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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이종언

주연 : 설경구, 전도연, 김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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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향한 엄마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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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의 일이다. 워킹맘인 아내는 그날도 야근 때문에 퇴근이 늦었다. 나 역시 야근을 해봐서 아는데, 야근할 땐 일에 최대한 집중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화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빨리 일 끝내고 퇴근하고 싶은데, 집에서 '언제 와?'라며 자꾸 전화하면 일의 리듬이 깨져 오히려 야근 시간만 길어진다. 그렇기에 나는 느긋하게 아내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날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아무리 야근을 하더라도 아들의 하교 시간인 밤 10시 전에는 집에 들어왔는데, 그날은 10시가 넘어서도 아내는 회사에 붙잡혀 있었다.

결국 아내가 일을 끝낸 시간은 밤 12시가 다 되어서이다. 늦은 시간이라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을 나갔는데, 버스에서 내린 아내는 나를 붙잡고 엉엉 우는 것이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야근 때문에 아들을 보지 못한 것이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난다고 대답한다. 매일도 아니고 겨우 하루 못 본 것이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일 때문에 아들에게 소홀한 것 같아 죄책감을 느꼈나 보다. 특히 전날 아들과 영어 공부 때문에 말다툼을 하고 안 좋게 헤어졌기에 아들에 대한 아내의 미안함은 더욱 컸다고 한다.

그날 밤새 아내를 위로했다. 결혼 16년 차가 되도록 아내가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기에 마음이 짠했다. 어쩌면 그것이 세상 모든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 내게 기대어 펑펑 울던 아내의 모습은 아마 평생 동안 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내 어깨에 묻은 아내의 눈물 자국이 채 마르기도 전에 [생일]을 봤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많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일 때문에 단 하루 아들을 보지 못한 아내의 눈물을 기억하기에, 아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 영영 볼 수 없었던 순남(전도연)의 아픔이 내게도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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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의 아픔과 순남의 아픔의 서로 다른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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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한국행 비행기에 탄 정일(설경구)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정일은 여동생인 정숙(이봉련)이 적어준 주소를 보며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집 안에 있는 순남은 모르는 척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결국 그날 밤 정일은 정숙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생일]은 정일과 순남의 사연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아들인 수호(윤찬영)가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임은 영화의 소개를 통해 알 수 있었지만, 정일이 왜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지 5년이 흐른 뒤에서야 집으로 돌아왔는지, 순남은 왜 정일을 애써 외면하는지, 결코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영화는 정일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정일은 사랑하는 수호를 세월호 사건으로 잃은 유가족이지만, 그는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한국에 없었고 그 사이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그의 상처는 어느 정도 아물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순남은 한국에 남아 수호의 죽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싸워야만 했다. 순남에게는 상처가 아물 틈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의 상처는 점점 더 벌어져 그녀를 무너뜨리려 한다.

영화가 정일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것은 타당하다. 만약 세월호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제3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생일]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을 제대로 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순남의 시선으로 영화를 진행시켰다면 관객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화가 무거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정일은 다르다. 그는 제3자가 아닐뿐더러, 세월호 사건과 어느 정도 떨어져 지냈기에 어느 정도 상처가 아문 캐릭터이다. 이종언 감독은 정일을 통해 안타까운 시선으로 순남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아마도 [생일]에서 이종언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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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남의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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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남은 괜찮은 척, 버틴다. 하지만 그녀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이미 상처가 벌어질 대로 벌어져 위험한 상태에 도달해 있음을 영화는 서서히 드러낸다. 정일 앞에 냉정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영화 후반부 수호의 방에서 큰 소리로 엉엉 우는 장면은 그녀의 위태로운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순남의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해서는 순남 스스로 수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정일이 순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호의 생일 파티를 하려고 했던 이유이다.

