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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덱스터 플레처

주연 : 태런 에저튼, 리차드 매든, 제이미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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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튼 존의 노래는 잘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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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31일 프레디 머큐리의 삶과 음악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했을 때, 나는 극장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퀸의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는 내가 좋아했던 몇 안 되는 팝송이었기에 '보헤미안 랩소디'의 탄생에 얽힌 비화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직 국내 개봉 전이지만 북미에서 6월 28일에 개봉해서 폭발적이진 않지만 꾸준히 흥행 성적을 올리고 있는 [예스터데이] 또한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스터데이]는 비틀즈의 음악을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인데, 비틀즈는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팝 가수이다.

솔직히 나는 팝송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음미하며 듣는 편인데, 영어 울렁증이 있는 내게 팝송은 가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알아들 수 없는 랩이 난무하는 요즘 노래들도 내겐 별 감흥이 없다.) 그런 내가 '보헤미안 랩소디'를 처음 들었을 때 단번에 빠져 들었고, 비틀즈의 노래를 흥얼거린 다는 것은 그만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보헤미안 랩소디'와 비틀즈는 내게 음악적 취향과 영어 울렁증을 뛰어넘은 특별함 그 자체인 셈이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우리나라에서 관객 동원 천만 문턱까지 갈 정도로 의외로 흥행 성공을 거둔 시점에서 또 한 편의 레전드급 팝 가수를 소재로 한 영화 [로켓맨]이 개봉했다. [로켓맨]은 전 세계 3억5천만 장 앨범을 판매한 살아있는 전설 엘튼 존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하지만 [보헤미안 랩소디]에 감동했고, [예스터데이]의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던 나는 [로켓맨]만큼은 극장에서 보기를 포기했다. 엘튼 존이라는 팝 가수는 알지만, 그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전혀 모르는 내게 [로켓맨]은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팝송만큼이나 무의미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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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로켓맨]을 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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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맨] 관람을 극장에서 놓쳤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켓맨]이 내 기대작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일단 [보헤미안 랩소디]의 실질적인 감독으로 알려진 덱스터 플레처의 연출력이 기대되었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는 비록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우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지만 덕분에 연출력을 인정받은 그였기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로켓맨]은 어떤 영화일는지 기대가 되었다.

완벽하게 엘튼 존으로 변신한 태런 에저튼의 연기력도 기대되었다.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로 단숨에 할리우드의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태런 에저튼은 하지만 [후드]의 흥행 부진으로 반짝 스타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그런 그가 일루미네이션의 애니메이션 [씽]에서 선보인 가창력을 [로켓맨]에 쏟아부으며, 화려한 의상을 즐겨 입는 동성애자 팝 스타 엘튼 존으로 깜짝 변신을 선언한 것이다. 사실 [로켓맨]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엘튼 존 = 태런 에저튼' 공식이 쉽사리 상상되지 않았기에 이 난관을 덱스터 플레처 감독이 어떻게 헤쳐나갔을지 궁금했다.

일단 [로켓맨]은 그러한 나의 기대와 궁금증을 완벽하게 채워준 영화이다. [보헤미안 랩소디]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로켓맨]의 이야기는 러닝타임 121분 동안 나를 완벽하게 사로잡았고, 엘튼 존을 연기한 태런 에저튼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태런 에저튼이 저렇게 연기를 잘 하는 배우였나? 싶을 정도로... [로켓맨]을 보고 나니 덱스터 플레처 감독과 태런 에저튼이 함께 호흡을 맞춘 영화 [독수리 에디]가 사뭇 궁금해졌다. 내겐 잊힌 영화였는데, 이번 기회에 한번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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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튼 존의 노래에 감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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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내가 [로켓맨]을 극장으로 달려가 챙겨볼 정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던 이유는 엘튼 존의 노래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늦게 [로켓맨]을 보면서도 음악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로켓맨]이 음악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로켓맨]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영화 속 음악이었고, 태런 에저튼이 부른 엘튼 존의 노래였다.

[로켓맨]에서 엘튼 존의 노래는 가장 중요한 순간,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첫 번째 전환은 가수 지망생에 불과했던 레지 드와이트(엘튼 존의 본명)가 버니 토핀(제이미 벨)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는 장면이다. 천재적인 작곡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작사 능력이 별로였던 엘튼 존은 평생의 친구이자 천재적인 작사가 버니 토핀을 만나며 본격적으로 팝의 전설의 서막을 연다. 그 첫 번째 곡이 감미로운 발라드 'Your Song'이다.

