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독 : 이상근

주연 : 조정석, 임윤아

​

​

뭐? [극한직업]보다 더 웃기다고?

​

​

솔직히 [엑시트]의 개봉 소식을 들은 나는 이 영화의 재미에 반신반의했다. 분명 재난 영화는 여름 극장가에 어울리는 장르이긴 하지만 [엑시트]는 재난보다는 코미디에 방점을 찍은 듯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개봉 전 공개된 포스터와 스틸 사진들도 재난 영화의 긴박한 스릴보다는 코믹한 표정으로 쓰레기봉투를 온몸에 뒤집어쓴 조정석과 임윤아의 모습을 통해 코미디를 강조했다. 더운 여름에 부담 없이 웃을 수 있는 코미디도 좋긴 하지만, 재난과 코미디의 만남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지 미심쩍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러한 내 마음을 [엑시트]는 읽었던 것일까? 어느 순간부터 [엑시트]는 재난 영화가 아닌 코미디 영화임을 앞세워 홍보에 들어갔는데, 특히 지난 1월에 개봉해서 무려 1천6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일찌감치 올해 최고의 흥행 영화 자리를 예약한 [극한직업]보다 더 웃긴다는 어느 언론사의 리뷰가 눈에 띄었다. 코미디와 결합된 재난 영화라면 미심쩍은 마음이 컸을 텐데, [엑시트]는 재난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순수한 코미디 영화라며 내 미심쩍은 마음을 돌려세웠다.

폭염이 한반도를 강타한 토요일 오후, 한 발자국 걷는 것조차 한 바가지의 땀방울이 필요할 정도로 지긋지긋한 무더위 속에서 우리 가족은 [엑시트]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아내와 아들은 여전히 [엑시트]에 대한 미심쩍은 마음을 거두지 않고 있었지만, 나는 재난 영화로서는 분명 미숙하겠지만 그래도 코미디 영화로서는 괜찮을 것이라며 [엑시트]를 두둔했다.

​

​

​

재난 영화를 기대하지 않길 잘 했다.

​

​

애초에 나는 재난 영화로서의 [엑시트]는 기대하지 않았다. [엑시트] 역시 굳이 재난 영화의 짜임새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엑시트]가 재난 영화로서의 완성도를 지니려면 재난이 일어나는 상황과 그러한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이 치밀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하지만 [엑시트]는 해고에 원한을 품은 화학 회사의 직원이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도시 한가운데 풀어 놓았다는 것이 재난이 일어나는 상황의 전부이며, 비가 한바탕 내리는 것으로 대책 없던 재난을 그냥 슬그머니 극복해버린다. 만약 내가 [엑시트]를 재난 영화로 기대하고 봤다면 굉장히 실망했을 뻔했다.

결국 [엑시트]는 홍보했던 것 그대로 재난 영화를 빙자한 코미디 영화이다. 그렇기에 재난이 어떻게 일어났고,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유독가스가 가득 찬 도시 한가운데에 용남(조정석)과 의주(임윤아)를 던져 놓고 그들이 유독가스를 피해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것에서 영화의 재미를 찾는다. 심각할 필요는 없다. 대학교 산악 동아리 출신답게 용남과 의주는 유독가스를 피해 그저 위로 위로 올라갈 따름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엑시트]는 웃음을 안겨준다.

웃겼다. 그건 인정한다. 몇 년째 청년백수 신세를 면치 못하는 용남과 연회장 직원인 의주의 탈출기는 영화의 홍보 문구 그대로 짠내가 폭발한다. 그들이 유독가스를 피해 필사적으로 달리면 달릴수록 영화를 보는 관객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진다. 참 아이러니하다. 유독가스라는 죽음의 그림자가 용남과 의주를 향해 스멀스멀 다가오는데, 그것을 피해 필사적으로 달리는 모습이 웃기다니... 아마도 그건 그만큼 영화 속 재난이 진짜가 아닌 가짜 같기 때문이리라. 결국 [엑시트]의 웃음은 재난 영화의 재미를 포기했기에 가능한 웃음이다.

​

​

​

그런데 [극한직업]만큼 웃기지는 않았다.

