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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조던 필

주연 : 루피타 뇽, 윈스턴 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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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강의 쫄보임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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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여름 근처도 가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등골이 오싹한 영화들이 많이 개봉되는지, 조금이라도 무서운 장면을 보면 심장이 오그라드는 겁쟁이인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이다. 보고는 싶은데 무섭다. 누군가 함께 영화를 봐준다면 그나마 용기를 낼 수 있을 텐데, 아내도, 아들도 나처럼 겁이 많은 탓에 공포 영화는 언제나 혼자 봐야 한다. 올해에만 벌써 [글래스], [해피 데스 데이 2 유], [우상]을 보기 위해 혼자 두려움에 떨며 극장으로 향해야 했다. 다행히 이들 영화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아 내 심장이 오그라드는 사태는 막을 수가 있었다.

[우상]을 재미있게 보고 나서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일까? 이번에 내 레이더망에 포착된 영화는 [어스]이다. [어스]는 2017년 [겟 아웃]으로 신선한 충격을 줬던 조던 필 감독의 작품이다. 2017년 당시 나는 입소문을 제대로 타기 시작한 [겟 아웃]을 보기 위해 혼자 극장을 찾았었다. 솔직히 [겟 아웃]은 공포 장르로 분류가 되긴 했지만 내가 보기엔 스릴러, 블랙 코미디에 가까웠다. 덕분에 나는 [겟 아웃]을 아주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스]의 경우는 다르다. 예고편이 워낙 섬뜩해서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나보다 먼저 본 관객들의 글을 보니 그다지 무섭지 않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자신을 쫄보라고 지칭한 이웃 블로거는 [어스]가 전혀 무섭지 않다고 해서 내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어스]가 무서웠다. 영화의 몇 장면에서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기도 했다. 결국 내가 대한민국 최강의 쫄보임이 증명된 셈이다. 그래도 나는 [어스]가 재미있었다. 비록 [겟 아웃]만큼은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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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필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충분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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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 아웃]이 흥행에 성공하고, 2018년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될 수 있었던 것은 기발한 상상력과 더불어 백인과 흑인의 갈등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공포라는 장르적 쾌감으로 재치 있게 풍자했기 때문이다. [겟 아웃]의 이러한 성과는 자연스럽게 [어스]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어스] 또한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닌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일 것이라는 기대... 그것이 [어스]에 대한 관객의 일반적인 기대일 것이다.

조던 필 감독은 자신에게 쏟아진 관객의 기대를 충분히 알고 있는 듯하다. [어스]의 시작이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 캠페인이 있었던 1986년인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는 미국인들이 인종을 초월하여 서로 손을 잡고 소외 계층의 빈곤을 막자는 취지의 캠페인으로 이는 [어스]의 주제가 된다. 영화 후반 지상의 인간을 공격한 지하의 복제 인간들이 손에 손을 잡고 인간띠를 만드는 장면은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 캠페인과 연결되면서도 동시에 트럼프 정권의 정책인 멕시코 국경 장벽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결국 조던 필 감독은 지하 복제 인간들의 반란을 통해 미국 내 불법 체류자도 결국 미국인이라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해준 것이다.

