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재규
주연 : 유해진, 조진웅, 이서진, 염정아, 김지수,  송하윤, 윤경호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1촌이다. 형제, 자매간의 관계는 2촌이고, 아버지의 형제는 3촌 관계, 3촌의 자녀들은 4촌 관계이다. 그렇다면 부부간의 관계는 몇 촌일까? 무려 0촌이다. 어찌 보면 1촌인 부모, 자녀 간의 관계보다 가깝지만, 또 다르게 보면 남남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인 셈이다. 이러한 촌수는 고려 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다고 하니 조상들의 날카로운 해학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완벽한 타인]은 그러한 0촌 관계인 부부의 이야기를 블랙 코미디로 담은 영화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러하다. 40년 지기 고향 친구들이 석호(조진웅)와 예진(김지수)의 집들이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완벽한 가정을 꾸린 듯한 성형외과 의사 석호와 정신과 의사 예진을 비롯하여, 바른 생활 사나이 변호사 태수(유해진)와 태수가 고시생 시절부터 뒷바라지를 한 가정주부 수현(염정아), 꽃중년 레스토랑 사장 준모(이서진)와 20대 수의사 세경(송하윤), 그리고 이혼남 영배(윤경호)가 그 주인공이다.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은 과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예진이 한가지 제안을 한다. 저녁을 먹는 동안 모든 것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부부 사이에 비밀이 없다고 자부하는 그들은 예진의 제안에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 놓고, 문자, 통화, 카톡을 공유하는데, 그러면서 즐거웠던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간다. 

 

 

사람에게는 세 개의 삶이 있다고 한다. 공적인 삶, 개인적인 삶, 그리고 비밀의 삶. 이건 [완벽한 타인]이 끝난 후 엔딩 크레딧 직전에 나오는 자막이다. 영화는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의 삶을 남들에게 까발려졌을  때의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리 대단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지가 않았다. 고작 몇 시간 동안 핸드폰을 공유한다고 해서 엄청난 사건이 터진다는 것은 억지스럽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핸드폰이 만능 기능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하여 우리들이 남에게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비밀의 삶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도 그러한 비밀이 단 몇 시간 안에 까발려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예 처음부터 한 사람의 핸드폰을 디지털 포렌식으로 집중 분석하지 않는 한 말이다.
실제 [완벽한 타인]에서도 처음부터 영화의 재미를 위해 마구잡이식 신상털기 코미디는 진행되지 않는다. 예진이 친한 수현은 초대하지 않고 세경만 학회에 초대한 사실이 밝혀진다거나, 수현이 문예반 동료에게 한 예진에 대한 험담, 그리고 석호, 태수, 준모가 영배만 따돌리고 골프 약속을 한 것 등, 대부분 사사로운 인간관계에 의한 것들이다. 이러한 비밀이 밝혀진다면 물론 당혹스럽겠지만, 서로 간의 인간관계가 회복되지 못할 정도의 치명상은 아니다. 사실 우리들도 겉으로는 친한 척하지만, 뒤로는 험담도 하고, 따돌리기도 하지 않는가. (이후 영화의 스포 포함)  

 

 

이렇게 가볍게(?) 워밍업을 마친 [완벽한 타인]은 중반 이후 남편들의 여자 문제가 드러나며 엄청난 태풍을 몰고 온다. 시작은 수현에게 시종일관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던 태수이다. 그에게 밤 10시만 되면 반나체 사진을 보내는 50대 고객이 있는데, 이대로라면 이 사진이 모두에게 공개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태수는 모임 멤버 중 유일한 솔로인 영배에게 핸드폰을 서로 맞바꾸자며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게이라는 영배의 비밀을 떠안으며 더 큰 위기에 처한다.
[완벽한 타인]은 바로 이 시점부터 웃음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영화의 초, 중반까지는 공감에 의한 키득키득 수준이라면 영화 중, 후반부터는 밝혀지는 비밀의 수위가 높아지며 깔깔깔 수준으로 웃게 된다. 그리고 역시나 그 주역은 유해진이다. 처음에 수현에게 고압적으로 구는 태수라는 캐릭터가 유해진에게 어울릴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왜 태수를 유해진이 연기해야만 하는 것인지 [완벽한 타인]은 중, 후반부에 증명한다. 심각한 표정으로 연기를 펼치지만 이를 지켜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을 찾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유해진의 주특기이다. 
태수가 분위기를 전환시키자 이번엔 준모가 핵폭탄을 터트린다. 세경과 닭살 행각을 이어오던 준모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비밀은 집들이에 모인 일곱 명의 친구들을 회복 불가능한 관계로 만든다. 그렇다면 이렇게 남자들만 문제일까? 태수가 수현에게 고압적으로 대하는 이유, 예진의 귀걸이 등 모임에 참가한 여자들도 비밀의 삶이 드러날 위기에 처한다.  