​

​

[엑시트]에서 재난 영화의 긴박함이 아닌 코미디의 웃음을 기대하며 극장을 찾은 나로서는 [엑시트]에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엑시트]가 [극한직업]보다 더 웃기지는 않았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극한직업]은 고반장(류승룡)을 비롯한 마약반의 개성 강한 다양한 캐릭터와 계속된 의외의 상황들로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웃음을 만들었다. 하지만 [엑시트]의 웃음은 용남과 의주에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으며, 상황 또한 유독가스로 뒤덮인 도시 탈출기라는 하나의 사건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러니 웃음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유독가스가 도시 전체에 퍼지고, 다른 가족들은 헬기로 구조된 후 건물 옥상에 용남과 의주 단 둘만 남은 상황. 이때부터 [엑시트]의 웃음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그 웃음의 강도는 뒤로 가면 갈수록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엑시트]의 한계이다. 애초에 [극한직업]보다 더 웃긴다는 홍보성 리뷰에 깜박 속은 내 탓이 크다.

하지만 [엑시트]가 [극한직업]보다 덜 웃긴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극한직업]보다는 덜 웃기지만 [엑시트]를 보며 무더위를 잠시 잊을 만큼 충분히 웃었으니까. 그리고 [엑시트]에는 다른 비밀 병기가 있다. 그건 재난 영화와 코미디 영화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엑시트]만이 가진 무기인데, 그것은 바로 관객의 고소공포증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

​

​

관객의 고소공포증 유발은 이 영화의 새로운 재미

​

​

나는 심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내 고소공포증은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높은 건물의 난간에 주인공이 앉아 있는 TV나 영화 장면에서 극대화되는데, 발끝이 찌릿찌릿하며 현기증이 나서 중심을 잃고 건물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데 [엑시트]는 바로 그러한 내 고소공포증을 완벽하게 자극한다.

영화 초반 옥상으로 올라가는 문을 열기 위해 용남이 연회장 건물을 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장면은 영화의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내겐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느껴질 만큼 최고로 긴박했던 장면이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고소공포증을 느낀 것은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관객석 중간중간, 용남이 아슬아슬하게 건물 외벽을 탈 때마다 작은 비명 소리가 간간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엑시트]의 재난 상황은 긴박함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엑시트]는 코믹함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계속되는 영화 후반부까지 코믹함을 이끌어갈 수가 없다. 바로 그때마다 터져 나오는 것이 대학교 산악 동아리였던 용남과 의주가 선보이는 관객의 고소공포증을 자극하는 아슬아슬한 장면들이다. 결국 [엑시트]의 긴박함은 재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고소공포증이라는 관객의 원초적 본능에 기댄 것이다.

​

​

​

무더위 속에 느낀 찌릿함으로 만족

​

​

[엑시트]는 참 희한한 영화이다. 유독가스 테러라는 재난 영화의 소재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코미디 영화임을 자청한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배꼽을 잡을 만큼 엄청난 웃음을 관객에게 안겨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재미없는, 즉 실패한 장르 영화여야 하는데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는 내 기분은 산뜻하다. 영화를 보며 찌릿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찌릿함이 고소공포증이라는 원초적 본능에서 나온 것이지만...

대부분의 재난 영화는 재난 상황에서 등골이 서늘한 감정을 관객에게 안겨준다. 마치 내가 저 재난 상황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 그것이 재난 영화의 진정한 힘이다. 하지만 [엑시트]의 유독가스 재난은 전혀 그러한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그 대신 유독가스를 피해 달리는 용남과 의주를 통해 웃음을 안겨주고, 수위를 자꾸만 높여가는 유독가스를 피해 건물 위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을 통해 관객의 고소공포증을 유발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재난 영화의 재미이다. 이렇게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엑시트]는 새로운 재난 영화의 재미를 발견한 셈이다.

나와 같이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아내는 영화를 보며 몇 번이나 작은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아내 옆에서 영화를 보던 아들이 시끄러웠다고 할 정도로... 그런데 아내에게 '재미있었어?'라고 물으니 딱히 '재미있었어.'라고 대답한 하지 못하고 어물쩡거린다. 하긴 그 마음이 이해는 된다. 아내에게 있어서도 [엑시트]의 재미는 익숙한 장르 영화의 재미가 아닌 낯선 감정이었을 테니... 어쩌면 그러한 낯선 재미가 개봉 첫 주 300만을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한 힘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