문제는 이 방식이 너무나도 노골적이라는 사실이다. [겟 아웃]이 뛰어났던 이유는 전형적인 공포 영화의 전개 속에서 인종 갈등이라는 메시지를 은근하게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스]는 아예 처음부터 주제를 대놓고 드러낸다. 그렇기에 [겟 아웃]에서 느꼈던 여운이 [어스]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 자체를 즐기는데 있어서 아무런 지장은 없다. [어스]는 복제 인간의 습격을 받은 어느 가족의 이야기라는 내용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만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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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지에서 겪은 어느 가족의 공포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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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의 시작은 1986년 산타크루스 해변에서 시작된다. 어린 애들레이드는 아빠, 엄마와 함께 산타크루스 해변으로 놀러 온다. 그런데 엄마가 잠시 화장실에 가고, 아빠는 두더지 게임에 빠져 있는 동안 애들레이드는 말 안 듣는 아이가 으레 그러하듯이 혼자 아무도 없는 해변가에 가게 되고 길을 잃는다. 미로와도 같은 거울의 방에서(도대체 거긴 왜 들어가냐고.)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누군가를 본 애들레이드. 이 사건의 충격으로 애들레이드는 말을 잃는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른이 된 애들레이드(루피냐 뇽)는 남편 게이브(윈스턴 듀크), 딸 조라(샤하디 라이트 조셉), 막내아들 제이슨(에반 알렉스)과 함께 가족 여행에 나선다. 그런데 하필 목적지가 산타크루스 해변과 가까운 별장이다. 애들레이드는 마음이 편치 않다. 33년 전 악몽을 경험했기에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게이브는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날 밤, 애들레이드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일이 벌어진다. 자신은 물론 가족과 똑같이 생긴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애들레이드 가족의 별장에 방문하여 무차별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어스]는 예고편에서부터 포스터에까지 '우리는 누구인가?'라며 관객에게 게임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 게임은 영화 초반에 싱겁게 마무리된다. 애들레이드의 별장을 장악한 레드(루피냐 뇽)는 자신들의 정체가 지상의 인간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복제 인간이라는 사실을 술술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복제한 이들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복제인간들은 지하 세계에 버려진다. 그리고 바로 지금 지하 세계에서 숨죽이며 살던 복제 인간들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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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를 장치로 한 전형적인 스토리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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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 인간 무리인 레드 일행의 애들레이드 가족 습격 사건은 꽤 전형적으로 전개된다. 조던 필 감독은 [어스]의 출연이 확정된 루피타 뇽에게 열 편의 영화를 추천했다고 하는데 그 명단에는 마카엘 하네케 감독의 악명 높은 영화 [퍼니게임]도 포함되어 있다. [퍼니게임]은 오스트리아의 호숫가 별장에서 휴가를 즐기려던 한 가족이 낯선 이방인들의 방문을 받게 되고, 그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내용이다. [어스]도 마찬가지이다. 레드 일행은 애들레이드 가족의 별장을 습격하고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하지만 [어스]는 [퍼니게임]과 다르게 애들레이드 가족이 일방적으로 레드 일행에게 당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애들레이드의 모성애가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인 게이브가 조금은 코믹하면서도 답답한 캐릭터라면 애들레이드는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악물고 레드 일행에 대항하여 가족을 지켜낸다. 결국 [어스]는 모성애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문제 해결에 적극 이용함으로써 [어스]의 전형적으로 이끈다.

복제 인간이 레드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을 습격하는 장면에서는 할리우드 영화다운 스케일이 느껴진다. 영화의 첫 시작 장면에서 미국의 지하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지하 터널이 존재한다고 언급하고, 영화 초반엔 조라가 뜬금없이 정부의 음모론을 제시한다. 애들레이드는 레드로부터 가족을 지켜내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다. 이렇듯 [어스]가 속편의 여지를 남겨 놓는데, 이것 역시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장치이다. [겟 아웃]을 거쳐 [어스]에 이르며 필 조던 감독의 흥행 전략이 꽤나 영리해졌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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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무서웠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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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스]는 미국에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불법 체류자를 지하에 사는 복제 인간의 반란을 통해 비유했다. 하지만 굳이 이 영화의 숨겨진 의미와 주제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복제 인간의 반란이라는 소재 자체로만 즐겨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던 필 감독은 [어스]가 공포 영화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도록 꽤 정성스럽게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물론 내가 [어스]를 봤던 극장에서 어느 커플 관객은 극장 밖을 나서며 '이거 코미디 영화야?'라며 어이없어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영화 초반 어린 애들레이드가 거울의 방에서 길을 잃는 장면부터 심장이 쫄깃해지더니 레드 일행의 첫 등장은 그야말로 섬뜩했다. 기괴한 목소리를 내는 레드, 조라의 복제 인간인 움브라는 언제나 싱글벙글 웃는 표정으로 날카로운 가위를 휘두르고, 제이슨의 복제 인간 플루토는 얼굴에 화상을 입어 섬뜩함을 더해준다. (단, 게이브의 복제 인간 아브라함은 그냥 덩치만 큰 바보이다.) 복제 인간들의 비주얼만으로도 충분히 내 공포심을 자극한 것이다.

게다가 영화는 슬래셔 무비의 잔인함도 가지고 있는데, 날카로운 가위로 인간의 몸을 난자할 때의 사운드가 너무나도 생생해서 마치 가위에 손이 베인 듯한 착각을 내게 안겨주기도 했다. 복제 인간과의 사투는 아직 어린 조라와 제이슨까지도 살인에 가담하게 하는데, 그러한 설정의 잔인함은 시각적, 청각적 잔인함보다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애들레이드와 레드 1인 2역을 맡은 루피타 뇽의 표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였다. 아! 정말 나는 그녀가 너무 무서웠다. 특히 마지막 애들레이드의 반전에 의한 그 기묘한 표정, 확실히 이 영화의 공포는 루피타 뇽의 연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분명 노골적인 주제 노출로 인하여 [겟 아웃]보다는 실망스러운 영화였지만, 그래도 [어스]는 내게 적절한 공포를 안겨주며 오랜만에 공포 영화의 매력을 느끼게끔 해준 영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