'조금은 신기한 지금 이 기분, 내 마음을 숨기질 못하겠어요. 가진 돈은 없지만 만약 있다면 둘이 함께 살 수 있는 커다란 집을 살 거예요. 내가 조각가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죠. 혹시 사랑의 묘약을 만들 줄 안다면... 보잘것없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예요. 노래를 선물로 드릴게요. 오직 당신만을 위해. 그러니 내가 잊어도 이해해줘요. 하지만 내가 하는 일들 녹색인지 푸른색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내 말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세상에서 당신의 눈동자가 가장 사랑스럽다는 거예요. 온 세상에 말해도 좋아요. 이건 당신의 노래라고...' 이 노래를 부를 때 버니를 쳐다보는 엘튼의 눈빛은 정말 애절했다.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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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튼 존의 노래가 이렇게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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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전환은 엘튼 존이 미국으로 진출해서 트루바도어 공연을 하는 장면이다. 미국의 유명 뮤지션이 공연하는 곳에서 영국에서 온 신출내기 가수 엘튼 존은 긴장한다. 하지만 막상 무대에 오르자마자 관중을 휘어잡는데 그때 흘러나온 곡이 'Crocodile Rock'이다. 사실 록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 곡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발가락을 꿈틀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이 정도이니 당시 현장의 사람들이 얼마나 열광했을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

하지만 엘튼 존의 인생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탓에 애정결핍 증세를 보이던 그는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외로워한다. 엘튼 존의 어머니인 쉴라(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엘튼의 고백에 "영원히 외로운 삶을 선택했단 것만 기억하렴. 절대 제대로 사랑받지 못할걸."이라고 충고한다. 쉴라의 충고(혹은 경고)는 적중했는데 엘튼 존의 외로움을 파고 들어 그에게 기생하는 존 리드(리차드 매든)가 등장한 것이다. 그로 인하여 엘튼 존의 인생은 점점 망가지고, 술과 마약에 중독되어 자살 소동까지 벌인다. 그때 그의 외로움을 대변하는 노래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Rocket Man'이다.

'이해도 못 할 과학, 그저 이게 내 직업일 뿐. 로켓맨. 로켓맨. 아주 오래 걸리겠지. 집으로 돌아와 예전의 내가 아님을 깨닫게 되기까지. 오! 노-노-노 나는 로켓맨. 홀로 타오르고 있어.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아. 집으로 돌아와 예전의 내가 아님을 깨닫게 되기까지. 아니, 아니야. 나는 로켓맨. 홀로 타오르고 있어.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아.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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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ye Yellow Brick Road'가 흘로 나올 때의 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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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리드에 휘둘려 망가져만 가던 엘튼 존. 만약 그가 이대로 주저앉았다면 그의 이름은 살아있는 전설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엘튼 존은 존 리드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상담 치료를 받으며 술과 마약 중독에서 벗어난다. 바로 그때 흘러나오는 곡이 'Goodbye Yellow Brick Road'이다. 이 곡이 흘러나올 때 나는 짜릿함을 느꼈다. 이것이 아마도 음악 영화의 장점이 아닐까?

'그때는 어쩔 거야? 그럼 무너질 텐데. 술 몇 잔 마시면 다시 일어서겠지. 평생 그렇게 버틸 순 없어. 난 네 소유물이 아냐. 네 친구에게 과시하는 장난감도 아냐. 블루스를 부르기엔 너무 어린 꼬마! 비참한 인생들이 어슬렁거리는 노란 벽돌길이여, 이젠 안녕. 네 저택에 날 가둬둘 순 없어. 난 시골로 돌아갈 거야. 딱딱한 등껍질 두꺼비를 사냥하는 숲속 늙은 올빼미에게로. 확실히 알겠어 내 미래는 노란 벽돌길 너머에 있단걸!' 이 곡은 엘튼 존의 노래 중에서 내 귀에 익숙한 유일한 곡이다.

영화가 끝나고 엘튼 존은 술과 마약 등 거의 모든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소개한다. 물론 쇼핑 중독은 결코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리고 버니 토핀과의 우정도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존 리드는 어떻게 되었을까? 엘튼 존이 소송을 걸어 자신에 대한 존 리드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고, 그로 인하여 존 리드는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자막이 나왔다면 속이 시원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러한 자막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영화가 끝난 후 [로켓맨]의 OST를 검색해서 요즘 출퇴근 시 운전하며 매일 듣고 있는 중이다. 특히 'Goodbye Yellow Brick Road'을 듣고 있노라면 나 역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든다. 역시 전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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