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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M. 나이트 샤말란

주연 : 제임스 맥어보이, 브루스 윌리스, 사무엘 L.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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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만에 드디어 완결된 3부작 슈퍼 히어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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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에 대한 나의 기대는 명백하게 2000년에 국내 개봉한 [언브레이커블]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모두가 [식스 센스]에 열광하며 [식스 센스] 바로 이후에 만들어진 [언브레이커블]을 외면할 때, 내 주위에선 나 혼자 [식스 센스]보다 [언브레이커블]에 더 열광했으니 그때부터 내 영화 취향은 약간 마이너했었나 보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식스 센스]와 더불어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중 최고의 흥행작인 [싸인]이 나는 실망스러웠다는 점이다. 아마도 [언브레이커블] 바로 이후에 만들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언브레이커블]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졌을 때 갑자기 튀어나온 영화가 [23 아이덴티티]이다. 당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실망스러운 영화를 연출하고 있었으며,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걸작 스릴러 [아이덴티티]를 연상시키는 촌스러운 국내 제목 때문에 내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23 아이덴티티]가 [언브레이커블]과 세계관이 연결된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게 된 나는 [23 아이덴티티]가 개봉한지 2주가 흐르고 나서야 뒤늦게 극장으로 향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글래스]가 개봉했다. [언브레이커블]이 개봉한지 19년 만에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만들어낸 슈퍼 히어로 3부작이 완결된 셈이다. 당연히 나는 [언브레이커블]과 [23 아이덴티티]를 다시 보며 [글래스]를 재미있게 보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비록 계획과는 달리 [글래스]가 개봉한지 1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극장으로 향할 수 있었고, 그 사이 [글래스]의 흥행이 저조하여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글래스]에 대한 나의 기대감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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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슈퍼 히어로 영화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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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이야기하겠다. [글래스]는 결코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언브레이커블]에서부터 이어진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이상한 슈퍼 히어로 영화는 [글래스]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MCU, DCEU 영화들이 매년 몇 편씩 개봉하며 관객의 마음속에는 슈퍼 히어로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자리 잡았다. 멋진 슈트를 입고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지닌 채 악의 무리와 싸우는 정의의 사도를 특수효과와 스펙터클로 포장한 영화가 우리가 원하는 슈퍼 히어로 영화의 전형이 아닐까? 하지만 [글래스]는 태생부터가 기존의 슈퍼 히어로 영화들과 다르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브레이커블]을 살펴보아야 한다.

[언브레이커블]은 정말 이상한 슈퍼 히어로 영화이다. 131명이 현장에서 즉사한 대형 열차 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에게 선천적으로 뼈가 약해 툭하면 골절상을 당하는 엘리야 프라이스(사무엘 L. 잭슨)가 찾아온다. 엘리야는 데이빗에게 "당신은 슈퍼 히어로입니다."라고 말하지만 데이빗은 선뜻 믿지 못한다. 그러다가 영화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인다. [언브레이커블]이 이상한 슈퍼 히어로 영화인 이유는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관객을 의심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정말 데이빗은 슈퍼 히어로일까? 혹시 엘리야의 망상은 아닐까? 그러한 의심은 [글래스]에서도 이어진다.

통제가 불가능한 24번째 인격 비스트를 깨운 케빈(제임스 맥어보이)은 계속해서 살인 행각을 이어 나가고, 데이빗은 그러한 비스트와 한판 대결을 펼친다. 하지만 그들은 경찰에 포위되어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정신과 의사인 엘리 스테이플(사라 폴슨) 박사는 케빈과 데이빗를 치료하며 그들이 망상증 환자라고 강조한다. 스테이플 박사는 비스트가 벽을 타고, 쇠창살을 휘고, 총을 맞아도 끄떡없었던 이유를 설득시키고, 데이빗에게는 그가 물에 약점이 있는 이유, 그의 유일한 능력인 범죄 투시를 현실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실제로 케빈과 데이빗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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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이 영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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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브레이커블], [23 아이덴티티]에 이은 [글래스]가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와 다른 이유는 바로 그러한 의심이다. 일반의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관객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슈퍼 히어로와 슈퍼 빌런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하늘을 날고, 눈에서는 빔이 나오는 그들의 능력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는데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언브레이커블]과 [글래스]로 이어진 데이빗의 능력은 그렇게 초인적이지 못하다. 기껏 몸이 닿은 사람이 저지른 범죄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전부인데, 스테이플 박사는 그것이 데이빗의 뛰어난 관찰 능력 덕분이라 말하고, 그것은 충분히 설득력을 얻는다.

비스트의 능력도 마찬가지이다. 실제 비스트가 상처받은 자들의 구원자라 믿었던 패거리(비스트를 따르는 케빈의 인격들) 조차 비스트의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엘리야의 능력은 또 어떠한가. 그는 사실 슈퍼 빌런이라고 하기엔 너무 몸이 약한, 그저 머리가 남들보다 너무 똑똑한 강박증 환자에 가깝다. 스테이플 박사는 끊임없이 이 세상엔 슈퍼 히어로는 없으며, 모든 것이 스스로 만들어낸 망상에 불과하다고 케빈과 데이빗을 설득한다.

