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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쿠엔틴 타란티노

주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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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이 무려 2시간 41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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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땐 러닝타임이 긴 영화가 좋았다. 생각해보라. 똑같은 돈을 내고 영화를 보는데, 어떤 영화는 1시간 30분이고, 어떤 영화는 3시간이라면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3시간짜리 영화가 훨씬 이득이 아닌가. 아무래도 긴 러닝타임의 영화는 그만큼 많은 볼거리와 탄탄한 스토리 라인을 구축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당시 나는 시간이 굉장히 많았다. 내 취향의 영화라면 기왕이면 러닝타임이 긴 영화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러닝타임이 긴 영화가 부담스럽다. 일단 시간이 없다. 회사도 가야 하고, 남편 노릇, 아빠 노릇도 해야 하고, 영화를 보고 나면 이렇게 글도 써야 하기에 하루 24시간이 매번 짧게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2시간 이내의 영화를 선호하게 된다. 특히 나이가 드니 집중력이 떨어져서 더욱 그러하다. 일단 러닝타임이 2시간을 훌쩍 넘기면 관람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 요즘의 내 상황이다.

그런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제목만큼이나 러닝타임도 길다. 무려 2시간 41분이다. 올해 본 영화 중에서 가장 길었던 영화는 3시간 1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었다. 하지만 [어벤져스 : 엔드게임]은 오랫동안 개봉을 기다린 영화이기에 3시간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 속에 빠져들었었다. 당연히 긴 러닝타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리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이다. 잔인하기로 소문난 그의 영화를 2시간 41분 동안이나 봐야 한다고? 솔직히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관람을 주저했지만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는 두 주연의 유혹은 강렬했다. 결국 극장에 들어서며 나는 마음속으로 "도전!!!"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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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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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악동, 혹은 천재라 불리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는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의 데뷔작인 [저수지의 개들]과 그의 최고 걸작이라 칭송받고 있는 [펄프 픽션]을 보면서 나는 무덤덤했다. 이 영화들이 왜 그렇게 화제가 되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도 재미있네."라고 처음 느낀 것은 [킬 빌]부터였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극장이 아닌 비디오 대여점에 빌려 본 영화였는데, 우마 서먼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복수극에 매료되었다. [킬 빌] 이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는 극장에서 볼 것을 고민해도 되는 영화도 내게 격상되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가끔 내게 강한 거부감을 안겨준다. 이렇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가 여전히 내 취향이 아닌 이유는 너무 폭력적인 장면들 때문이다. 그의 영화를 보다 보면 폭력의 미학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데, 내겐 그러한 폭력의 미학이 두 눈을 감고 싶을 정도로 견디기 힘든 곤욕이 되곤 한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보면서 내 심장은 벌렁거렸다. 언제 폭력의 미학이 내 눈앞에 펼쳐질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1969년을 배경으로 한때 서부극의 스타였지만 이제는 잊혀 가는 배우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그의 스턴트 배우 겸 매니저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의 이야기이다. 이 두 주인공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에서 내가 우려했던 폭력의 미학이 펼쳐질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문제는 릭 달튼의 이웃에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그의 아름다운 아내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가 산다는 점이다. 잠깐... 1969년, 그리고 로만 폴란스키와 샤론 테이트? 이거 굉장히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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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 테이트, 마카로니웨스턴, 이소룡 그리고 조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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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보러 가면서 영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갔다. 단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가 주연이라는 것과 이소룡을 비하하는 듯한 문제의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 이 영화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렇기에 영화 초반 로만 폴란스키가 등장하자 나는 마치 뒤통수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특히 영화 초반 긴 머리의 남자가 로만 폴란스키의 저택에서 이사간 전 주인을 찾는 장면에서는 불안감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긴 머리의 남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살인마 찰스 맨슨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추종하는 맨슨 패밀리에 의해 샤론 테이트가 살해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했기 때문이다.

내 불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영화는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의 이야기에 전념한다. 한때는 최고의 스타였지만 지금은 주인공에게 얻어터지는 악당 역에 만족해야 하는 릭 달튼은 에이전트 마빈 슈워즈(알 파치노)에게 이탈리아에서 서부극을 찍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클린트 이스트우드로 대표되는 마카로니웨스턴(혹은 스파게티웨스턴) 출연을 제안받은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마카로니웨스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턴]이 1969년에 북미에서 개봉했다는 점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자신의 아홉 번째 영화의 제목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턴]를 본뜬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함으로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마카로니웨스턴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1984년 불멸의 명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만들기도 했다.)

