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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존 R. 레오네티

주연 : 키에넌 시프카, 스탠리 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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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오감 중 청각을 소재로 한 공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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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북미에서 개봉한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고작 1천7백만 달러의 제작비로 월드와이드 3억4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대박 흥행을 기록했다. 소리를 내는 순간 공격받는 극한 상황에 처한 한 가족의 숨 막히는 사투를 그림으로써 인간의 오감 중에서 청각을 소재로 하는 신선한 기획이 관객에게 먹혀 들어간 것이다.

지난 7월에 개봉한 [사일런스]는 여러모로 [콰이어트 플레이스]와 닮았다. [사일런스]는 펜실베이니아에서 동굴을 탐사하던 도중 수백만 년간 지하에 살고 있던 돌연변이 박쥐 '베스프'가 세상 밖으로 나오며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을 담았다. 지하의 어둠 속에 살았던 '베스프'는 시각이 퇴화된 대신 청각이 발전하여 소리를 내는 모든 것을 공격하고, 이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어떤 소리도 내면 안된다.

어렸을 때 사고로 청각을 잃은 앨리(키에넌 시프카)와 그녀의 가족은 '베스프'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나선다. 그들은 수화로 대화를 할 수 있기에 '베스프'의 공격에서 어느 정도 안전하다. 하지만 인간이 내는 소리는 목소리뿐만이 아니다. 작은 움직임에도 소리는 필연적으로 동반되기에 앨리의 가족은 위험에 처하고, 그럴수록 가족끼리 힘을 합쳐 위기를 헤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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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무섭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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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스]는 기본적으로 공포 영화이다. '베스프'라는 미지의 괴수를 등장시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이러한 가운데 앨리의 가족은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 하지만 과연 안전한 곳이 있긴 할까? 하늘을 가득 뒤덮은 '베스프'의 공격은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무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결국 영화는 앨리의 가족이 처하게 되는 수많은 위험을 통해 관객에게 공포를 안겨주려 한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러한 방식이 효과적이지 않다. 시각이 퇴화함으로써 청각이 극도로 발달했다는 '베스프'는 생각 외로 앨리 가족이 내는 작은 소리에 별 반응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후천적으로 청각을 잃었기에 앨리는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몇 번이나 앨리의 가족이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생각보다 '베스프'가 위력적이지 않다 보니 나는 결국 사람에 의한 공포를 기대하게 되었다. 무법천지가 된 세기말적 상황에서 결국 인간의 가장 큰 적이 인간이 아닐까? [사일런스]에서도 앨리 가족을 위협하는 몇몇 사람이 등장하긴 하지만 모두들 기대 이하이다. 앨리 가족의 차를 빼앗으려 하는 행인, 앨리 가족을 쫓아내려 하는 노부인, 앨리를 납치하려 하는 목사 일행까지... '베스프'도, 인간도 무섭지 않다 보니 [사일런스]의 공포 영화적 매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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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적자생존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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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를 제대로 못 보는 겁쟁이인 내가 무섭지 않다고 느꼈을 만큼 [사일런스]는 장르적 매력이 모자란 영화이다. 하지만 한 가지 내게 흥미로웠던 부분은 있다. 그것은 바로 진화에 대한 이야기인데, 영화를 본 후 아들과 함께 이 영화가 이야기한 진화에 대해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아들은 요즘 매주 수요일 강남출판문화센터에서 '장대익 교수와 함께하는 <종의 기원> 깊이 읽기' 강연을 듣고 있는 중이다.)

다윈의 진화론 원리 중에서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이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이나 집단이 살아남는다는 원리이다. 그렇다면 적자생존은 [사일런스]에 어떻게 적용될까? '베스프'의 경우를 보자. '베스프'가 처음부터 시각이 퇴화되고, 청각이 발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지하 동굴에 갇혀 지내다 보니 청각이 발전한 개체의 생존이 유리하게 되고, 오랜 세월이 흘러 자연스럽게 청각이 발전한 개체만 살아남게 된다. 그렇게 '베스프'는 시각이 퇴화되고, 청각이 발전한 상태로 진화를 거듭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베스프'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은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면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인간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며 수백만 년이 흐르면 시각이 퇴화된 '베스프'처럼 인간은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형태로 진화가 될지도 모른다. 이를 알기에 목사 일행은 앨리가 인류의 희망이라며 앨리를 납치하여 인류의 씨앗을 뿌리려 한다. 진화가 그렇게 단시간에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닌데, 목사 일행의 과학적 무식은 앨리 가족에겐 또 하나의 폭력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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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질문을 던지고, 나는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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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적자생존에 대해서 아들과 대화를 나눈 것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적자생존에 대한 아들의 부정적인 입장이다. 아들은 동물의 경우 적자생존이 가능하지만 인간의 경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은 자신의 짝을 고를 때 환경 적응 능력보다는 외적 매력이라는 감성적인 것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란다. 정말 그럴지도...

아들은 이 영화에 대한 몇 가지 문제점도 지적했다. 이 탐사 동굴이 공개되면서 수많은 '베스프'가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그렇다면 '베스프'는 동굴 안에서는 수백만 년 동안 어떻게 생존했던 것일까?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베스프'는 육식 동물이 확실한데, 과연 세상과 단절된 동굴 안에는 '베스프'가 번식할 수 있는 충분한 먹이가 있었을까?

뭐 사실 B급 공포 영화를 보며 너무 깊숙이 파고드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긴 하지만 [사일런스]는 영화 후반 앨리의 내레이션으로 관객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리 인류도 진화하게 될까? 침묵을 지켜야 하는 세상에 적응하고 우리의 인간성을 지켜낼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질문에 나는 대답한다. 인간은 세상에 적응하기보다는 세상을 인간에 적응시키려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기나긴 세월 세상에 적응하는 대신 '베스프'를 극복하거나 아니면 극복당할 것이라고... [사일런스]는 솔직히 그다지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아들과 인간의 진화에 대한 흥미로운 대화를 안겨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