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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사이먼 킨버그

주연 : 소피 터너, 제임스 맥어보이, 제니퍼 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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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지쳤지만, 마음만은 가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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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금요일 샌드위치 데이에 연차 휴가를 내고 6월 6일부터 8일까지 2박 3일간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다녀왔다. 지질학자가 되고 싶다는 아들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간 여행이었기에 산길, 계곡길을 걸으며 지질 명소를 구석구석 탐방하고 왔다. 2박 3일간 너무 많이 걸어서 아내도, 나도 다리에 알이 배길 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아들이 꿈에 한걸음 더 다가간 것 같아 뿌듯한 여행이었다.

6월 9일 일요일, 우리 가족은 파김치 상태가 되었다.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며 소파에 널브러진 아내. 하지만 나와 아들은 일요일마저 허투루 보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엑스맨 : 다크 피닉스]가 개봉했기 때문이다. 사실 [엑스맨 : 다크 피닉스]를 보기 전에 '엑스맨 프리퀄' 시리즈 중 진 그레이(소피 터너)가 처음 등장한 [엑스맨 : 아포칼립스]를 다시 보거나, [엑스맨 : 다크 피닉스]와 마찬가지로 <엑스맨 : 다크 피닉스 사가>를 원작으로 한 2006년 개봉작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을 다시 보며 서로 비교를 하거나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여유까지는 내게 허용되지 않았다.

[엑스맨 : 다크 피닉스]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내도 보고 싶다고 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극장에 갈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분명 나와 아들도 아내만큼이나 피곤하고, 집에서 쉬고 싶었다. 그만큼 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하지만 조금 있으면 [엑스맨 : 다크 피닉스]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가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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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 최후의 전쟁]과의 묘한 평행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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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U가 내 마음을 사로잡기 이전, 2000년에 개봉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은 내게 있어서 혁신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였다. 선과 악이 불분명한 돌연변이 히어로 혹은 빌런과 기억을 잃은 채 '엑스맨'에 합류한 울버린(휴 잭맨)의 존재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2003년 개봉한 [엑스맨 2]는 나이트 크롤러(알란 커밍)의 대통령 암살 시도 장면을 담은 오프닝 장면만으로도 나를 홀딱 반하게 만들었다. 다양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의 향연, 그리고 인류의 진화 과정이라 할 수 있는 돌연변이와 돌연변이의 능력을 두려워한 인간의 대립 등,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엑스맨]과 [엑스맨 2]를 통해 슈퍼 히어로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하지만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수퍼맨 리턴즈]를 연출하기 위해 '엑스맨 트롤로지'의 마지막 영화인 [엑스맨 : 최후의 전쟁] 연출을 포기했다. 결국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의 메가폰은 [러시 아워]의 흥행 감독 브렛 래트너의 차지가 되었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수퍼맨 리턴즈]도, [엑스맨 : 최후의 전쟁]도, 모두 흥행적으로나, 비평적으로 모두 낙제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엑스맨 트롤로지'를 마무리해주길 간절히 원했던 나는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을 본 후 좌절감을 느껴야만 했다.

최악의 '엑스맨' 영화 한 편을 꼽으라면 나는 결코 주저하지 않고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을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은 내게 실망을 넘어 분노를 안겨줬다. 그리고 13년이 흘러 [엑스맨 : 다크 피닉스]가 개봉한 것이다. 그 사이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의 제작을 맡으며 '엑스맨 프리퀄' 시리즈로 돌아왔고,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엑스맨 : 아포칼립스]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엑스맨 프리퀄' 시리즈의 최종 편인 [엑스맨 : 다크 피닉스]는 브라이언 싱어의 손을 떠나 각본가로 유명한 사이먼 킨버그의 감독 데뷔작이 되었다. [엑스맨 : 최후의 전쟁]과 참 묘한 평행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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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엑스맨 : 최후의 전쟁]보다는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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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 최후의 전쟁]과 [엑스맨 : 다크 피닉스]는 비슷한 점이 많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면서도 지금의 '엑스맨'을 있게 한 브라이언 싱어의 손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같다.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의 경우는 제작사가 '엑스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브렛 래트너 감독에게 급하게 메가폰을 맡기는 최악의 선택을 했지만, [엑스맨 : 다크 피닉스]는 각본, 제작 등 통해 오랫동안 '엑스맨'에 관여한 사이먼 킨버그에게 메가폰을 넘김으로써 브라이언 싱어의 빈자리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영화 모두 <엑스맨 : 다크 피닉스 사가>를 원작으로 했다는 점이 같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엑스맨 : 다크 피닉스 사가>는 '엑스맨'의 고전 중의 고전이고, 무엇보다도 전 우주적 존재인 '다크 피닉스'라는 최악의 힘 덕분에 시리즈의 최종 편으로 더없이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단지 [엑스맨 : 최후의 전쟁]에서는 진 그레이(팜케 얀센)가 '다크 피닉스'의 능력을 각성하는 과정이 설득력이 없고, 고작 매그니토(이안 맥켈런)의 야망에 '다크 피닉스'가 이용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설정 때문에 실망감을 안겨줬다.