영화 내내 그랬다. 순남은 수호의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데도 가끔 켜지는 망가진 현관 등을 보며 수호가 왔다고 생각한다. 수호를 위한 새 옷을 사오면서도 어린 예솔(김보민)을 위한 옷은 사오지 않는다. 그리고 수호의 방을 위해 순남과 예솔은 마루에서 생활한다. 순남의 모든 것은 죽은 수호에게 맞춰져 있다. 순남이 세월호 유가족 모임이 나가지 않았던 이유도 수호의 죽음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무의식의 집착 때문일 것이다. 그로 인하여 그녀 자신이 무너지고 있으며, 아직은 어린 예솔이 상처를 입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망을 치거나,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순남은 수호의 죽음이라는 현실에 도망을 치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물론 가족의 상처마저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순남을 욕할 수 없다. 그녀의 아픔을 가늠조차 할 수 없기에 그녀의 그럴 수밖에 없는 행동은 그저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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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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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남의 상처를 키우는 것은 순남 스스로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의 주위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순남의 상처를 지속적으로 건드렸다. 세월호 사건이 벌어졌던 2014년 어느 날, 나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보상금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때 식당 손님인 한 중년 남성이 "돈 많이 받아서 좋겠다."라고 했고, 식당 여주인은 "아마 겉으로는 울고 있어도 속으로는 돈 많이 받아 웃고 있을 거예요.'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 순간 나는 이 세상에 짐승보다도 못한 인간들이 내 주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싹함을 느꼈다. 과연 자식을 잃은 대가로 받은 돈 때문에 웃는 부모가 있을까? 정말 그들은 자신의 자식이 죽어도 보상금만 받으면 속으로 웃을 수 있을까?

[생일]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정일의 숙부는 세월호 보상금을 자신의 사업에 투자하라고 말한다. 정일이 보상금을 받지 않았다고 하자, 왜 주는 돈을 안 받느냐고 오히려 따진다. 그깟 돈. 당시 정부가 세월호를 건지는데 들어가는 거액의 돈, 그리고 유가족에게 지급되는 보상금 따위로 언론 플레이를 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그 언론 플레이에 놀아난 어리석은 사람들 역시도 기억한다. 그렇기에 정일이 숙부에게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치는 장면에서 속이 시원했다. 하지만 정작 순남은 한마디도 못하고 거리를 방황한다. 그녀의 심정은 당시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모여있던 식당에서 내가 느꼈던 참혹함과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상처는 또 그렇게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상처 때문에 순남이 수호의 방에서 소리 내어 울자 옆집의 여자아이는 지겹다며 집을 뛰쳐나간다. 그런 그녀의 행동은 이제 세월호 사건은 지겹다고, 이제 그만하라며 외면하는 바로 우리의 시선이 아닐까? 5년이 흘렀지만 유가족의 상처를 아물게 하기엔 턱도 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잊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생일]의 개봉은 아주 시기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생일]은 잊고 싶어 하는 우리에게 세월호 사건을, 유가족의 아픔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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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그대로 엔딩은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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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순남은 수호의 생일 파티를 받아들인다. 수호의 가족, 친구,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이 모인 생일 파티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다. 이 장면에서 이종언 감독은 아주 대놓고 관객을 울리는데, 그것이 전혀 인위적이지 않다. 지금까지 나는 영화는 보며 가장 많이 울었던 것이 1898년 개봉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였다. 은주(이미연)의 영구차가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장면에서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당시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기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슬픔에 많은 공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 내가 가장 많이 운 영화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아니다. [생일]이다. 눈물이 많은 나는 영화를 보며 자주 운다. 하지만 대부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정도이거나, 눈물 한두 방울이 볼에 주르륵 흐르는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생일]에서는 영화 초반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내내 눈물이 났다. 그나마 중반까지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참을만했다. 문제는 수호의 생일 파티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는 눈물뿐만 아니라 콧물까지 하염없이 흘러내려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내가 한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호와 같은 나이의 아들이 내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은 이렇게 공감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생일]의 슬픔은 전혀 인위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다. 한바탕 울고 나니 가슴에 덩어리 하나가 쑥 하고 내려간 느낌이다. 순남도 그러했을 것이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호를 보내지 못하고 혼자 붙들고 있었던 그녀는 정일의 도움으로 수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수호의 생일 파티를 하며 그녀를 좀먹고 있었던 상처와 마주한다. 물론 평생 그 상처를 완벽하게 아물지 않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흉터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순남에겐 이제 살아갈 용기가 생겼다. 수호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남아있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영화를 보며 한바탕 울고 났더니 속이 조금 후련해졌다. 나는 결코 2014년 4월의 그날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날의 상처를 가슴에 앉고 살아야 할 분들도 꿋꿋하게 다시 일어나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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