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일라이 로스
주연 : 잭 블랙, 케이트 블란쳇, 오웬 바카로, 카일 맥라클란

할로윈은 지났다. 그런데 나는 지난 주말 뒤늦게 할로윈을 제대로 만끽한 듯한 기분이다. 주말 동안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 [구스범스], [구스범스 : 몬스터의 역습]을 연달아 봤기 때문이리라. 그중에서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는 정말 할로윈과 딱 어울리는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였다. [캐빈 피버]로 감독 데뷔 후, [호스텔], [노크 노크] 등 주로 공포영화를 만들었던 일라이 로스 감독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으스스'했고, 극장 안을 제법 채운 어린이 관객들도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영화였다.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소년 루이스(오웬 바카로)가 유일한 혈육인 외삼촌 조나단(잭 블랙)과 함께 살기 위해 낯선 곳으로 오는 것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잠옷처럼 생긴 기모노를 입고 루이스를 마중 나온 괴짜 조나단과의 첫 만남. 게다가 조나단의 저택은 '헌티드 힐'같은 분위기이다. 불안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조나단은 밤만 되면 무언가를 찾아 어두운 집을 어슬렁거리고, 학교 친구들은 그 저택에서 사람이 살해되었다는 괴담을 들려주기도 한다. 이쯤 되면 루이스가 겁을 먹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잔뜩 겁을 먹은 루이스에게 조나단은 뜻밖의 비밀을 말해준다. 조나단은 마법사이고, 이 저택은 조나단의 오랜 동료인 아이삭(카일 맥라클란)의 집으로, 그가 숨겨 놓은 마법의 시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나단의 비밀을 알게 된 루이스는 자신도 마법을 배우겠다며 나선다. 언제나 외톨이였던 루이스에게 뭔가 특별한 능력이 생긴 것이다.   

 

 

기본적으로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는 그다지 특별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외톨이 소년이 자신도 몰랐던 마법사의 능력을 깨닫게 된다는 것은 이미 '해리 포터'의 기본적인 설정이다. 티격태격하는 조나단과 플로렌스(케이트 블란쳇) 커플도 그다지 새롭지 않고, 원래는 조나단의 동료 마법사였지만 2차 세계대전 참전 후 인간에 대한 혐오를 느끼게 된 아이삭도 판타지 영화에서 흔한 빌런에 불과하다.
제목 그대로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를 찾는 과정은 어이없다. 뛰어난 마법사라는 조나단과 플로렌스가 그토록 찾아 헤매도 찾지 못했던 마법시계가 루이스의 우스꽝스러운 주문으로 간단히 찾아지다니... 애초에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는 탄탄한 설정을 목표로 한 판타지 영화가 아님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가 노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할로윈에 자녀들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이다. 일라이 로스 감독은 공포 영화 전문 감독답게 영화의 분위기를 '으스스'하게 잘 이끌지만, 절대로 어린이 관객이 무섭다며 칭얼대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한다. 전쟁을 통해 인간에 대한 혐오를 느낀 아이삭은 시간을 되돌려 인간이 등장하기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러한 음모는 결코 철학적이지 않고 가볍게 그려져 있다. 루이스의 성장기 또한 '해리 포터'처럼 시리즈로 엮을 생각이 없다는 듯이 대충대충 그려져 있다. 그저 1시간 45분 동안 가볍게 즐기는데 모든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영화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는 최소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정도의 재미는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오랫동안 기억될 걸작 판타지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1시간 45분 동안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충분히 된다.
특히 나는 루이스가 가족을 만드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루이스의 부모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외삼촌 조나단뿐이다. 하지만 루이스는 조나단을 쉽게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가 남들과는 너무나 다르게 독특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루이스는 학교에서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친구 타비에게 끌린다. 그가 학교 임원 선거를 위해 루이스에게 친한 척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말이다.
아직 홀로서기에는 나이가 어린 루이스의 또래 아이들에겐 가족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부모를 잃은 루이스는 낯선 곳에서 필사적으로 가족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그가 보기엔 괴짜 삼촌 조나단은 자신의 가족으로 알맞지 않다.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타비이다. 그래서 타비에게 잘 보이기 위해 조나단이 내건 집안의 유일한 규칙을 깨뜨리고 만 것이다. 루이스에겐 조나단보다 타비가 더 소중하기에...  

 

 

결국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는 루이스의 가족 찾기이다. 루이스는 타비와는 다르게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도망치며 회피하려 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조나단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정 용기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실수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루이스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아이삭의 음모를 막아내며 자신의 가족을 만들어 나간다.
영화에서 루이스와 조나단의 대화 중에서 '미운 아기 오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안데르센의 유명한 동화이다. 조나단은 오리가 아닌 거위라고 우기지만... 어쩌면 루이스도, 조나단도, 그리고 플로렌스도 '미운 거위'였는지도 모른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외톨이 루이스, 자신이 마법사라는 이유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야만 했던 조나단,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어린 자식을 잃은 플로렌스까지... 그들은 모두 가족이 필요하지만, 남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따돌림당한다. 그렇기에 '미운 거위'들은 서로 의지하게 된다. 루이스의 말처럼 '거위떼'가 된 것이다.
영화가 끝난 후 중간고사가 끝난 아들을 위해 오랜만에 가족 외식을 했다. 가족이라는 것은 원래 그런 거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라도 힘든 일이 있으면 같이 힘들어하고, 기쁜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해 주는...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용기를 발휘하여 아이삭의 음모를 막아낸 루이스도 이젠 그러한 가족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는 할로윈을 맞이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판타지 영화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더더욱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