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키스 패밀리] - 저출산 시대를 대변하는 출산 장려 코미디.
감독 : 김지혜
주연 : 박희순, 진경, 황우슬혜, 이고은
내 결혼기념일 선물과 퉁치다.
Daum 슈퍼특가로 [썬키스 패밀리] 예매권이 장당 6천 원에 나왔다. Daum 슈퍼특가는 선착순 판매이기에 컴퓨터가 느린 나는 아무리 기를 쓰고 달려들어도 매번 구매에 실패하고 만다. 그런데 [썬키스 패밀리]만은 달랐다. 너무나도 여유롭게 구매 성공. 그것도 호기롭게 아내의 의견도 묻지 않고 무려 두 장이나 구매했다. 구매를 완료하고 나서 정말 싼 가격에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기쁨에 휩싸였지만 그것은 고난의 시작이었다.
[썬키스 패밀리] 개봉일이 다가왔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상영 극장을 찾기가 어려웠다. 상영하는 대부분의 극장들은 아침 7시, 혹은 밤 11시라는 어처구니없는 시간에만 상영을 했고, 내가 기대했던 평일 저녁 시간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구매 취소를 하려 했지만, 취소 가능 기간이 지났다며 취소 불가 메시지가 떴다. 순간 짜증이 밀려 올라왔다.
이제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눈물을 머금고 1만2천 원짜리 [썬키스 패밀리] 예매권을 쓰레기통에 버리던가, 아니면 어처구니없는 시간대라도 [썬키스 패밀리]를 보던가. 내 선택은 당연히 후자이다. 나는 일요일 아침 9시 5분이라는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시간을 선택했다. 아내는 일요일만이라도 늦잠을 자야 한다며 완강히 저항했지만, 나는 다가올 결혼기념일 선물을 내게 미리 해주는 셈 치라며 어렵게 설득했다. 금요일 저녁엔 청소, 설거지, 빨래개기 등을 하며 아내에게 아부를 했고, 앞으로는 내 맘대로 Daum 슈퍼특가 예매권을 사지 않겠다고 무릎 꿇고 약속까지 한 후에야 겨우 아내와 함께 [썬키스 패밀리]를 보러 갈 수 있었다.
내가 이 영화를 기대한 이유
내가 [썬키스 패밀리] 예매권을 충동구매하여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이 영화가 아내와 함께 보기에 적합한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며칠 후면 결혼 16주년 기념일이고, 나는 아직도 아내와의 로맨틱한 극장 데이트를 꿈꾼다. 하지만 워킹걸인 아내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파김치 상태가 된다. 그리고 주말이면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시간을 보내려 한다. 아내에게 '영화 보라가자'라고 했다간 '싫어, 피곤해'라는 대답만이 되돌아온다. 우리 부부도 연애 시절에는 매일 영화를 보며 사랑을 키웠는데...
그렇기에 나는 [썬키스 패밀리] 예매권을 사면서 이를 핑계로 아내와의 극장 데이트를 계획한 것이다. 이렇게 극장 상영 시간이 극악일 줄도 모르고... 물론 [썬키스 패밀리]가 연인 사이에 볼만한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이 결혼 20년 차 부부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내 관심을 잡아끌었다. 게다가 부담 없이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코미디 영화가 아닌가. 회사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푸는데 있어서 코미디 영화를 보며 실컷 웃는 것만큼 좋은 특효약은 없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비록 일요일 아침, 잠에서 덜 깬 아내를 억지로 끌고 극장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에 [썬키스 패밀리]를 보기 전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꽤 만족스러웠다. 15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이지만 아들과 함께 봤다면 굉장히 난감했을 것만 같은 적절한 수위의 섹시함과 오해로 인한 난장 코미디, 그리고 배우들의 능구렁이같이 맛깔스러운 연기가 더해져서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웠다.
