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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안소니 마라스

주연 : 데브 파텔, 아미 해머, 나자닌 보니아디, 제이슨 아이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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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와 함께 내게도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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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라는 놈은 참 무섭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것들조차 하기 싫게 만드니까. 살인적인 폭염이 지배했던 8월 한 달 동안 나는 회사와 집에만 오고 갔다. 물론 그 중간에 여름휴가도 있었지만 주말을 낀 9일간의 휴가 동안 3박4일 제주도에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휴가 동안 집에 에어컨을 틀어놓고 소파에서만 뒹굴었으니 이것 또한 더위의 힘이리라.

8월 한 달간 본 영화 리스트만 봐도 그렇다. 평소라면 영화는 내 삶의 활력소가 되었을 테니지만 8월 한 달간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극장에서 본 영화는 고작 다섯 편, 집에서 본 영화도 네 편에 불과하다. 더위라는 놈에 사로잡혀 나는 퇴근 후에도 소파로 직행하여 멍한 눈으로 TV만 바라보며 무기력증에 무릎을 꿇어버린 것이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무더위가 어느 정도 지나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 지난 월요일이었다. 덥다는 이유로 중단했던 운동도 다시 시작했고, 한바탕 땀을 흘린 후에는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한 후 영화 한 편을 봤다. 오랜만에 보는 영화이기에 가벼운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2008년 11월 인도 뭄바이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 [호텔 뭄바이]이다. 내 블로그 이웃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기도 했지만, 무기력증에 젖어있던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의미도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내 선택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지옥을 만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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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대도시 뭄바이에서 벌어진 믿기 힘든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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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던 대로 [호텔 뭄바이]는 2008년 11월 26일부터 29일, 3일간 인도의 대도시 뭄바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이슬람 근본주의자에 의한 테러를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는 그중에서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오랜 전통의 5성급 호텔 타지 마할 팰리스 호텔이 주요 무대이다. 500여 개의 객실, 40여 개의 스위트룸, 약 1,600여 명의 직원이 있는 초대형 호텔인 타지 마할 팰리스 호텔은 단 몇 명의 어린 테러리스트에 의해 완벽하게 장악당하고 수많은 희생자를 발생시킨다.

영화를 보며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 거대한 호텔의 보안, 경비가 이토록 허술한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테러 사건에 대한 뭄바이 경찰의 대응도 한심했다. 테러리스트에 맞서기 위한 테러 진압반은 사건 발생 후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투입된다. 그 기나긴 시간 동안 호텔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테러리스트의 총알에 쓰러진다.

물론 뭄바이 경찰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경찰들이 테러 진압반이 도착하기 전까지 호텔 밖에서 무한 대기를 하는 것에 반에 용감한 몇몇 경찰들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호텔에 잠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성능의 기관총을 든 테러리스트에 비해 권총으로 무장한 뭄바이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는 나는 답답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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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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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뭄바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렇기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멋진 히어로는 없다. 하지만 나는 호텔 내의 누군가가 테러리스트를 제압하고 사람들을 구해줄 것을 기대했다. 아무리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더라도 테러를 소재로 한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그런 캐릭터가 한, 둘은 꼭 있지 않은가.

후보자도 풍부했다. 테러리스트에 맞설 히어로 후보 1순위는 데이빗(아미 해머)이라는 미국인이다. 인도 상류층 여성인 자흐라(나자닌 보니아디)와 결혼한 그는 충분한 동기도 있다. 테러리스트에 맞서 갓 태어난 자식을 구하는 것, 부성애야말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게다가 데이빗을 연기한 배우가 아미 해머이다. [론 레인저], [맨 프롬 UNCLE]에서 멋진 액션 연기를 선보인 배우이다. 이쯤 되면 데이빗이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처럼 맨손으로 테러리스트를 제압하고 호텔 내 사람들을 구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2순위는 러시아 특수부대 출신 사업가 바실리(제이슨 아이삭스)이다. 전직 특수부대 출신이 잊었던 본능을 깨우고 슈퍼 히어로급 활약을 하는 영화는 많다. 나는 바실리가 현란한 손동작으로 어린 테러리스트를 쓰러 뜨리고 총을 빼앗아 사람들을 구하는 장면을 기대했다. 하지만 내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호텔 뭄바이]는 히어로 따위는 없는 현실의 냉혹함을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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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현장의 한 가운데에서 맛보는 지옥의 생생한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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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괴로웠다. [호텔 뭄바이]는 보는 내내 나는 몸서리칠 정도로 괴로웠다. 영화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마치 저 끔찍한 테러의 한가운데에서 테러리스트에게 무기력하게 당하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져 괴로웠다. 이러한 괴로움은 2시간 3분의 러닝타임 중 1시간 45분 동안 지속된다.

테러 진압반이 투입되어 테러리스트를 무찌르는 장면은 1시간 45분이 지난 후에야 나온다. 나이 어린 테러리스트들은 테러 진압반의 투입과 동시에 바닷가 모래성처럼 스르륵 무너진다. 진즉에 테러 진압반이 투입되었다면 희생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원망이 내 분통을 터트렸다.

영화가 끝나고 마치 테러 현장에서 빠져나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아르준(데브 파텔)의 표정 그대로 나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정지 버튼을 눌렀다. 2시간 동안 느낀 테러의 공포. 아마도 안소니 마라스 감독이 [호텔 뭄바이]를 통해 의도한 것은 바로 그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호텔 뭄바이]는 충분히 잘 만든 영화이다. 하지만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 영화이다. 테러 지옥 체험은 한 번으로 족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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