전이 아닌 어린이 관객이 더 선호하는 더빙 버전의 영화를 선택했고, 아들에게 극장 에티켓을 교육했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어린이 관객들은 대부분 영화를 보며 대화를 나누며 앞 좌석을 발로 차고, 함께 온 부모들은 그러든가 말든가 신경을 쓰지 않거나, 최악의 경우는 코를 골며 잠을 자기도 한다. 극장은 혼자 영화를 보는 곳이 아닌데... [겨울왕국 2]를 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하필 내 뒷자리가 아버지와 함께 온 어린 남매 관객이었는데, 영화를 보며 서로 대화를 나누고, 내 좌석을 발로 찼다. '조용히 좀 해줄래?'라고 정중하게 부탁을 했지만 그때뿐, 아침 일찍 영화 관람을 서둘렀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아내는 다음번엔 애니메이션을 볼 땐 차라리 심야 영화를 보자고 한다. 조용히 영화 보기 힘든 세상이다.
엘사와 안나의 이야기... 더 무엇이 남았나?
모두들 알다시피 [겨울왕국]은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눈의 여왕'의 대략적인 내용은 단짝 친구인 카이가 '눈의 여왕'에게 납치되자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소녀 게르다가 '눈의 여왕'의 궁전에서 카이를 구해낸다는 내용이다. 그렇다. '눈의 여왕'은 애초에 악당이었고, '눈의 여왕'을 모티브로 한 엘사 역시 악당으로 태어날 운명이었다. 하지만 디즈니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 속 악당인 '말레피센트'를 주인공으로 탈바꿈시킨 [말레피센트]를 준비하며 [겨울왕국]의 엘사 역시 악당이 아닌 주인공으로 재설정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픽사에 짓눌려 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완벽하게 부활시키는 서곡이 되었다.
이제 자신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고 숨어 버렸던 엘사(이디나 멘젤)는 동생인 안나(크리스틴 벨)의 사랑 덕분에 아렌델 왕국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겨울왕국]은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가 더 남았을까? [겨울왕국 2]의 개봉 소식을 들으며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어쩌면 [겨울왕국]의 역대급 흥행 때문에 억지로 이야기를 짜내어서 속편을 만든 것은 아닌지 의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 엘사와 안나의 이야기엔 할 이야기가 남았다. [겨울왕국]의 해피엔딩 때문에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을 뿐... 혹시 [겨울왕국]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가?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엘사의 능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리고 엘사와 안나의 부모는 왜 갑자기 배를 타고 떠났다가 죽음을 당한 것일까? 이상하지 않은가? [겨울왕국 2]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6년 만에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행복한 엘사를 깨우는 의문의 목소리
엘사가 여왕의 자리에 오르며 아렌델은 평화를 되찾았다. 국민들은 엘사 여왕을 사랑했고, 엘사도 국민들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한 가지 작은 문제가 있다면 여자 앞에서 숙맥인 크리스토프(조나단 그로프)가 안나에게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허둥지둥 대고 있는 것뿐이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이때 엘사에게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을 부르는 듯한... 지금의 행복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던 엘사는 애써 그 소리를 외면하지만 불안감을 감출 수는 없다.
[겨울왕국 2]는 아렌델 왕국의 완벽해 보이는 행복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는 곧이어 이 행복을 사정없이 깨뜨려 버린다. 엘사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이상한 소리에 반응하는 순간 알 수 없는 재난이 아렌델 왕국을 덮치고, 그로 인하여 아렌델 왕국의 국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제 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엘사와 안나, 그리고 크리스토프와 울라프(조시 게드)는 과거의 비밀을 간직한 마법에 걸린 숲으로 향하여 진실을 찾아야 한다.
[겨울왕국 2]가 엘사와 안나가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방식은 상당히 효과적이다. 너무나도 소중한 행복을 모두 잃을 위기로 엘사와 안나를 몰아넣고 그들이 두려움을 떨치고 마법에 걸린 숲으로 갈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 버린다. 마법에 걸린 숲은 엘사와 안나가 어렸을 적 아버지가 해준 괴담 이야기이며, 미스터리한 안개가 입구를 봉인하고 있고, 불, 바람, 물, 땅의 정령들로 인하여 위험천만한 곳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렌델과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을...
