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루벤 플레셔
주연 : 톰 하디, 미셸 윌리엄스, 리즈 아메드

2018년 마지막 마블 영화 [베놈]이 개봉했다. [베놈]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어렵사리 편입된 '스파이더맨'과는 달리 소니 픽쳐스가 독자적으로 구축한 소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SMCU)의 첫 영화라는 점에서 거는 기대가 컸다. 소니 픽쳐스는 [베놈]을 시작으로 '실버 세이블'과 '블랙캣'을 내세운 [실버 앤 블랙], '스파이더맨'의 빌런들이 모여 만든 팀을 소재로 한 [시니스터 식스] 등이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베놈]은 개봉 전부터 구설수에 올랐다. 사건의 발단은 주연 배우인 톰 하디의 인터뷰였는데, 톰 하디는 [베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에 대한 질문에 영화에 나오지 않는 장면이라고 대답함으로써 편집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두고 [베놈]을 눈 빠지게 기다린 영화팬들은 소니 픽쳐스가 [베놈]의 관람 등급을 흥행에 불리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서 15세 관람가 등급으로 바꾸기 위해 무리한 편집을 했다고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이 논란은 소니 픽쳐스 관계자와 톰 하디의 해명으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솔직히 나는 [베놈]의 15세 관람가 등급에 불만이 없다. 2017년 개봉한 [로건]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 탓에 아들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베놈]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었다면 또다시 아들의 아쉬운 표정을 뒤로하고 혼자 극장으로 향해야 했겠지만, 15세 관람가 등급인 덕분에 토요일 아침 아들과 극장으로 향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도 나는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많은 이들이 [베놈]의 생각보다 약한 수위에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것은 나 역시 인정한다. 비록 아들과 함께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로건]은 '울버린'이 출연하는 영화 중에서 최고의 명작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기에 표현 수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울버린'의 처절한 몸부림을 고스란히 스크린 속에 재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놈]도 만약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였다면 악당의 머리를 뜯어 먹는 '베놈'의 행위가 좀 더 리얼하게 관객에게 전달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베놈]은 15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이고, 이것은 나중에 DVD로 감독판이 출시되지 않는 한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베놈]의 약해진 표현 수위에 대한 아쉬움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언젠가 나의 아들이 성인이 되면 청소년 관람불가로 재편집된 [베놈]을 보며 함께 즐거워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건 어차피 몇 년 후 미래의 이야기이니까...
15세 관람가로 개봉한 [베놈]은 분명 장점이 많은 영화이다. 일단 코믹하다. 그것은 아마도 MCU를 벤치마킹한 전략 덕분이리라. 어둡고 심각한 DC 확장 유니버스(DCEU)가 흥행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이와는 달리 적절한 코미디가 가미된 MCU가 전 세계 흥행을 휩쓸고 있기에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다. DCEU도 요즘 어둡고 심각한 분위기를 탈피하려 애쓰고 있지 않은가.  

 

 

 

 

캐릭터의 매력도 잘 살아있다. 특히 [스파이더맨 3]에서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 '스파이더맨'을 증오하던 찌질한 기자 에디 브룩(토퍼 그레이스)을 정의로운 열혈 기자로 변화시킨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가짜 뉴스를 생산하다 해고당한 [스파이더맨 3]의 에디 브록과는 달리 [베놈]의 에디 브룩(톰 하디)은 진실을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는 정의로운 기자로, 거대 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사실 [베놈]에서조차 에디 브룩은 믿을만한 기자는 아니다.  약혼녀인 앤 웨잉(미셸 윌리엄스)의 대외비 문서를 훔쳐보고, 어렵게 자신에게 제보한 도라 스카스(제니 슬레이트)를 지키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마블 코믹스 원작의 에디 브룩 캐릭터와 비교해 본질을 벗어난 것은 아니다. 단지 톰 하디 특유의 남성적 매력을 더하고, 자신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찌질함을 벗겨냈을 뿐이다.
앤 웨잉도 매력적이다. 수동적인 여주인공과는 달리 앤 웨잉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사건 해결에 뛰어드는데, 영화 후반부 '쉬 베놈'의 등장은 그렇기에 섹시하기까지 했다. 그 외에 에디 브룩과 티격태격하는 '베놈'은 엽기적인 외모와는 달리 귀엽기까지 했다. 귀여운 '베놈'은 아마도 15세 관람가 등급으로 밀어붙인 소니 픽쳐스가 내세운 회심의 카드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베놈]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답게 액션은 시원시원하고, 캐릭터의 매력도 넘쳐난다. 간간이 웃기기도 하고,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 '베놈'은 귀엽기까지 하다. 에디 브룩과 '베놈'이 하나의 몸을 두고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서로 합의하에 공생하는 과정은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끔 꾸며져있다. 
하지만 그 이상이 되지는 못한다. 오락 영화에서 이 정도 재미를 갖추고 있으면 된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SMCU가 MCU처럼 장기적으로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되려면 분명 [베놈]의 아쉬움을 되새김질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SMCU가 되풀이해서는 안 될 [베놈]의 아쉬움은 '베놈'이 빌런에서 히어로가 될 수밖에 없었던 동기이다.
[베놈]은 분명 DCEU의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아쉬움을 보고 배웠어야 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MCU에서조차 아직 시도하지 못한 빌런팀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완성된 영화이다. 그렇기에 영화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빌런들이 갑자기 히어로가 되는 동기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운 영화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베놈]이 그러하다.  

