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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이병헌

주연 : 류승룡, 이하늬, 진선규, 이동휘,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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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런 영화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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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해 벽두부터 한국 영화의 화두는 코미디이다. 비록 전통 코미디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주연 배우 유해진의 코믹 연기가 많이 가미된 [말모이]가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었고, [내안의 그놈]도 [말모이]에 이어 2주 연속 2위를 기록하며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설 연휴를 겨냥한 영화도 작년에는 [조선명탐정 : 흡혈괴마의 비밀], [흥부] 등 사극 영화가 주를 이루었지만 올해는 코미디, 액션을 장르로 삼은 [극한 직업], [땡반]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코미디 장르의 흥행은 장기적인 경제 불황에 시달리며 잠시라도 웃고 싶은 우리 소시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나 역시 요즘의 시류에 맞게 코미디 영화가 무지 당긴다. [내안의 그놈]과 [말모이]가 개봉하자마자 챙겨본 이유도 코미디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안의 그놈]과 [말모이]를 보며 맘껏 웃지는 못했다. [말모이]의 경우는 일제시대라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상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이지만, [내안의 그놈]은 많은 관객들의 부담 없이 실컷 웃었다는 평이 많았기에 오히려 내겐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나는 [극한직업]을 기대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만약 [극한직업]마저 나를 웃기지 못한다면 큰 좌절에 빠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웃음이 사라져 버린 나 자신을 탓하거나, 코미디 영화이면서도 웃기지 않는 한국 영화를 탓하거나, 웃으려고 극장을 찾았다가 누군가를 탓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기대했던대로 [극한직업]을 보는 내내 웃었다. 그 흔한 후반부 감동 코드조차 없는 [극한직업]의 깔끔한 코미디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나를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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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어이없고, 살짝 어설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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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극한직업]에서 웃음의 원천은 무엇일까? 먼저 영화의 초반은 마치 과거 심형래의 코미디 연기를 보는 듯한 마약반 다섯 형사의 바보 같은 행동들에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영화 첫 장면에서 고반장(류승룡)이 이끄는 마약반이 마약 중간거래상인 환동(이종욱)을 잡기 위해 3층 사무실을 창문을 통해 급습한다. 하지만 유리창을 깨고 멋지게 등장하는 것이 아닌, 유리창 값 물어줄까 봐 대롱대롱 매달려서 모양새 빠지게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부터 [극한직업]이 추구하는 코믹 코드가 무엇인지 관객에게 확연하게 드러낸다.

그렇다. [극한직업]은 바보 같은 형사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들로 관객을 웃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고반장이 이끄는 마약반의 형사들이 진짜 바보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뭔가 어이없고, 살짝 어설퍼서 그냥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고반장보다 서열이 낮지만 먼저 승진한 최반장(송영규)의 팀이 소고기 회식을 한다고 하자 천연덕스럽게 따라가는 고반장의 모습이라던가, 나이가 어린 최반장에게 '한 번도 동생이라 생각한 적 없다'며 형이라고 부르는 고반장의 비굴한 장면 등, 엄밀하게 따진다면 고반장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해서 가슴이 아파야 할 장면인데 [극한직업]은 천진한 표정으로 관객을 웃기려 덤빈다.

이런 어설픈 마약반의 행동은 이무배(신하균)를 잡겠다며, 이무배의 은신처 맞은편의 치킨집을 인수하는 장면에서도 여전하다. 사실 치킨집 인수는 거물 마약상을 잡기 위한다는 명분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작전이다. 하지만 뭔가 어이없고, 살짝 어설픈 마약반은 예상외로 맛있게 치킨을 튀겨냄으로써 또다시 이상한 방향으로 사건을 흘러나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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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데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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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의 웃음은 항상 이런 식이다. 분명 영화 속의 캐릭터들은 진지하다. 그들이 대놓고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그들은 정상적으로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웃긴다. 치킨집 장면만 해도 영화 후반부 고반장의 명대사인 '모든 자영업자들은 목숨 걸고 일한다'는 말을 마약반은 그저 몸소 실천했을 뿐이다. 비록 이무배를 감시하기 위해 치킨집을 인수했지만, 손님을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해서 목숨 걸고 치킨집을 운영하는 마약반의 모습은 주객이 전도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을 웃게 만든다.

진지한데 웃긴 것은 마약반만이 아니다. 거물 마약상인 이무배와 이무배의 라이벌 마약상인 테드 창(오정세) 또한 영화의 박장대소에 한몫한다. 테드 창에게 본명인 창식이라 부르며 "성이 창씨도 아닌데 왜 영어 이름이 테드 창이야? 너 영어 이름 지을 줄 모르지?"라며 깐죽대는 이무배의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독전]을 비롯해서 최근 개봉한 [마약왕]까지, 한국 영화에서 마약상은 광기에 휩싸인 잔인한 범죄자들이었다. 하지만 [극한직업]에서는 그러한 인식을 깨버린다. 물론 이무배와 테드 창은 분명 잔인한 범죄자들이 맞다. 그런데 그들의 말투, 행동은 마약반이 그랬던 것처럼 웃기기만 할 뿐이다.

이무배가 이끄는 조선족 출신 마약조직원들 또 어떠한가? [황해]에서부터 시작하여 [범죄도시]를 최정점으로 조선족으로 구성된 범죄 조직은 한국 영화에서 언제나 낯선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극한직업]은 그러한 한국 영화 관객들의 인식을 살짝 뒤집는다. 분명 [극한직업]에서의 조선족 마약조직원들은 [황해], [범죄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살짝 어설픈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게 또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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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웃다 보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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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에서 마약조직을 소탕하기 위한 마약반의 잠입수사라는 소재 자체는 진지하다. 그리고 캐릭터들도 소재만큼이나 나름 진지하게 행동한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이 아주 살짝 어설프다. 그럼으로써 영화 전체를 웃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이병헌 감독의 힘이다. 이병헌 감독은 2015년 개봉한 김우빈, 강하늘, 이준호 주연의 [스물]을 통해 코미디 영화 연출에 재능을 선보였고, 그 후 [바람 바람 바람]에 이어 [극한직업]으로 이어지며 코미디 전문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만약 [극한직업]이 몸 개그와 말장난으로만 이루어진 영화였다면 이렇게 웃길 수가 있었을까? 몸 개그가 웃길 수는 있겠지만, 2시간 안팎이라는 영화의 러닝타임을 생각한다면 무리가 따른다. 그렇기에 몸 개그는 10분 내외의 TV 코미디쇼에 적합하다. 말장난도 마찬가지이다. 2시간 동안 말장난으로만 관객을 웃게 만드는 영화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엄청난 드립력이 아니라면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상황으로 웃긴다. 조폭 두목과 왕따 고등학생의 몸이 뒤바뀌는 설정을 지닌 [내안의 그놈]처럼 말이다. 그런데 [극한직업]의 상황은 [내안의 그놈]처럼 특별하지도 않다. 잠입수사를 위해 인수한 치킨집이 대박 났다는 설정 외엔 다른 것이 없다.

결국 [극한직업]이 영화 내내 웃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 모든 요소들이 잘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몸 개그와 말장난이 적재적소에 과하지 않을 만큼만 이루어졌고, 설정 또한 특별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캐릭터까지 매력적이다. 그러니 한가지 요소에 질리지 않을 만큼 골고루 웃긴 것이다. 마치 후라이드, 양념, 간장 소스, 갈비 소스 등의 치킨을 질리지 않을 만큼 골고루 먹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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