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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조나단 레빈

주연 : 샤를리즈 테른, 세스 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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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재미는 흥행 순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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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주차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는 [어벤져스 : 엔드게임] 천하였다. 개봉 2주차를 맞이한 [어벤져스 : 엔드게임]은 1억4천7백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하며 고작 1천만 달러 흥행 성적으로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데니스 퀘이드 주연의 스릴러 [인트루더]를 14배 차이로 압도했다. 하지만 정작 내 눈길을 끈 영화는 2019년 5월 3일에 개봉해서 [어벤져스 : 엔드게임], [인트루더]에 이어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3위를 기록한 [롱 샷]이었다. [롱 샷]의 성적은 고작 9백만 달러에 불과하지만 평단과 관객의 평가가 좋고, 샤를리즈 테른과 세스 로건이라는 색다른 조합의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에서 내 호기심을 끌어냈다.

솔직히 [롱 샷]은 흥행 실패작이다. 제작비가 4천만 달러인 이 영화의 북미 최종 성적은 3천만 달러에 불과하고, 북미를 제외한 해외에서도 2천만 달러밖에 벌어들이지 못했다. 지난 7월 24일 국내 개봉 이후의 성적도 미지근한 편인데, 개봉 첫 주말 관객은 7만2천 명으로 박스오피스 순위 7위에 머물렀다. 현재까지 [롱 샷]의 누적 관객수는 17만 4천 명. 여름 흥행 대작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하고 있기에 이번 주 중에는 조용히 상영관에서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북미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다. 네이버의 실 관람객 평점은 9.29, Daum은 8.2이다. 나의 영화 블로그 이웃들도 한결같이 호평 일색이다. 이쯤 되면 [롱 샷]은 극장 간판이 내려지기 전에 빨리 서둘러 봐야 함은 당연하다. 게다가 일주일에 두 편 이상 영화를 보는 것은 중노동이라고 생각하는 아내가 주말에 [나랏말싸미]와 [레드슈즈]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롱 샷]이 보고 싶다고 선언했으니 나로서는 더더욱 [롱 샷]을 극장에서 놓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월요일 밤 [롱 샷] 관람이 급하게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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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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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 샷]은 기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영화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스토리 전개는 짜인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지고 오해로 인하여 잠시 헤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해피엔딩... 이건 모든 로맨틱 코미디가 어김없이 따라가는 스토리 전개의 흐름이다. [롱 샷]도 다르지 않다.

[롱 샷]의 남자 주인공은 프레드 플라스키(세스 로건)이다. 작은 언론사의 기자인 그는 취재를 위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네오나치 조직에 위험을 무릅쓰고 잠입할 정도로 열정과 패기, 그리고 똘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가 다니던 회사가 거대 언론사에 넘어가자 사표를 내던지고 나와 스스로 실직자가 된다. 기분 전환을 위해 친구 랜스(오셔 잭슨 주니어)와 함께 들린 호화 파티장. 그런데 그곳에서 20년 전 자신의 보모이자 첫사랑인 샬롯 필드(샤를리즈 테른)를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여자 주인공인 샬롯 필드는 어떤 사람일까? 미국 최연소 국무 장관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으로 미국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이다. 비주류 언론인이었으며 지금은 실직 상태인 프레드와 차기 대권 주자 샬롯. 외모에서부터 현재 처한 상황까지 전혀 다른 이 두 사람은 안 어울려도 너무 안 어울린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롱 샷]은 정해진 로맨틱 코미디의 길을 차분하게 걸어간다. 처음엔 유머 감각이 부족한 샬롯을 위해 연설문에 농담을 써주는 것으로 기용되었던 프레드는 연설문 작가로 지위가 상승하더니 결국 샬롯의 사랑마저 획득한다. 물론 두 사람 앞에는 꽃길만 있지 않는다. 프레드와의 스캔들로 곤욕을 치른 샬롯은 미국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꿈을 이룰 것인지, 프레드와의 사랑을 이룰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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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망가지는 샬롯을 보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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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뻔하다. 그런데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뻔하다.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하는 관객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롱 샷]은 이렇게 뻔함 위에 새로움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면서도 세부적인 사항에서는 전혀 뜻밖의 웃음을 관객에게 제공함으로써 새로움을 획득한다.

[롱 샷]의 새로움은 섹스 코미디에서 비롯된 샤를리즈 테른 망가뜨리기이다. 사실 샤를리즈 테른의 망가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국내 개봉한 [몬스터]에서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 에일린을 연기하며 파격적인 변신을 했고, 2014년 국내 개봉한 [밀리언 웨이즈]에서도 그녀는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롱 샷]의 망가짐은 [몬스터], [밀리언 웨이즈]에서의 망가짐과 다르다. 처음부터 망가지는 캐릭터를 연기한 [몬스터], [밀리언 웨이즈]와는 달리 [롱 샷]의 샬롯은 흐트러짐 없는 근엄한 차기 대권 주자였다가 프레드를 만나 조금씩 망가짐으로써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샬롯이 추진한 환경 정책이 현직 미국 대통령인 챔버스(밥 오덴커크)의 압력으로 축소되자 실망한 샬롯은 프레드와 함께 광란의 밤을 보낸다. 항상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는 워커홀릭 완벽주의자 샬롯이 프레드와 망가짐을 즐기는 장면은 마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의 몸부림 같았다. 문제는 그 이후 적대국과 인질 협상이라는 막중한 비상 임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마조마했던 상황에서 샬롯은 평소와는 다른 방법으로 임무를 완수한다. 이 장면은 [롱 샷]에서 최고로 짜릿한 명장면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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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결국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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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나는 [롱 샷]에서 프레드와 샬롯의 역할을 극명하게 나누었을 것이라 예상했다. 샬롯이 단정한 매력을 선보이고, 프레드는 샬롯과 대비되는 망가짐의 매력을 선보이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서로 대비되는 두 사람이 사랑을 이루는 과정이 [롱 샷]에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한 내 예상은 중반까지는 맞아떨어졌다. 13살 때 샬롯과 첫 키스를 한 프레드의 미숙한 발기에서부터 시작해서 파티 현장에서의 멋진 슬라이딩까지... 프레드는 시종일관 망가짐을 주도했고, 샬롯은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프레드를 통해 그동안 잊었던 웃음을 되찾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점차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광란의 밤 사건 이후 샬롯은 더 이상 단정한 차기 대권 주자에만 머물기를 거부한다. 보좌관의 눈치를 보면서도 중요한 행사 도중 프레드와 아슬아슬한 섹스를 즐기는 장면에서 샬롯의 달라진 면모가 부각된다. 특히 예상을 벗어난 샬롯의 섹스 취향은 프레드만큼이나 영화를 보는 나 역시도 당혹스럽게 만든다. 샬롯의 섹스 취향은 영화 후반부 프레드의 자위 스캔들과 더불어 이 영화의 15세 관람 등급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만약 15세 관람가 등급만 믿고 아들과 함께 극장을 찾았다면 굉장히 낯 뜨거웠을 뻔했다.

미국의 국민들은 단정한 샬롯을 원한다. 그것을 알기에 샬롯의 보좌관들은 샬롯이 프레드 대신 핸섬한 캐나다 총리 제임스 스튜워드(알렉산더 스카스가드)와 데이트하라고 부추긴다. 만약 프레드와 계속 사귀려면 지금의 프레드를 확 바꾸어 이미지 청소를 해서 단정한 프레드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꿈과 사랑을 사이에 둔 샬롯의 딜레마이고, 로맨틱 코미디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사랑의 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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