'베놈'은 빌런이다. 그건 당연하다. 애초에 '베놈'이 속한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는 다른 생명체의 몸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심비오트에게 있어서 인간은 기생하기 좋은 먹잇감에 불과하다. 에디 브룩의 몸에 기생한 '베놈'이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우주선에 가려고 했던 것은 동족을 지구로 불러들이기 위해서이다. 심비오트의 리더인 라이엇이  말레이시아에서 몸을 바꿔가며 기나긴 여정을 거쳐 라이프 파운데이션까지 오고, 굳이 칼튼 드레이코(리즈 아메드)의 몸에 기생하는 것 또한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우주선을 이용하여 동족을 지구로 불러들이기 위해서이다.
심비오트의 목적은 명확하다. 동족이 기생할 수 있는 종족을 찾는 것. 그런데 갑자기 '베놈'이 동족을 배신한 것이다. 그 이유는 심비오트에서 자신은 루저이지만, 지구에선 슈퍼 히어로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에디 브룩에게 "네가 나를 변화시켰어."라는 헛소리까지 작렬한다. 
진정 소니 픽쳐스는 '베놈'이 빌런에서 슈퍼 히어로가 될 수밖에 없었던 동기를 좀 더 명확하게, 관객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했어야 했다. 그냥 어정쩡하게 빌런을 히어로로 바꾼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며 반면교사했어야만 했다.  


 

 

 

'베놈'의 동기가 중요한 이유는 앞으로 제작될 SMCU 영화 대부분이 [베놈]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사실 SMCU는 한계가 명확하다. 소니 픽쳐스가 보유한 마블 판권은 '스파이더맨'인데, '스파이더맨'은 MCU에 속해 있기 때문에 맘대로 활용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SMCU에는 '스파이더맨'의 빌런들이 배치되어 있다.
[베놈]이 그러하고, [실버 앤 블랙], [시니스터 식스]가 그러하다. [실버 앤 블랙]에 출연 예정인 블랙 캣은 [배트맨 2]의 캣우먼을 연상하게 하는 캐릭터로 엄밀하게 따진다면 빌런에 가깝다. [시니스터 식스]는 더 심하다. 아예 '스파이더맨'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빌런팀인 만큼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SMCU의 차기작 모두 빌런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셈인데, [베놈]처럼 빌런을 영화 후반에 어정쩡하게 슈퍼 히어로로 둔갑시킨다면 관객의 실망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베놈]은 쿠키 영상에서 클레터스 캐서디(우디 해럴슨)을 등장시켰다. 클레터스 캐서디는 연쇄 살인마인데 심비오트에 감염되어 카니지라는 빌런이 된다. 카니지는 '스파이더맨'조차 '베놈'과 힘을 합쳐 싸워야 했을 정도로 막강한 빌런이다. [베놈 2]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임에 분명하다. 나는 진심으로 SMCU가 잘 되길 바란다. MCU에 열광하는 만큼 SMCU에도 열광하고 싶다. 그러기에 [베놈]은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그래도 아직 희망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