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박진영
주연 : 김인권, 정상훈, 손담비, 김성철, 박철민

코미디 영화는 참 부담 없다. 세월이 가며 영화 장르에 대한 내 취향도 변해갔지만 코미디 영화에 대한 내 생각만큼은 변함이 없다. 우울할 때 코미디 영화를 보면 기분이 전환되고, 기쁠 때 코미디 영화를 보면 기쁨이 더욱 커지고, 화가 날 때 코미디 영화를 보면 화가 풀린다. 심심할 때, 무기력할 때 등등 그 어떤 상황에서도 코미디 영화는 만능이다. 단, 이 모든 상황은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일 경우에만 해당된다.
학창 시절, 나는 우리나라 코미디 영화의 열렬한 팬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극장에서 본 영화가 강우석 감독의 데뷔작 [달콤한 신부들]이었다. 그 이후로 [미스터 맘마],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등 강우석 감독의 코미디 영화는 내 용돈을 털어서라도 극장에서 봐야만 했다. 코미디 영화는 혼자 보는 것보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함께 웃어야 제맛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코미디 영화를 극장이 아닌 집에서 혼자 보기 시작했다. 재미없는 코미디 영화의 썰렁함이 주는 무안함, 어이없음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극장에서 코미디 영화 보기를 꺼려 할 만큼 요즘 코미디 영화는 재미가 없다. 가끔 젊은 시절에 비해 나이가 들며 내 웃음이 사라졌기 때문에 코미디 영화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배반의 장미]가 개봉했을 때에도 나는 극장으로 달려가지 못했다. 당시 내 상황은 코미디 영화가 절실했지만, 재미없는 코미디 영화를 본다는 것은 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기에 [배반의 장미]에 대한 다른 관객들의 솔직한 주관적인 평을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배반의 장미]에 대한 평은 좋지 않았고, 흥행에도 실패했다. 재미있는 코미디를 기다리던 나는 [배반의 장미]의 평가, 흥행 성적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집에서 혼자 [배반의 장미]를 봤다. 그리고 역시나 썰렁함, 무안함, 어이없음을 느꼈다. 이러한 감정을 극장에서 수많은 관객들과 공유했다면 어쩔뻔했느냐는 안도감과 함께 말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배반의 장미]와 마찬가지로 정성훈이 출연한 코미디 영화 [로마의 휴일], [게이트]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때도 나 혼자 집에서 영화를 보며 "도대체 나보고 어디에서 웃으라는 거야?"라며 분노했던 씁쓸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배반의 장미]는 자살을 결심한 세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사채업자 마광기(박철민)의 돈 30억을 훔치고 도망 중인 안병남(김인권)을 필두로, 퇴물 작가 소리를 듣는 시나리오 작가 육심선(정상훈), 집안에서 대학을 못 가서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는 4수생 양두석(김성철)이 멤버이다. 문제는 네 번째 멤버인 이미지(손담비)가 뒤늦게 합류하면서부터 발생한다. 함께 자살하기엔 너무 섹시한 그녀. 그 순간 세 남자의 마음이 뒤흔들린다. 

 

 

[배반의 장미]는 자살을 결심한 세 남자 앞에 삶에 활력소를 불어 넣은 한 여자의 등장이 주는 아이러니가 키포인트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자살을 결심한 세 남자가 아닌, 그들에게 삶의 활력소를 주는 한 여자이다. [배반의 장미]는 이미지에게 섹시한 복장을 입혀 가슴골을 강조하고, 팬티를 살짝 노출시킨다. 마치 여성의 성적 매력만이 남성에게 삶의 활력소를 줄 수 있다는 듯이...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이미지의 섹시함이 주는 웃음은 단 몇 분을 지탱하지 못한다. 그 이후부터는 억지 설정이 이어진다. 이미지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세 남자에게 살아갈 의미를 안겨주는데, 육심선에게는 욕지거리를 시원하게 날림으로써 창작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고, 모태솔로 양두석에게는 진한 키스를 안겨준다. 안병남에게는 딸에게 아버지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러한 설정에 너무 작위적이라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하다. 
 특히 가장 눈에 거슬렸던 것은 인위적인 연기이다. 김인권, 정상훈은 결코 연기를 못하는 배우가 아니다. 주연급은 아니지만 조연급으로 오랜 세월 영화계에서 살아남았다. 그런데 [배반의 장미]에서 그들의 연기는 이상하다. 특히 정성훈은 영화 내내 코맹맹이 소리를 낸다. 아마 그러면 관객이 웃을 것이라 박진영 감독은 생각한 듯하다. 진정 박진영 감독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그래서 웃겼냐고...  

 

 

마광기를 비롯한 조폭 3인방은 그냥 멍청하다. 무서워야 할 대상이 멍청하면 웃긴다. [나홀로 집에]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마광기 일당은 엄정화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그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 나름 안병남의 핸드폰을 해킹하는 스마트한 실력이 있는 듯한데, 안병남에게 잃은 30억을 되찾으려는 그들의 모습은 그냥 바보같다.
가장 큰 문제는 영화의 마무리이다. 최근 한국 코미디 영화의 부실한 마무리를 이 영화는 고스란히 재현한다. 부실하다 못해 어이가 없다. 안병남이 전해준 주소지를 가지고 찾아간 마광기는 순진해 보이고, 그것을 보며 유쾌하게 웃는 안병남 일행의 모습은 어이가 없다 못해 짜증까지 밀려 올라온다.
진정 묻고 싶다. 배우들은 [배반의 장미]의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 계약을 했을 것이다. 그들은 시나리오를 읽으며 재미있어서 웃었을까?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서 웃었을까? [배반의 장미]의 감독 겸 공동제작과 각색까지 도맡은 박진영 감독에게도 묻고 싶다. [배반의 장미]를 쓰며 그 자신은 재미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어느 부분에서 관객이 빵 터질 것이라 계산한 걸까? 진정 내 웃음이 말라버린 것일까? 그래서 웃긴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정 젊은 시절처럼 코미디 영화를 보며 배꼽을 잡고 웃고 싶다. 내가 변해서 웃지 못하는 것인지, 한국 영화계가 변해서 웃기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것인지, [배반의 장미]를 보고 나서 혼자 골똘히 고민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