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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이민재

주연 : 정재영, 김남길, 엄지원, 이수경, 정가람, 박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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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직업]처럼 웃음 폭탄을 안겨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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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극한 직업]은 나와 아들에게 만족스러운 웃음을 안겨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내는 [극한 직업]를 보지 못했다. "나도 보고 싶었는데..."라며 투덜거리는 아내를 위해 내가 추천한 영화는 [기묘한 가족]이다. [극한 직업]처럼 예고편에서부터 내게 웃음을 안겨준 이 영화는 좀비 코미디라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관객을 웃음의 도가니 속에 빠뜨릴 것이 분명해 보였다. 결국 우리 가족은 편안하고 안락하게 소파에서 TV를 시청할 시간인 토요일 저녁에 매서운 바람을 뚫고 [기묘한 가족]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아들의 첫마디는 "이게 무슨 영화예요?"이다. [극한 직업]을 보며 나와 함께 배꼽을 잡고 웃었던 아들은 [기묘한 가족]에게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인 것이다. 아내는 굳게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는 "그냥 [극한 직업]을 봤어야 하는 건데..."라며 살며시 나를 째려본다. [기묘한 가족]을 보며 온 가족이 웃음꽃을 피우려 했던 내 계획은 이렇게 엉망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솔직히 나는 [기묘한 가족]이 그렇게 재미없지는 않았다. 아내와 아들도 나와 비슷하게 그럭저럭 재미있게는 봤다는 평이다. 하지만 [기묘한 가족]의 기준점이 하필 [극한 직업]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명량]에 이어 역대 흥행 2위를 기록 중인 [극한 직업]에 맞춰 [기묘한 가족]을 봤으니 웬만큼 웃음 폭탄을 안겨주지 않고서는 관객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앞으로 개봉할 코미디 영화들도 비슷한 처지가 될 텐데... 참으로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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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좀비는 특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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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좀비는 우리에게 친숙한 소재가 되었다. 한때 좀비는 [이웃집 좀비], [미스터 좀비] 등 소시민의 고단한 일상을 풍자한 저예산 독립 영화에서나 썼던 소재였고, [인류멸망보고서], [무서운 이야기] 등 옴니버스 영화에 잠시 등장하는 공포 소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부산행]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좀비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부산행]은 천만 관객을 훌쩍 넘어서며 좀비라는 소재를 우리나라 관객에게 친숙하게 만들었고, 이후 [부산행]의 프리퀄 애니메이션인 [서울역], 조선시대를 무대로 한 좀비 영화 [창궐]이 우리나라 좀비 영화의 명맥을 이어 나갔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조선시대 좀비 드라마 <킹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봉한 [기묘한 가족]은 기존 좀비 영화와는 다른 차별화를 선언했다. 바로 코미디와의 접목이다. 좀비 영화에 깊은 전통을 자랑하는 서양에서는 이미 [새벽의 황당한 저주]라는 걸작 좀비 코미디가 관객을 열광시켰기에 [기묘한 가족]은 잘만 하면 우리나라 좀비 영화의 새 장을 열 수도 있었다.

시작은 좋았다. [기묘한 가족]은 어느 제약회사가 만들어낸 치료약의 부작용으로 좀비가 창궐한다는 굉장히 뻔한 기본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기본 설정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좀비 바이러스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염되었는가?이다. 그런 면에서 [기묘한 가족]의 아이디어는 기발하다. 우연히 좀비에게 물리는 바람에 오히려 젊어진 만덕(박인환)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돈을 들고 떼거지로 나타나 서로 좀비에게 물리겠다며 줄을 선다는 설정이다. 농촌의 노령화 문제, 그리고 우리나라의 보신 문화를 적당히 풍자한 것으로 내가 [기묘한 가족]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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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설정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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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사람들, 어귀적 거리며 사람들을 쫓아가는 좀비, 좀비가 사람들을 물고, 좀비에 물린 사람들은 좀비가 되고... 뭐 이런 전형적인 방식이 [기묘한 가족]의 초반엔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오히려 좀비에게 물리겠다고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은 굉장히 기묘하면서도 기발하다. 문제는 그 이후이다. 만덕의 가족이 벌인 신종 사업 '좀비에게 물리기'로 영화의 전체를 이끌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민재 감독이 꺼내든 회심의 카드는 결국 가족이다. 쉽게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어머니의 부재, 조금은 모자란 장남, 뻔뻔스러운 둘째 아들, 괴짜인 셋째 딸까지... 이민재 감독은 [괴물]의 가족 구성원을 고스란히 [기묘한 가족]에 가져왔다. 그 결과 첫째 준걸(정재영)은 한심할 정도로 무능력하고(그래도 [괴물]의 강두(송강호)처럼 가족애는 강하다.) 둘째인 민걸(김남길)은 짜증이 날 정도로 뻔뻔하다. 셋째인 해걸(이수경)은 좀비에게 쫑비(정가람)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러브라인을 형성할 정도로 괴짜이다. (좀비 로맨스 [웜 바디스]의 아이디어를 노골적으로 차용했다.) [기묘한 가족]만의 독창적인 캐릭터라면 생활력 강한 며느리 남주(엄지원) 뿐이다.