뜨거운 부부에게 닥친 위기
[썬키스 패밀리]는 결혼 20년 차에도 불구하고 식을 줄 모르는 사랑을 나누는 부부 준호(박희순)와 유미(진경)에게 불어닥친 위기가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준호와 유미를 위기에 빠뜨린 주인공은 이웃집에 이사 온 미희(황우슬혜)이다. 준호와 미희는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오빠, 동생 사이인데, 유미는 미희가 준호의 첫사랑임을 의심하고 있다. 게다가 유미는 남편과 사별한 싱글이고, 현직 화가이다. 유미와의 결혼을 위해 준호가 화가의 길을 포기했음을 감안한다면 유미가 미희의 등장에 긴장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준호는 그러한 유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미희와의 사이에 아무런 일이 없기 때문에 유미의 질투가 과잉반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몇 년 전 중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여사친에게 전화가 전화가 왔다. 나는 너무나도 반가워서 당장이라도 만나 술 한잔 기울이며 옛 추억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그녀와의 만남이 아내에게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의 행복을 유지하려면 오해의 소지 자체를 없애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준호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준호는 억울하다. 미희는 그저 아는 동생일 뿐이고, 남편과 사별해서 혼자 사는 것이 안쓰러울 뿐이다. 그는 유미의 생일 선물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미희의 집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러한 그의 행동이 유미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지만, 그는 애써 그것을 외면한다. 결국 준호의 무심함은 유미의 대폭발을 유도하고, 영화 후반부 난장 코미디를 만들어낸다.
자녀들에게도 문제가...
[썬키스 패밀리]는 오해로 인한 준호와 유미의 갈등을 기본으로 깔아 놓은 채 준호와 유미의 세 자녀의 문제로 양념을 친다. 첫째 아들인 철원은 성적으로 문제가 있다. 조루증이 있어서 애인과의 잠자리가 원활하지 못하다. 조루증을 치료하기 위해 약국에서 칙칙이 스프레이를 사는데, 오히려 그로 인한 지루증 때문에 애인에게 결별 선언을 듣는다.
둘째 딸인 경주(윤보라)는 성인의 나이가 되었지만 생리가 터지지 않아 고민이다. 그녀는 카페의 양사장(정상훈)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지만 성숙하지 못한 자신의 몸에 대한 자신감 부족으로 애써 자신의 감정을 외면한다. 사랑이 넘쳐나서 문제인 준호, 유미와는 다르게 철원과 경주는 사랑이 부족해서 문제인 셈이다. 솔직히 나는 철원과 경주의 문제가 너무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철원과 경주의 성적 문제는 내 공감을 전혀 얻지 못했다. 그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준호와 유미의 막둥이 딸 진해(이고은)의 고민은 공감이 되었다. 어린 진해의 입장에서 아빠와 엄마는 세상의 전부이다. 그렇기에 부모의 이혼은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과도 같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집에서 사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진해는 준호와 유미의 싸움에 두려워하고, 화해를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나 역시도 아들이 보는 앞에서는 아내와 싸우지 않기 위해 무진 노력했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 그때 아들이 내게 조용히 다가와 어깨를 토닥거리며 '아빠가 좀 참아.'라고 충고를 했었다. 진해의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아들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지어졌다.
출산을 장려하는 영화의 결말
유미의 생일 파티 장면에서 결국 이 모든 갈등이 폭발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준호와 유미의 갈등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꼬인 매듭만 찾아낸다면 금세 풀 수 있다. 그리고 그 꼬인 매듭은 생일 파티 현장이 난장판이 된 후에 비로소 속 시원하게 풀린다.
모든 갈등이 풀리고 난 후의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진해에겐 동생이 생겼다. 경주의 뱃속에는 쌍둥이가 자리 잡았다. 이로써 준호와 유미의 가족은 모두 평화를 맞이한 것이다. 출산을 장려하는 요즘 아들 하나만 낳아 애국을 하지 못한 내 입장에서는 이 영화의 출산 장려 장면에 맘껏 웃기는 힘들었다. 정말 아기만 낳으면 모든 갈등이 해결되는 것일까? 사실 낳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키우는 것인데, 그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썬키스 패밀리]가 마치 남의 나라 영화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도 내 자격지심일지도...
[썬키스 패밀리]는 분명 부담 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심각할 필요 없이 가볍게 즐기다 보면 1시간 45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금방 지나가 버린다. 물론 마지막의 뜬금없는 출산 장려 장면이 조금 눈에 거슬렸지만 그 정도는 넘어가 줄만했다. 그 대신 박희순과 진경의 중년 부부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을 수가 있었다. [썬키스 패밀리]를 본 날 밤, 나는 준호가 유미에게 했던 것처럼 아내에게 다가갔지만 '저리 가, 징그러워'라며 외면당했다. 역시 이것이 영화와 현실의 차이인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