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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데이빗 로워리

주연 : 로버트 레드포드, 케이시 애플렉, 씨씨 스페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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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을 잔잔하게 채워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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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 11시.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지만, 그냥 잠자리에 들기엔 뭔가 아쉬운 시간. 아들에게 영화 한 편 보자고 꼬드겼다. 아내는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영화냐며 눈을 흘겼지만, 아들이 12시 40분까지만 영화를 본 후 잠자리에 들겠다며 엄마에게 필살 애교를 부려준 덕분에 토요일 밤 영화 보기가 성사되었다. 하지만 12시 40분에 잠자리에 들겠다고 약속한 만큼 영화의 러닝타임은 1시간 30분 정도여야만 했다. 요즘 영화들이 워낙 길어서 짧은 영화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심사숙고 끝에 아들이 고른 영화는 [미스터 스마일]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아들에게 [미스터 스마일]의 장르가 범죄 스릴러이긴 하지만 상당히 잔잔한 영화일 것이라 설명해 주었다. 1969년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은행 강도단의 일원인 선댄스 키드로 스타덤에 오른 로버트 레드포드가 50여 년이 흐른 후 자신의 연기 은퇴작으로 노년의 은행 강도 포레스트 터커를 선택했고, 그렇기에 이 영화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50년 연기 인생을 돌아보는 의미의 영화가 될 것이라는 것이 내가 아들에게 영화를 보기 전에 해준 설명이다.

내 예상대로 [미스터 스마일]은 상당히 잔잔한 영화이다. 그 흔한 총격전도 없고, 치열한 추격전도 없다. 그저 단정한 슈트 차림으로 얼굴엔 미소를 잃지 않고 우아하고 품위 있게 은행을 터는 70대의 노년 은행 강도 포레스트 터커의 이야기가 조용히 펼쳐질 뿐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영화를 본 후 아들이 "꽤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해줘서, 내가 좋아하는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를 떠나보내야 하는 내 마음도 훈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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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터커는 어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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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스마일]은 '이 이야기는 대부분 사실이다.'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 그렇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연기 은퇴를 위해 가공된 캐릭터인줄 알았던 포레스트 터커는 실존하는 인물이다. 그는 70대의 나이까지 은행 강도를 멈추지 않았고, 교도소에서 무려 18번 탈옥에 성공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영화에서는 16번만 설명되었다.) 또한 폭력이나 협박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다정하고 젠틀하게 사람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방식으로 1980년 한 해 동안만 무려 60여 곳의 은행을 턴 기록을 가진 전설적인 인물이다.

솔직히 영화를 보며 '어떻게 저런 방식으로 은행을 터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레스트 터커는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은행 지점장이나 창구 직원에게 다가갔고, 자신의 총을 잠시 보여준 후 가방을 건네주며 가방에 돈을 담아 달라고 상냥하게 말한다. 두려움에 떠는 직원에게 '잘하고 있다'라는 칭찬으로 긴장을 풀어주기도 한다. 가방에 돈이 채워지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가방을 든 채 유유히 은행을 빠져나간다. 정말 저 방법이 통했다는 말인가?

해답은 1980년이라는 시대에 있다. 1980년은 인터넷과 모바일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기 전이다. 은행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지만 강도단의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저해상도였고, 포레스트 터커 또한 창구에 배치된 소액의 돈을 터는 것에 만족해서 경찰에서도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78세의 노인이 될 때까지 성공적으로 은행 강도의 커리어를 유지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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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생에 들어온 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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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사랑에 빠졌다. 남편과 사별한 매력적인 농장주 쥬얼(씨씨 스페이식)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이다. 처음에 포레스트는 자신을 영업사원이라며 직업을 속인다. 하지만 쥬얼과의 만남이 지속되면서 그녀에게 자신의 직업을 솔직하게 말했고, 처음엔 포레스트의 말을 믿지 않던 쥬얼은 그의 차에 권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포레스트가 은행 강도임을 직감하게 된다.

포레스트와 쥬얼의 사랑은 뭐랄까 참으로 멋스럽다. 열정이 넘치며 서로를 탐닉하는 젊은이들의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그저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고 옛날이야기를 하며 며칠 남지 않은 인생의 황혼기를 함께 보내고 싶다는 무언의 눈빛을 보낼 뿐이다. 어쩌면 포레스트가 경찰에 붙잡힌 것은 쥬얼의 신고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포레스트는 쥬얼이 시키는 대로 17번째 탈옥을 포기하고, 쥬얼은 감옥에서 출옥한 포레스트를 받아들인다.