 

 

[완벽한 타인]은 비밀의 삶이 까발려지는 일곱 명의 캐릭터를 관객에게 보여주며 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이 영화는 웃음 뒤에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뒤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안겨준다. 완벽한 부부로만 보였던 석호와 예진의 감춰진 모습을 통해 부부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연하다. 주변 환경, 삶아온 삶이 각각 다른 타인이 만나 부부라는 관계를 맺었는데, 이 관계가 지속되려면 사랑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가정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한 수현, 수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태수의 모습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희생을 의미한다. 개인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고, 즐기던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며 남편, 부인, 자녀, 그리고 배우자의 가족에게 얽매이게 된다. 아무래도 결혼 전에 즐겼던 개인적인 삶은 가정에 일정 부분 양보해야만 한다. 
영배와 핸드폰을 맞바꿈으로써 게이가 되어 버린 태수의 상황도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태수는 그 상황을 두고 '못 할 짓이더라'라고 고백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별생각 없이 충고를 한다. 하지만 그 상황이 자신의 상황이 된다면 어떨까? 태수는 영배의 상황을 직접 경험하며 다른 친구들보다 더 영배를 이해하게 된다. 

 

 

[완벽한 타인]은 코미디 영화이다. 그리고 코미디라는 장르에 관객의 기대를 충실히 이행한다. 며칠 전 너무 웃기지 않아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배반의 장미]와는 다르다. 그러한 웃음을 안겨주면서도 0촌 관계일 수밖에 없는 부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 놓는다. 친구들에게는 쉽게 털어놓은 이야기도 각각의 배우자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그들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공감된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마무리이다. 세경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 식탁에 올려놓은 결혼반지가 끊임없이 빙글빙글 도는 장면을 통해 [완벽한 타인]은 이 모든 상황이 실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10년 개봉작 [인셉션]을 인용한 것도 놀라웠지만, 거의 2시간 동안 펼쳐 놓았던 이야기를 헛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재규 감독의 용기도 놀라웠다.
일곱 명의 친구들이 예진이 제안했던 핸드폰 비밀 공유 게임을 받아들였다면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감춰왔던 비밀의 삶이 모두 까발려지면서 관계의 위기를 맞이하지만, 이전보다는 서로에 대해 몰랐던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해서 그들은 행복할까? 어쩌면 차라리 모르고 넘어가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 [완벽한 타인]은 석호의 반대로 핸드폰 비밀 공유 게임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다는 마지막 반전을 통해 비밀의 삶은 그냥 비밀로 남겨지는 편을 택한다. 영화의 쿠키 영상에서 태수와 수현의 관계 회복은 비밀의 삶이 그냥 비밀로 남겨졌을 때의 상황이다.   

 

 

어쩌면 [완벽한 타인]의 결망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다. 태수와 수현 부부는 비밀이 밝혀지지 않음으로써 부부 관계를 회복하지만, 세경의 경우는 비밀이 밝혀지지 않음으로써 준모의 바람기를 모르고 평생 속으며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밀은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다. 월식으로 인해 사라졌던 달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듯이, 비밀 역시 언젠가는 그 실체를 드러내며 준모에게 더 큰 대가를 요구할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속에서 수현이 읊은 시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유시영 시인의 잠수라는 시이다. 무심한 태수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난 시인데, [완벽한 타인]을 보고 나니 시의 여운이 꽤 길었다. 나는 사랑 속에 얼굴을 담고 내 아내보다 더 오래 버티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사랑 속에 얼굴을 담그고
누가 더 오래 버티나 시합을 했지
넌 그냥 져주고
다른 시합하러 갔고
난 너 나간 것도 모르고
아직도 그 속에 잠겨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