이쯤 되면 관객들조차 스테이플 박사의 주장이 혹시 맞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그때 엘리야가 움직인다. 이 영화의 제목이 엘리야를 뜻하는 '글래스'인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엘리야는 이 세상에는 보통 사람들의 능력을 초월하는 초능력자가 있음을 확신했고, 데이빗과 비스트를 이용해서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계획에 착수한다. 엘리야는 스테이플 박사에 의해 터지기 시작한 의심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이후 영화의 결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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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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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데이빗을 제외하고, 케빈과 엘리야는 빌런이다. 비록 케빈은 다른 인격들이 한 일이지만, 어린 여자아이들을 납치했고, 케빈의 24번째 인격인 비스트는 납치된 여자아이들을 먹어치웠다. 엘리야는 또 어떠한가? 그는 슈퍼 히어로를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테러리스트이다. 이쯤 되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데이빗과 비스트의 대결로 진행되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그러한 관객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무대까지 완성했다. 바로 개장 예정이라며 연일 영화속의 뉴스 화면으로 등장한 오사카 빌딩이다. 엘리야는 데이빗과 비스트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결을 펼침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역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남달랐다. 그는 모두가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끝맺음하지 않았다. 비스트와 함께 병원 탈출을 감행한 엘리야는 지하 1층에서 시간을 끌었고, 그로 인하여 데이빗과 비스트의 대결 무대는 오사카 빌딩이 아닌 병원 앞이 되고 만다. 그리고 데이빗과 비스트의 대결에 경찰이 끼어든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경찰은 대결이 끝나고 슈퍼 히어로가 슈퍼 빌런을 제압한 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나는 데이빗과 비스트의 대결을 지켜보던 스테이플 박사가 놀라운 표정을 하며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장면을 예상했다. 자신만만하게 케빈과 데이빗이 망상증 환자라고 주장했던 그녀가 자신이 틀렸음을 깨달았을 때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글래스]는 그러한 장면조차 나오지 않는다. 이건 애초에 슈퍼 히어로와 슈퍼 빌런의 대결을 담은 영화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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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감추려는 자들을 향한 외로운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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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플 박사는 초능력을 가진 자들의 존재를 감추려는 비밀 조직의 일원이었고, 그녀의 임무는 데이빗과 케빈의 치료가 아닌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었다. 영화 후반부 스테이플러 박사에 의해 데이빗을 죽는 장면에서 나는 내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에게 또다시 속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브레이커블]도 그러했다. 슈퍼 히어로의 탄생이라는 매력적인 이야기 앞에 나의 모든 관심은 데이빗에게 쏠려 있었다. 하지만 정작 [언브레이커블]은 엘리야의 이야기였다. [글래스]에서도 데이빗과 비스트의 대결에 관객의 관심을 집중시킨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영화의 진짜 빌런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스테이플 박사라는 반전을 제시한다. [언브레이커블]에 한번 당해 놓고 [글래스]에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트릭에 또 속아 넘어간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에게 속은 덕분에 [언브레이커블]이 내게 최고의 영화가 되었듯이, [글래스] 또한 내게 [언브레이커블]을 잇는 최고의 속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애초에 오사카 빌딩에 갈 생각이 아니었다. 엘리야 감시를 위해 병원 곳곳에 설치된 CC 카메라를 이용해서 데이빗과 비스트의 존재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이를 위해 그는 죽음도 불사했다. 케빈의 아버지가 데이빗이 당한 열차 사고 때 희생된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얼마나 꼼꼼하게 [글래스]를 준비했는데 보여준다. 그리고 엘리야의 희생을 감수한 마지막 계획은 [언브레이커블], [23 아이덴티티]를 이어 [글래스]로 향한 완벽한 결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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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마지막 이야기가 아닌,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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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이 죽는 장면에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엘리야와 비스트의 죽음은 어쩌면 예견된 결말이다. 어찌 되었건 그들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빌런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데이빗은 다르다. 그는 슈퍼 히어로이다. 그런데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결코 주저하지 않고 데이빗마저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마치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라면 기존의 캐릭터는 모두 죽어야 한다고 독하게 다짐한 것처럼 말이다. 결국 스테이플 박사는 데이빗과 비스트, 엘리야를 처치했지만, 초능력자에 대한 진실을 은폐하려는 계획에는 실패했다. 이제 초능력자에 대한 영상이 사람들에게 공개된 만큼 이후의 상황은 예측 불허가 되었다.

[글래스]는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완벽한 결말 외에도 참 많은 인상적인 장치를 해놓았다. [언브레이커블]에서 아버지가 슈퍼 히어로임을 처음부터 믿었던 조셉 던(스펜서 트리트 클락)의 역할과 엘리야의 어머니(살레인 우다드)의 모성애, 그리고 [23 아이덴티티]에서 납치된 여자아이 중 유일한 생존자인 케이시 쿡(안야 테일러 조이)과 케빈의 공감 등,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캐릭터의 효율적 배치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마지막으로 [언브레이커블] 때와 마찬가지로 깜짝 출연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모습이 반가웠다. [언브레이커블]에서는 데이빗이 일하는 풋볼 스타디움에서 데이빗에게 붙잡혀 몸수색을 당하는 마약 판매상으로 등장했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글래스]에서는 데이빗과 조셉이 운영하는 보안 설비 가게에서 데이빗에게 우리 어디에서 본 적이 없냐며 천연덕스럽게 말을 거는 손님으로 나온다. 그는 19년 전 잠시 방황했지만 지금은 착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그러한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며 다시금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를 예전처럼 기대를 해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