잘못된 것을 되돌리기 위한 힘든 선택
마법에 걸린 숲에 들어온 엘사 일행은 그곳에서 수십 년간 숲에 갇혀 있었던 마티아스(스털링 K. 브라운) 중위를 비롯한 아렌델의 군인들과 그들과 대치 중인 노덜드라 부족민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을 통해 엘사는 자신의 어머니는 노덜드라 부족임을 알게 되고, 수 십 년 전 아렌델과 노덜드라 부족이 대치를 하게 된 사건에 대한 감춰진 진실을 캐내게 된다.
[겨울왕국]는 동화를 기반으로 엘사가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안나에 대한 사랑으로 아렌델의 여왕이 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렸었다. [겨울왕국 2]는 더 이상 동화에 기대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과거의 진실들을 하나씩 꺼내놓으며 엘사의 힘의 원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관객 앞에 펼쳐 놓는다. 그 효과는 꽤 만족스럽다. [겨울왕국]은 결말을 충분히 예상할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물론 안나를 마법에서 풀어줄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 자매간의 사랑일 줄은 몰랐지만... 분명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눈에 보였었다. 하지만 [겨울왕국 2]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에게 반전에 반전을 선물한다. 엘사에 대한 새로운 진실들이 자꾸 밝혀지며 영화에 대한 집중도를 더욱 높여 놓는다.
이제 이 모든 것을 되돌리려면 댐을 무너뜨려야 한다. 하지만 그 댐이 무너지면 아렌델은 물에 잠겨 사라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하지만 안나는 결심한다. 잘못된 모든 것을 되돌리기 위해서라면 지금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겨울왕국]도, 그리고 [겨울왕국 2]도,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는 주인공은 엘사가 아닌 안 나인 것 같다. 비록 대중적 인기는 엘사가 훨씬 높지만..
음악만 약간 아쉬웠다.
[겨울왕국]의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흥행 성공 덕분에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겨울왕국 2]는 6년간이나 꼼꼼하게 준비한 노력이 엿보이는 영화이다. 일단 영화의 스토리가 완벽하다. [겨울왕국]을 보며 들었던 작은 의구심들을 [겨울왕국 2]는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해소시켰다. 게다가 업그레이드된 스펙타클한 영상은 속 편에 대한 관객의 일반적인 기대치를 채워줬다. 거대하고 위협적인 바위 거인과 말의 형상을 물의 정령, 그리고 울라프를 능가하는 불의 정령의 귀여움까지... [겨울왕국 2]는 꼼꼼하게 관객을 위한 볼거리를 준비해냈다.
문제는 음악이다. 사실 [겨울왕국]의 역대급 흥행은 음악의 역할이 컸다. 2014년 겨울 온 국민의 애창곡이 되었던 'Let It Go'는 물론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등 [겨울왕국]에는 귀에 쏙쏙 박히는 음악이 많았다. 특히 나는 엘사가 'Let It Go'를 부르는 장면에서 짜릿한 감동까지 느꼈었다. 하지만 [겨울왕국 2]에는 그렇게 임팩트가 있는 음악이 없다. [겨울왕국 2] 개봉 전부터 태연이 부른 '숨겨진 세상'이 방송을 타면서 원곡인 'Into the Unknown'이 제2의 'Let It Go'가 되기를 원한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못 미치지 않나 싶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건 [겨울왕국 2]의 음악이 안 좋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겨울왕국]의 음악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Let It Go'같은 명곡이 그렇게 흔하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겨울왕국 2]를 본 후 아쉬움보다는 만족감이 더 컸다. 물론 뒷좌석 어린이 관객의 방해만 없었다면 더욱 좋았을 테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다. 그저 나중에 열풍이 조금 사그라들 때 극장에서 다시 보는 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