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데이미언 셔젤
주연 : 라이언 고슬링, 클레어 포이

1957년 10월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다. 그리고 곧이어 11월에 '라이카'라는 이름의 개를 태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하며 미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에 미국도 1958년 1월에 첫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1958년 10월에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을 설립, 본격적으로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스퍼트를 올린다. 하지만 소련은 1961년 4월 유리 가가린을 태운 첫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하며 다시 한번 미국을 압도하고 만다. 
미국이 소련과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첫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1969년 7월 아폴로 11호가 달 표면에 착륙하면서부터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에서 번번이 패배를 당했다. 냉전시대, 소련과의 경쟁에 사활을 걸었던 미국의 입장에서 첫 승리인 만큼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첫 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은 미국을 넘어, 공산진영과 대치하고 있는 자유진영의 영웅이 되었다.
[퍼스트맨]은 영웅 닐 암스트롱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위플래쉬], [라라랜드]를 통해 30대의 젊은 나이에 천재 감독 칭송을 받고 있는 데이미언 셔젤이 메가폰을 잡았고, [라라랜드]에서 데이미언 셔젤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라이언 고슬링이 닐 암스트롱을 연기하여 관객의 기대치를 높였다. 북미 시사회 당시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이 없다는 이유로 보수층,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비난을 받았지만 작품성만큼은 충분히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북미는 물론 국내에서조차 흥행에는 실패했다.   

 

 

[퍼스트맨]은 국내 개봉 첫 주 [암수살인], [베놈]을 밀어내고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주말 관객 34만이라는 부진한 성적을 냈고, 개봉 2주 차 주말에는 5위까지 순위가 떨어지며 누적관객 100만도 넘기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 그러한 [퍼스트맨]의 흥행 추이를 눈여겨보았기에 나는 [퍼스트맨]이 관객이 좋아할 만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닐 것임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퍼스트맨]은 처음부터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의 불안한 심리를 관객에게 보여주며 시작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닐이 NASA에 입사하기 전, 테스트 파일럿으로 훈련을 하는 장면인데 닐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그의 불안한 표정을 화면 가득히 잡아낸다. 결국 닐은 기계는 잘 다루지만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근신 처분이 내려진다. 
두 번째 장면은 닐과 어린 딸 캐런의 장면이다. 캐런은 두 살이 되던 해에 사망하는데 이는 닐의 마음속에 깊은 슬픔을 안겨준다. NASA  면접 장면에서 면접관이 딸이 죽음이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물을 때 닐은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솔직한 답변을 내놓는다. 이 두 장면은 영웅 닐 암스트롱이 아닌, 인간 닐 암스트롱을 영화 속에 담아내겠다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의지이자, 관객을 향한 선언이다. 이후 영화는 정확하게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선언대로 진행된다.  

 

 

 

 

만약 [퍼스트맨]이 영웅 닐 암스트롱을 그려내고 싶었다면 그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꿈이 비행기 설계사였고, 한국 전쟁에 참전한 전쟁 용사이며, 어린 딸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극복한 아버지이고, X-15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수십 Km의 고도까지 초음속으로 비행했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자임을 끊임없이 부각시켰어야만 했다.
하지만 [퍼스트맨]은 닐 암스트롱보다는 그의 동료들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준다. 소련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리한 유인 우주선 추진으로 동료들이 희생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닐 암스트롱의 모습, 남편도 그들처럼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는 아내, 자넷 암스트롱(클레어 포이)의 울부짖음은 [퍼스트맨]의 깊은 울림을 안겨준다.
특히 아폴로 11호 탑승이 결정되고 두 어린 아들에게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말하는 닐의 모습은 [퍼스트맨]을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비록 그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어느덧 훌쩍 커버린 첫째 아들의 불안한 눈빛은 그의 마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꼭 살아서 돌아오겠다는 다짐과 함께... 

 

 

[퍼스트맨]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아폴로 11호는 무사히 달에 착륙하고, 닐 암스트롱과 버즈 울드린이 달에 발자취를 남길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장면은 상업 영화가 당연히 가져야 할 긴장감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 대신 닐이 고요의 바다에 딸의 유품을 내려놓는 장면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이 몰려왔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속 심연에 자리 잡은 슬픔을 달이라는 미지의 땅에 내려놓은 것이다.
확실히 [퍼스트맨]은 상업영화와는 거리가 먼 영화이다. 영화를 보며 '재미있다'라는 감정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미지의 영역에 첫 발을 내디뎌야 하는 '퍼스트맨'의 불안한 심리가 날카롭게 영화를 보는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결국 그는 '퍼스트맨'이 되었고, 미국의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영화의 첫 시작과 마찬가지로 담담할 따름이었다. 마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끝낸 사람처럼...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이름이 스크린에 새겨졌다. 솔직히 놀랬다. 스티븐 스필버그라면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관객이 좋아할지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순수 제작비만 6천만 달러가 들어간 영화이니만큼 관객이 좋아할 만한 영웅의 이야기를 그는 꺼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퍼스트맨]은 온전히 데이미언 셔젤의 의지대로만 진행되었고, 그 결과 흥행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퍼스트맨]을 실패작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이건 데이미언 셔젤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뚝심이 만들어낸 쾌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