포레스트가 경찰에 체포되기 전에 쥬얼의 농장에서 말을 타는 장면은 마음이 짠했다. 그는 항상 말이 타고 싶었다. 그가 죽기 전에 해야 할 리스트에도 말타기가 있다. 하지만 쥬얼이 말을 타보겠다냐고 했을 때 조용히 그 제안을 거부했다. 생애 마지막 순간을 위해 말타기를 아껴두겠다는 듯이... 그랬던 그가 경찰에 체포되기 전에 느긋하게 쥬얼의 농장에서 말을 타며 경찰을 기다린다. 언덕 위에서 경찰차를 바라보던 포레스트의 모습은 참으로 쓸쓸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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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생계의 문제가 아닌 삶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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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포레스트 터커가 아무리 신사적이라고 해도 그가 은행 강도를 일삼는 범법자인 것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미스터 스마일]은 마치 은행 강도에 불과한 포레스트 터커를 미화하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분명 영화를 있는 그대로만 바라보면 그렇다. 하지만 한 꺼풀 껍질을 벗겨내 보면 [미스터 스마일]의 주제는 달라진다.

영화에서 포레스트를 뒤쫓는 텍사스주 경찰 존 헌트(케이시 애플렉)는 중년의 위기를 맞이한 캐릭터이다. 겉보기에 그는 단란한 가정을 이룬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의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하루하루를 권태감과 무기력증에 빠져 살고 있다. 그런 그가 포레스트 터커 사건을 맡게 된다. 처음엔 그저 잡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수사권을 FBI에게 빼앗기고 나서도 포레스트를 뒤쫓으며, 점점 그에게 매혹된다. 포레스트의 정체를 알게 된 그가 영화에서 처음으로 격정적인 태도로 아내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삶의 주기가 있다. 태어나고, 성장하여 전성기를 맞이하다가 서서히 황혼의 나이가 되며 인생을 마감한다. 그렇기에 젊었을 때는 모든 것이 의욕적이고 활기차지만, 그러한 젊음이 지나고 나면 무기력해지고 나약해진다. 존이 그렇다. 처음 경찰이 되었을 때 그는 분명 뛰어난 경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중년의 무기력한 경찰일 따름이다. 그런 그의 눈에 나이 일흔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성기 시절처럼 은행 강도 짓을 서슴지 않는 포레스트는 특이한 존재였을 것이다. 돈이 필요해서 은행 강도를 하는 것이 아닌, 은행 강도가 마치 삶의 목표이라도 되는 듯이, 그는 여전히 은행 강도를 할 수 있는 것을 즐거워하며 행복한 표정으로 은행을 턴다. (국내 개봉명이 '미스터 스마일'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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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다해 즐기는 일이 있는 한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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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미스터 스마일]은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지며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이다. 그리고 그것은 50년의 연기 인생을 마감하려는 로버트 레드포드를 위한 헌사이기도 하다. 60년 동안 은행을 털면서 행복해하던 포레스트 터커를 향한 존 헌트의 놀라움처럼, 50년 동안 영화계에서 종사하며 수많은 전설을 남긴 로버트 레드포드에 대한 찬사이다.

[미스터 스마일]의 감독인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전작인 케이시 애플렉과 루니 마라가 주연을 맡은 [고스트 스토리]이다. 이 영화는 제목처럼 귀신을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결코 공포 영화는 아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C(케이시 애플렉)가 영혼이 되어 세상에 홀로 남겨진 M(루니 마라)의 곁을 맴돈다는 내용인데, 그렇다고 해서 [사랑과 영혼]과 같은 가슴 찡한 판타지 멜로 영화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고스트 스토리]는 굉장히 정적이며, M이 다시 자신을 기억하길 바라며 끊임없이 기다리는 C의 여정과 소멸을 롱테이크로 잔잔하게 담아냈다.

[미스터 스마일]은 [고스트 스토리]처럼 극단적으로 잔잔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데이빗 로워리 감독은 로버트 레드포드를 떠나보내며 시끌벅적한 환송회를 여는 대신 포레스트 터커라는 은행 강도를 통해 그동안 행복했노라며 미소 짓는 로버트 레드포드를 조용히 바라만 본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