이제 남은 것은 만덕의 가족들과 쫑비가 얼마나 기발하게 좀비 코미디를 이끌어 갈 것인가?이다. 그런데 바로 이 중요한 시점에서 이민재 감독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바닥이 나고 만다. 결국 마을을 가득 채운 좀비떼의 습격이라는 전형적인 좀비 영화로 회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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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떼의 출몰과 함께 영화는 억지스러운 설정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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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주고 쫑비에게 물린 마을 사람들은 젊은 활기를 되찾는다. 하지만 좀비 바이러스는 잠복기간이 있었고, 결국 쫑비에게 물린 마을 사람들이 좀비로 바뀌면서 평화롭던 마을은 지옥으로 변한다. 어차피 좀비 영화의 재미는 좀비떼의 습격이다. [기묘한 가족] 또한 좀비떼의 습격을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삼았고, 나는 그것을 탓할 생각이 전혀 없다. 문제는 '왜?'라는 의문이다.

왜? 마을 사람들은 일시에 좀비로 변했을까? 쫑비에게 물린 시간은 각기 다른데 갑자기 일시에 모두 좀비로 변했다면 뭔가 잠복기를 끝낼 도화선이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영화엔 그 어떤 도화선도 보이지 않는다. 왜? 좀비가 된 마을 사람들에게 물린 사람들은 잠복기가 없이 즉각 좀비가 되었을까? 쫑비에게 물린 사람들에겐 잠복기가 있고, 다른 좀비에게 물린 사람들에겐 잠복기가 없다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러한 설명보다는 그저 좀비떼 출몰을 위한 억지 설정이라는 것이 더 신빙성이 있다.

점점 사람화되어 가는 쫑비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고, 엄청난 좀비떼 속에서 만덕의 가족들이 무사한 것도 억지스러웠다. 영화의 중간에 이 느슨한 설정을 팽팽하게 조여줄 뭔가 극적인 장치를 심어 놓았어야 했지만, [기묘한 가족]에는 그러한 치밀함이 부족하다. 결국 [기묘한 가족]은 영화 도입부의 기발함을 오래 끌어내지 못하고, 결국엔 억지 좀비 코미디로 귀결되고 만다. (이후 스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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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의 귀환으로 어느 정도 의문점이 해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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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라면 나는 [기묘한 가족]에 대해서 최악의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다른 건 참아도 억지스러운 설정만큼은 참지 못하는 내게 [기묘한 가족]의 좀비떼 습격 장면은 고개가 절로 흔들어지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결국 준걸, 민걸, 해걸, 남주는 좀비떼의 본거지가 된 주유소를 탈출한다. 하지만 이미 대한민국은 좀비떼의 습격으로 초토화가 되었고, 준걸 또한 좀비가 되어 버린 상황에 직면한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하와이로 떠났던 만덕이 돌아온다. 그리고 억지스러워 보였던 영화의 장면들의 퍼즐이 어느 정도 끼워 맞춰진다.

만덕은 좀비 바이러스에 항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만덕은 쫑비에게 물렸지만 좀비가 되지 않고 오히려 청춘을 되찾는 효과를 가져왔고, 만덕이 아닌 다른 마을 사람들은 일정 기간의 잠복기를 거쳐 좀비가 된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쫑비이다. 처음 쫑비는 전형적인 좀비 상태였지만 만덕의 머리를 물고 나서는 사람보다는 양배추와 케첩을 더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인간화가 되어가는데, 좀비떼의 출몰 장면에서는 해걸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완전히 인간화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만덕의 피 덕분이었던 것이다.

쫑비에게 물린 마을 사람들만이 일정 기간 잠복기가 있었던 이유는 이미 쫑비에게 만덕의 피가 들어갔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만덕의 등장과 더불어 이루어진 갑작스러운 설명이 [기묘한 가족]의 재미를 되살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억지 설정의 오해만은 벗을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그 덕분에 나에게 [기묘한 가족]은 최악의 좀비 영화에서 벗어나 그럭저럭 즐길 수 있는 코미디 영화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