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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국식 카 체이싱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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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면 꼭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자동차 추격, 일명 카 체이싱 장면이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깨지고, 구르고, 박살이 나는 장면은 관객에게 스펙터클한 재미를 안겨주는데, 액션 영화의 장인으로 떠올랐던 마이클 베이 감독이 그러한 카 체이싱 액션으로 할리우드의 흥행 감독으로 우뚝 선 바 있다. 하지만 카 체이싱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비교해서 저예산에 불과한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일단 도로를 통제해야 하고, 수많은 고가의 차량이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에 제작비 상승이 동반되며, 위험한 고난도의 스턴트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의 액션 영화에게는 아직 시기 상조이다.

내가 [뺑반]을 주목한 이유는 [뺑반]이 본격 카 체이싱 액션 영화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뺑반]의 악당은 F1 레이스 출신의 사업가 정재철(조정석)이다. 경찰 내 최고 엘리트 조직 내사과 소속 경위 은시연(공효진)은 정재철이 경찰청장에게 뇌물을 준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 중이었지만 무리한 강압수사를 벌였다는 오명을 쓰고 뺑소니 전담반으로 좌천된다. 그리고 때마침 정재철이 미해결 뺑소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되며 은시연과 정재철의 2라운드 대결이 펼쳐진다.

정재철이 F1 레이서라는 설정은 [뺑반]의 액션이 카 체이싱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당찬 선언과도 같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정재철이 F1 레이서 출신 사업가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은시연이 뺑소니 사건 전담반으로 좌천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제 관객 입장에서는 F1 레이서 출신 악당과 뺑소니 전담반 경찰의 시원시원한 카 체이싱 액션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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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와 서민재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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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뺑반]이 당차게 카 체이싱 액션을 선언했다고 해서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카 체이싱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카 체이싱은 마지막 하이라이트에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카 체이싱이 없는 영화의 초중반은 무엇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인가? 정답은 바로 캐릭터 구축과 치밀한 스토리 전개이다. 제아무리 멋진 카 체이싱 액션이 후반에 펼쳐진다고 할지라도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한준희 감독도 이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서민재(류준열)이다.

은시연의 눈에 비친 서민재의 첫인상은 그냥 날라리 경찰에 불과하다. 뺑소니 사건을 수사하며 매뉴얼대로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감대로 행동하는 그의 모습은 못 미덥기까지 하다. 하지만 은시연은 이내 서민재의 진가를 알게 된다. 차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을 지닌 그는 뺑소니 사고 현장의 CCTV를 보지 않고서도 뺑소니 가해자 차량의 범인이 어떤 차인지 정확하게 알아낸다. 뺑소니 사건 수사를 설렁설렁하는 듯 하니지만, 자타 공인 뺑소니 전담반의 에이스이자 일당백의 실력을 갖춘 능력자였던 것이다.

서민재가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그의 과거의 행적이다. 그는 과거 폭주족에 마약 판매까지 일삼던 악질이었다. 그러다가 당시 경찰이었던 서정채(이성민)의 추격을 받게 되고, 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로 서정채는 큰 부상을 입고 경찰을 그만두어야 했으며, 서민재는 소년원에 수감되어야 했다. 그런데 서정채가 그런 서민재를 양아들로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서민재는 폭주족이었던 김민재라는 과거와 뺑소니 전담반 에이스인 서민재라는 현재라는 상반된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두 개의 자아는 영화 후반 정재철과의 대결에서 매력을 폭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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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재의 캐릭터만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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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민재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했으니 영화 후반 카 체이싱 액션 장면만 잘 연출해내면 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아니다. 잊지 말자. 이 영화는 뺑소니 전담반에 좌천된 내사과 소속 경위 은시연과 F1 레이서 출신 사업가 정재철의 대결이 주요 내용이다. 물론 서민재도 그들의 대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굳이 따진다면 서민재는 세 번째 주인공인 셈이다. 그런데 [뺑반]은 서민재의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구축해 놓고, 은시연과 정재철의 캐릭터는 거의 방치해버린다.