샤론 테이트와 마카로니웨스턴 외에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는 1960년대 후반을 추억할만한 소재가 많히 등장한다. 비하 논란이 된 이소룡은 1966년 TV 시리즈 <그린 호넷>을 통해 할리우드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릭 달튼이 촬영장에서 만난 당돌한 여덟 살짜리 꼬마 여자아이는 추측건대 조디 포스터인 듯하다. (조디 포스터는 1962년 생으로 1969년엔 여덟 살이었으며, 얼핏 그녀가 앉은 의자에 Jodie Foster라고 쓰여있는 것을 본 듯하다. 물론 확실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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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할리우드의 추억에 빠져 있는 동안 위험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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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릭 달튼을 통해 1969년 할리우드의 추억 여행을 하는 동안 클리프 부스는 히치하이킹을 하는 어린 히피족 푸시캣(마가렛 퀄리)를 태워주고, 히피족들이 모여 사는 스판 영화 농장에 가게 된다. 스판 영화 농장은 릭 달튼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바운티 로>의 촬영장이었기에 릭 달튼의 스턴트맨이었던 클리프 부스는 스판 농장의 주인인 조지 스판를 잘 안다. 그래서 히피족들에게 점령되다시피한 스판 영화 농장의 상황을 본 후 조지 스판의 안부가 걱정이 된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팽팽한 긴장감을 내뿜는다. 그러한 긴장감 때문에 다코타 패닝의 등장을 놓치기까지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다코타 패닝이 언제 등장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한참을 검색해야 했다.)

화는 6개월이라는 시간을 훌쩍 건너뛴다. 그리고 운명의 그날 1969년 8월 9일이 된다. 영화 화면에 1969년 8월 9일이라는 날짜가 찍히는 순간 내 심장은 멎을 뻔했다. 설마설마했던 일이 이제 막 벌어지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맨슨 패밀리의 엽기적 살인 행각은 TV에서도 여러 번 소개되어 익히 알고 있었다. 특히 임신 8개월의 만삭인 샤론 테이트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이 곧 내 눈앞에서 펼쳐질 것이라 생각하니 거부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대로 극장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다행히 미카엘 하네케 감독과는 다르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1997년 국내 개봉한 [퍼니 게임]에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폭행을 당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에게 극도의 불쾌감을 선사한 적이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폭력 미학은 기본적으로 관객이 쾌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그러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역량이 가장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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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식 사랑 표현 (이후 스포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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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슨 패밀리가 찰스 맨슨의 지시를 받고 로만 폴란스키의 저택 앞에 가는 장면에서 갑자기 릭 달튼이 끼어든다. 로만 폴란스키와 샤론 테이트, 그리고 맨슨 패밀리는 실존 인물이지만 릭 달튼과 클리프 부스는 가상 인물이기 때문에 릭 달튼이 맨슨 패밀리 앞에 나서는 순간 실제 사건은 변한다. 까칠한 릭 달튼의 호통과 그가 유명 TV 스타임을 눈치챈 맨슨 패밀리는 타깃을 로만 폴란스키 저택에서 릭 달튼의 저택으로 급변경한다. 하지만 그곳엔 릭 달튼 외에도 클리프 부스가 있었다.

스판 영화 농장에서 맨슨 패밀리 중 한 명인 클렘을 시원하게 두들겨 팬 전력이 있는 클리프 부스는 총과 칼로 위협하는 맨슨 패밀리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애완견인 브랜디를 이용하게 무지막지한 반격을 가한다. 이 장면에서부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주특기인 폭력 미학이 펼쳐지는데, 로만 폴란스키 저택에 침입하여 샤론 테이트와 그녀의 친구들을 잔인하게 살해했던 맨슨 패밀리는 릭 달튼의 저택에서는 클리프 부스와 릭 달튼의 공격으로 인하여 개한테 물리고, 얼굴이 박살 나고, 심지어 화염 방사기로 불타 죽기까지 한다. 원래대로라면 너무 잔인해서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을 텐데, 그들의 악독한 행위를 알기에 오히려 쾌감이 느껴졌다. 아주 제대로 쿠엔틴 타란티노 식의 폭력 미학 쾌감에 취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쿠엔틴 타란티노 식의 사랑 표현일 것이다. 1960년대 후반의 할리우드를 사랑하던 그가 당시의 유일한 옥에 티였던 맨슨 패밀리가 로만 폴란스키 저택에서의 벌인 충격적 살인 행각을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말끔하게 지워버린 것이다. 정말 쿠엔틴 타란티노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 긴 러닝타임을 걱정했는데 몰입도가 워낙 강해서 러닝타임이 길다고 느껴지지도 않았고, 타란티노의 폭력 미학을 걱정했는데 오히려 쾌감이 느껴졌다. 이쯤 되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내게만큼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최고 영화가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