그렇기에 [엑스맨 : 다크 피닉스]가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이 되지 않으려면 진 그레이의 캐릭터 구축과 '다크 피닉스'의 능력 각성 과정에 심혈을 기울여야만 한다.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의 각본을 썼던 사이먼 킨버그 감독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그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자신의 능력을 컨트롤하지 못해 비극을 맞이한 어린 진 그레이(썸머 폰타나)의 모습을 통해 성인이 된 진 그레이(소피 터너)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줬고, '엑스맨'의 우주에서의 구조 임무 장면을 통해 진 그레이가 '다크 피닉스'의 능력을 갖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제 진 그레이의 트라우마를 통해 진 그레이가 '다크 피닉스'의 무시무시한 능력을 각성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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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버림받은 것만큼 큰 상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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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 다크 피닉스]를 보며 '디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진 그레이의 캐릭터 구축이 나름 잘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인한 어머니의 죽음으로 오랜 세월 죄책감 속에 살았을 진 그레이는 찰스 자비에(제임스 맥어보이)가 아버지의 생존을 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분노를 느낀다. 당연하다. 그녀는 아버지 역시 죽은 줄 알았고, 그로 인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아버지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일부러 외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 있던 트라우마를 깨우고, 결국 '다크 피닉스'의 힘이 폭주하는 계기가 된다.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외면, 새로운 가족인 줄 알았던 찰스 자비에의 거짓말이 겹치며 진 그레이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한 폭주를 잠시 멈춘 것은 레이븐(제니퍼 로렌스)의 죽음이다. 결국 진 그레이에겐 더 이상 예전의 가족도, 지금의 가족도 남아 있지 않은 셈이다. 그러한 그녀의 트라우마를 이용한 것은 '다크 피닉스'의 힘을 이용해서 종족을 재건하려는 외계 종족 스미스(제시카 차스테인)이다. 아마도 진 그레이는 '다크 피닉스'를 스미스에게 넘기면 다시 '엑스맨'이라는 가족의 폼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엑스맨 : 다크 피닉스]는 이렇게 진 그레이의 트라우마와 '다크 피닉스'라는 절대적 파괴의 힘을 통해 이야기를 차근차근 진행해 나간다. 레이븐의 죽음은 은둔해있던 에릭 랜셔(마이클 패스벤더)와 행크 맥코이(니콜라스 홀트)를 분노하게 만들고, 그로인하여 영화의 후반부는 '엑스맨 프리퀄'의 마지막 영화답게 주요 '엑스맨'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제 제대로 된 클라이맥스만 전개시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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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끝나 버리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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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 최후의 전쟁]이 워낙에 엉망진창이어서 나는 웬만하면 [엑스맨 : 다크 피닉스]에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최소한 영화의 중반까지는... 물론 '엑스맨 프리퀄'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인 레이븐을 너무 아쉽게 희생시킨 면이 있긴 하지만 '다크 피닉스'의 각성이 제대로만 표현된다면 그런 아쉬움 따위는 그냥 잊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과연 누가 '다크 피닉스'를 막기 위해 진 그레이를 죽일까? [엑스맨 : 최후의 전쟁]에서는 진 그레이를 짝사랑했던 울버린이 그 역할을 맡았고, <엑스맨 : 다크 피닉스 사가>에서는 진 그레이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엑스맨 : 다크 피닉스]는?

레이븐의 죽음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렸기에 나는 [엑스맨 : 다크 피닉스]의 클라이맥스는 진 그레이의 장엄한 최후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구와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 '다크 피닉스'는 절대 존재해서는 안 될 힘이며, 그것은 곧 진 그레이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엑스맨 : 다크 피닉스]는 해피엔딩을 원했다. '엑스맨' 자체가 애초에 어두운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 해피엔딩을 억지로 껴 맞춘 셈이다. 그로 인해 [엑스맨 : 다크 피닉스]의 결말은 굉장히 실망스럽다.

결과적으로 [엑스맨 : 다크 피닉스]는 분명 [엑스맨 : 최후의 전쟁]보다는 재미있었다. 하긴 그보다 재미없기도 굉장히 힘든 일이다. 하지만 '엑스맨' 전체 시리즈를 놓고 순위를 매긴다면 순위가 상당히 뒤쪽에 자리 잡을 것 같다. '엑스맨' 시리즈가 계속 진행되고, '다크 피닉스'의 능력을 각성한 진 그레이가 MCU의 '캡틴 마블'처럼 결정적인 순간 재등장한다면 모를까, 어차피 '엑스맨 프리퀄'의 마지막 영화인데, 굳이 그러한 결말을 선택한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 그러려면 차라리 레이븐도 죽이지 말고 살려두던가... 역시 브라이언 싱어의 부재 때문일까? 이제 남은 희망은 MCU에 새롭게 합류할 '엑스맨'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이렇게 내가 사랑했던 슈퍼 히어로 시리즈가 허망하게 끝나버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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