은시연의 캐릭터는 너무 전형적이다. 여성이지만 터프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이런 류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캐릭터이다. 그녀는 윤과장(염정아)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정재철을 잡기 위해 뺑소니 전담반을 이용할 정도로 냉철하다. 그것 외에는 은시연만의 독특한 색깔이 없다. 그래서 영화 내내 은시연의 존재감은 희미할 뿐이다.

그나마 한준희 감독은 정재철의 캐릭터만큼은 신경을 쓴 것 같다. 금수저들 틈에서 흙수저로 자란 정재철은 독기를 품고 사업가로 성공했다. 그는 밑바닥에서부터 꼭대기로 올라왔기에 성공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그런데 그런 그가 말더듬이이다. 정재철이 말더듬이라는 설정은 나름 정재철의 개성을 돋보이기 위한 설정인듯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정재철의 광기와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 사업의 투자자인 재벌 2세들에 대한 폭력, 통제불능 막무가내식 광기가 가능한 그의 뒷배경 등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서 정재철의 캐릭터는 독특하지만 결코 매력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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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해결의 짜임새도 구멍이 슝슝 뚫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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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반]의 캐릭터 매력에 대한 점수는 60점이다. 60점의 점수는 거의 서민재에 의한 것이고, 은시연, 정재철에 의한 점수는 굉장히 작다. 하지만 캐릭터 점수는 [뺑반]의 스토리 전개 점수에 비해 나은 편이다. [뺑반]은 수사극이다. 당연히 정재철이라는 거물을 잡기 위한, 은시연을 위주로 뺑소니 전담반의 수사가 얼마나 치밀한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뺑반]은 전혀 치밀하지 못하다.

정재철을 잡기 위한 소모킹건은 정재철이 경찰청장에게 뇌물을 주는 장면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이다. 애초에 윤과장이 이끄는 내사과는 이 블랙박스를 확보하기 위해 작전을 펼치다가 실패한다. 뺑소니 전담반도 마찬가지이다. 정재철이 일으킨 뺑소니 사건도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결국 이 블랙박스는 정재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정재철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블랙박스 영상은 지워지거나, 최소한 다른 안전한 금고로 옮겨져야 했다. 블랙박스가 차에서 절대 떼어낼 수 없는 그런 부품도 아닌데, 여전히 블랙박스는 정재철의 부스터에 달려 방치되어 있다. 도대체 왜?

결국 [뺑반]은 정재철이라는 거물을 잡기 위해 블랙박스만 차지하면 된다고 관객에게 말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정재철과 서정채의 사고는 너무 우연에 치우쳤고, 윤과장이 선택은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그러한 상황에서 [뺑반]은 영화의 부족한 짜임새를 숨기기 위해 감성에만 호소하는 전개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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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성 위에 펼쳐진 카 체이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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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것은 처음부터 [뺑반]에 기대했던 카 체이싱 액션 장면이다. 분명한 것은 규모 면에서 [뺑반]의 카 체이싱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카 체이싱과 비교해서 부족할 것이라는 점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카 체이싱을 넘어서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이제 막 걸음마를 하는 어린아이가 육상 선수와 100m 달리기 시합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뺑반]의 캐릭터 구축과 스토리 전개 매력적이고, 치밀하길 기대한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카 체이싱 액션 장면의 스케일이 부족하더라도 그들의 레이스만으로도 충분히 액션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뺑반]은 내 기대감을 채우지 못했다. 그로 인하여 후반 카 체이싱 액션 장면은 부실한 모래성 위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안타깝기만 했다.

물론 정재철과의 마지막 대결을 은시연이 아닌 서민재로 삼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은시연보다 서민재의 캐릭터가 훨씬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재철이 "김민재라면 나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라며 서민재를 자극하는 장면에서 류준열의 눈빛 연기는 최고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예상대로 매력적인 캐릭터와 치밀한 스토리 전개 위에서 펼쳐지지 못한 카 체이싱 장면은 그저 그랬고, 견인차 운전자들의 도움 장면은 너무 억지 감동을 부르는 가식적인 설정이라서 내겐 별로였다. 한준희 감독은 엔딩 크레딧 중간 쿠키영상에서 김고은을 출연시켜 2편을 예고했지만, [뺑반]만 놓고 본다면 그다지 기대가 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