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루트리언 : 위대한 여정] - 구석기시대, 소년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감독 : 알버트 휴즈
주연 : 코디 스밋 맥피
며칠 전, 여수로 갈치 낚시를 가서 밤새 흔들리는 배 안에서 아내와 아들이 특히 좋아하는 갈치를 열심히 낚으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만약 원시 수렵시대에 태어났다면 자연스럽게 도태되지 않았을까? 체력적으로 건장한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은 나는 수렵활동에 특화된 인간이 아니기에 부족민들에게 버림을 받았을는지도 모른다. 이런 씁쓸한 생각 때문인지 그날 가족에게 가져갈 갈치를 많이 낚지 못했고, 갈치 낚시를 다녀온 후유증으로 오른쪽 무릎에 염증이 생겨 병원 신세까지 지고 있다. 그러던 중 [솔루트리언 : 위대한 여정]이라는 낯선 제목의 영화를 만났다.
사실 이 영화는 북미에서 지난 8월 17일에 'ALPHA'라는 제목으로 개봉하여 개봉 첫 주 5위로 박스오피스에 데뷔했고, 최종 성적 3천5백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낸 영화이다. 하지만 국내 개봉은 아무래도 무산된 듯하다. 다만 'ALPHA'라는 원제가 '솔루트리언 : 위대한 여정'으로 뜬금없이 수정되어 포털 사이트에 소개된 점이 특이하다. 국내 개봉이 무산된 영화의 경우 원제 그대로 포털 사이트에 소개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영화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제목이 바뀌어 소개되고 있다.
[솔루트리언 : 위대한 여정]이 내 이목을 끈 이유는 수렵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2만 년 전 유럽 대륙, 사냥으로 삶을 이어나가는 구석기 원시부족이다. 주인공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소년 케다(코디 스밋 맥피). 그는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심약한 성격 때문에 첫 사냥에서 낙오되고 만다. 아마 내가 수렵시대 태어났다면 딱 케다와 같은 성격이 아닐까 싶다.
'솔루트리언(Solutrean)'은 유럽 후기 구석기 시대 중엽의 문화를 뜻한다. 결국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제목인 셈이다. 그리고 '위대한 여정'이라는 부제는 낙오된 케다가 부족에게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을 의미한다. 모두들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여겼지만 케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부족의 곁에 돌아온다. 원제인 '알파(ALPHA)'는 늑대 무리의 우두머리를 뜻한다.
[솔루트리언 : 위대한 여정]은 제목으로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영화이다. 케다는 첫 사냥에서 낙오되어 홀로 남겨진다. 그의 아버지조차 케다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간 상황. 혼자 어떻게 하든 마을로 돌아가야 하는 케다는 늑대 무리의 공격을 받고 가까스로 나무 위로 몸을 피한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공격에 앞장섰던 늑대(아마도 알파였을 것이다.)가 케다의 필사적 방어로 인하여 치명상을 입고 결국 늑대 무리에서 버려진다.
원래대로라면 케다는 치명상을 입은 늑대의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한다. 하지만 심약한 케다는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늑대를 들춰 업고 안전한 곳으로 함께 피신하여 상처를 치료해준다. 그리고 먹을 것을 늑대에게 나눠준다. 그로 인하여 케다와 늑대는 죽음의 문턱에서 끈끈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솔루트리언 : 위대한 여정]이 케다의 위대한 여정에 그치지 않고 사람과 늑대의 우정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개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늑대가 사람의 반려동물이 된 사연을 그린 것으로 이 영화의 또 다른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솔루트리언 : 위대한 여정]의 또 다른 장점은 영상미이다. 구석기 시대의 광활한 자연을 표현한 화면은 압도적이었고, 케다의 부족민들이 들소떼를 사냥하는 장면은 스펙터클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만날 가능성이 제로인 상황이기에 장점은 자연스럽게 묻혀 버린다. 아이맥스로 영화를 봤다면 압도적인 영상미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냈을는지도 모르겠다.
장점이 확실한 만큼 단점 역시 확실하다. 이 영화의 단점은 스토리가 너무 단순하다는 점이다. 하긴 홀로 낙오된 소년이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특별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게다가 이 영화의 시대는 엄청난 크기의 공룡이 다니던 시절도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케다와 늑대의 우정이 조금 단편적인 감도 있다. 러닝타임이 1시간 35분 정도로 짧은 탓 때문이리라.
그래도 [솔루트리언 : 위대한 여정]은 비슷한 소재의 영화인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2008년 개봉작 [10,000 BC]보다는 개인적으로 훨씬 나았다. [10,000 BC]는 다른 부족에 의해 가족과도 같은 부족민과 사랑하는 여인이 노예로 끌려가자 들레이(스티븐 스트레이트)가 온갖 역경을 딛고 구하러 가는 기나긴 여정을 다룬 영화이다.
특히 [10,000 BC]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영화답게 매머드 사냥으로 영화를 시작하고, 검치 호랑이, 식인 새 등 구석기 시대의 무시무시한 야수들을 대거 등장시키며 영화의 볼거리를 다양화했다. 그에 비해 [솔루트리언 : 위대한 여정]에서 케다가 맞닥뜨리는 야수는 늑대, 하이에나뿐이다. 아마도 제작비 1억 5백만 달러가 들어간 [10,000 BC]와 제작비 5천1백만 달러에 불과한 [솔루트리언 : 위대한 여정]의 차이일 것이다.
분명 드러난 영화 정보만 놓고 본다면 [솔루트리언 : 위대한 여정]이 [10,000 BC]와 비교해서 재미있을 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10,000 BC]는 후반부 느닷없이 피라미드를 짓기 위해 원시 종족을 노예로 부리는, 고도화된 과학문명을 지닌 이들을 등장시켜 영화의 개연성을 확 떨어뜨렸다. 그와는 달리 [솔루트리언 : 위대한 여정]은 조금은 밋밋하지만 무리 없는 스토리 라인을 보여준다. 조금은 시시해 보였지만, 그래도 [솔루트리언 : 위대한 여정]은 구석기 시대를 제대로 체험하고 온 듯한 기분이 드는 영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