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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실뱅 쇼메

더빙 : 미쉘 코크투, 장-클로드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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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애니메이션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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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저녁, 퇴근 후 혼자 [사바하]를 보겠다고 당차게 예매까지 했지만 결국 [사바하]에 귀신이 나온다는 어느 네티즌의 짧은 댓글에 덜컥 겁을 집어먹고 예매를 취소하고 말았다. 그 무섭다는 [곡성]도 봤고, 장재현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도 봤다. 하지만 그땐 아내와 함께였다. 그런데 이번엔 아내가 [사바하]를 안 보겠다고 선언을 해버리니 혼자서는 도저히 [사바하]를 보러 갈 용기가 나지 않더라.

[사바하]를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딱한 처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공포 영화를 보지 못하게 되어 버린 내 약한 심장을 원망하며 공포 영화에 대한 도전 대신 프랑스 애니메이션에 대한 도전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공포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프랑스 애니메이션 또한 내겐 도전이라 할만하다. 내게 프랑스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은 2004년에 본 [판타스틱 플래닛]과 연결되어 있다. [판타스틱 플래닛]은 트라그라고 부르는 푸른 거인들이 지배하는 이얌행성을 배경으로 트라그의 애완동물이나 장난감처럼 취급되던 인간들이 트라그에 대항해 싸운다는 내용이다. 분명 [판타스틱 플래닛]은 미국 애니메이션에서는 볼 수 없는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뒷골이 당기고 어지러웠다. 결국 그 이후로 프랑스 애니메이션은 내게 독특하지만 보고 싶지는 않은 영화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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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셔니스트]의 감독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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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프랑스 애니메이션이 내게 나쁜 기억만 안겨준 것은 아니다. 워낙 [판타스틱 플래닛]의 기억이 강력하여 무의식적으로 프랑스 애니메이션을 피하고는 있지만 [일루셔니스트]라는 마음의 울림이 있는 애니메이션도 분명 존재한다. [일루셔니스트]는 세월이 흘러갈수록 설자리를 잃어가는 마술사가 앨리스라는 소녀를 만나 함께 여행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마술을 좋아하는 소녀의 환상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던 늙은 마술사는 결국 자신이 소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닫고 '마법사는 없어!'라는 메모를 남긴 채 소녀의 곁을 떠난다. 그 마지막 장면은 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번에 내가 도전한 프랑스 애니메이션 [벨빌의 세 쌍둥이]는 [일루셔니스트]를 연출한 실뱅 쇼메 감독의 초기 작품이다. [일루셔니스트]가 2010년, [벨빌의 세 쌍둥이]가 2003년에 만들어졌다. [일루셔니스트]가 만들어지기 7년 전의 영화라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실뱅 쇼메 감독을 믿어보기로 했다.

[벨빌의 세 쌍둥이]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 유일한 행복인 외로운 소년 챔피언과 챔피언의 할머니인 수자의 이야기이다. 챔피언은 커서 '트루 드 프랑스' 대회에 참여하지만 대중 도중 미국 마피아에 의해 납치된다. 수자는 챔피언을 구하기 위해 애완견 브루노와 함께 미국으로 향하고 미국에서 재즈그룹으로 활동하는 '벨빌의 세 쌍둥이'를 만나 도움을 받으며 챔피언을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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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그림체가 일단 시선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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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벨빌의 세 쌍둥이]의 내용은 별것 없다. 1시간 15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이 말해주듯이 이 영화는 치밀한 스토리 전개를 내세우는 영화는 아니다. 브루노가 차의 바퀴 역할을 대신한다거나, 수자는 작은 배로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간다거나, 쫓아오는 마피아단의 자동차를 수자가 다리걸기로 부숴버리는 등 어이가 없을 정도로 과장된 장면도 많다.

[일루셔니스트]에서도 그랬지만 대사가 거의 없다 보니 살짝 지루하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분명 [벨빌의 세 쌍둥이]는 굉장히 인상적인 애니메이션이다. 특히 캐릭터의 몸을 과장되게 그린 그림체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피아단의 몸은 거의 직사각형이고, '투드 드 프랑스' 대회에 참가한 챔피언을 비롯한 사이클 선수들은 몸에 비해 엄청나게 두꺼운 다리를 자랑한다. 캐릭터의 특성에 맞게 과장되게 그려진 그림체는 내가 주로 보는 미국, 일본,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영화의 타이틀롤인 '벨빌의 세 쌍둥이'도 인상적이다. [벨빌의 세 쌍둥이]의 영화 초반 흑백 TV 화면을 통해 젊은 시절의 세 쌍둥이를 보여주고, 수자가 미국에 도착한 이후 늙은 세 쌍둥이를 보여주는데, 이 세 쌍둥이는 개구리를 주식으로 삼고, 신문지와 냉장고, 청소기를 악기로 삼아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 특히 개구리를 먹는 장면은 굉장히 그로테스크하다. 그래도 그러한 비참한 생활 속에서 행복하게 웃는 세 쌍둥이의 모습은 이 영화의 유일한 활력소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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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이런 도전도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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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각자의 취향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주로 본다.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자신의 취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험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고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억지로 보라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끌리지만, 내 취향의 영화가 아닌 것이 분명한 영화를 보는 것이다. 해볼 만한 모험이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면 동심으로 돌아가 나도 모르게 행복해진다. 하지만 [벨빌의 세 쌍둥이]는 분명 관객으로 하여금 동심으로 돌아가게끔 해주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대신 내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독특함을 안겨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재미있다', '감동적이다'가 아닌, '독특하다', '인상적이다'라는 기분만 남는다. 그런데 그러한 기분이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 가끔 이런 기분을 느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벨빌의 세 쌍둥이]를 보고 나서 다시 한번 [사바하]에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 [사바하]는 분명 내 취향의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서는 [사바하]를 보라고 재촉한다. [곡성] 때도 그랬었다. 무지 무섭지만, 다음 주에는 [사바하]를 혼자 보러 가는 모험을 감행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