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크 컬렌, 롭 컬렌
주연 : 브루스 윌리스, 제이슨 모모아, 존 굿맨

옛날 옛적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1921년 좀도둑을 일삼던 꼬마 녀석들의 성장기를 담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 로버트 드 니로, 제임스 우드 주연의 영화이다. 젊은 시절 할리우드 갱스터 무비에 심취했던 내가 [대부 3부작]과 더불어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이기도 하다.
아마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영향 때문이리라. 그 이후로 '원스 어폰 어 타임'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영화를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설렌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 안토니오 반데라스, 셀마 헤이엑 주연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가 개봉할 때도 그랬고, 정용기 감독, 박용우, 이보영 주연의 [원스 어폰 어 타임]이 개봉할 때도 그랬다. 물론 이들 영화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전혀 관계없는 영화들이지만, '옛날 옛적에'라는 의미의 제목만으로도 잠들기 전 할아버지에게 듣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또 한편의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베니스]가 그 주인공이다. 여기에서 베니스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관광도시가 아닌 미국 플로리다주에 위치한 관광도시이다. 과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베니스]는 옛날 옛적 베니스의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베니스]는 분명 베니스 비치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지만 아무리 봐도 옛날 옛적에 시작할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베니스 비치 유일의 공식 탐정 스티브(브루스 윌리스)가 여러 사건에 휩싸이면서 겪게 되는 한바탕 소동극이 주요 내용으로, 왜 제목에 '옛날 옛적에'를 끼워 넣었는지 아무리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뭐 좋다. 그래도 브루스 윌리스, 제이슨 모모아, 존 굿맨에 제시카 고메즈, 팜케 얀센까지 출연하는 초호화 캐스팅에 기대를 걸어보자. 하지만 여기서 또 한가지 우리가 오해해선 안되는 것이 있다. 이 영화는 초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북미에서 개봉조차 하지 못한 홈비디오용 영화라는 사실이다. 비록 국내에선 정식으로 극장 개봉을 했지만 홈비디오용 영화는 극장이 아닌 집에서 보는 것에 최적화되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홈비디오용 영화가 지향하는 것은 딱 한 가지이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재미, 바로 그것이다. 짜임새 있는 내용 전개를 원하면 안 된다.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것들이 갖추어졌다면 당연히 극장에서 개봉했을 것이다. 결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베니스]는 홈비디오용 영화답게 자세히 뜯어 보면 어이없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할리우드 톱스타를 우스꽝스럽게 망가뜨려 놓은 것을 낄낄거리며 즐길만한 영화는 충분히 되었다. 

 

영화의 시작부터 스티브는 의뢰인의 섹스 중독에 빠진 여동생 놀라(제시카 고메즈)와 침대에서 뒹굴다가 놀라의 무지막지한 오빠들의 습격을 받고 실오라기 하나 없는 알몸으로 쫓기는 신세가 된다. 브루스 윌리스가 알몸으로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베니스 비치를 활보하는 장면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베니스]가 추구하는 영화의 재미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스티브가 엉덩이에 권총을 숨기는 장면은 충분히 웃긴다.
[다이하드]를 통해 80, 90년대 할리우드를 주름잡던 액션 스타 브루스 윌리스가 이렇게 시작부터 망가졌다면, [아쿠아맨]을 통해 DC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제이슨 모모아는 베니스 비치의 악명 높은 마약상 보스로 출연하여 역시나 엉뚱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에게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순정파 남성 데이브를 연기한 존 굿맨, 섹스 중독에 빠진 놀라를 연기한 제시카 고메즈, 그리고 자아를 찾아 떠난 남편을 원망하며 오빠 스티브에게 얹혀사는 케이티를 연기한 팜케 얀센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들이 사정없이 망가지며 홈비디오용 영화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사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베니스]의 내용은 그다지 별로다. 마약상 보스 스파이더(제이슨 모모아)와 잘 못 엮이는 바람에 목숨보다 소중한 반려견 버디를 빼앗긴 스티브는 버디를 되찾기 위해 스파이더가 도둑맞은 마약을 되찾아야만 한다. 그러한 와중에 건물에 그려진 외설적인 그라피티 사건도 해결해야 한다.
문제는 이 사건들이 그다지 치밀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스파이더의 마약을 훔친 루페는 스티브가 아니더라도 아무나 찾을 수 있다. 스파이더가 자신의 부하가 아닌 스티브에게 굳이 루페를 찾게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건물에 외설적인 그라피티를 그리는 살바토레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두 사건을 해결하고 스티브는 거액의 수수료와 예전에 살던 집, 그리고 친구인 데이브의 집까지 얻어낸다. 물론 아직 프린스(우드 해리스)와의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이지만 스티브의 행적을 보면 이 문제 역시 그다지 걱정되지 않는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베니스]는 생각을 하면서 보면 전혀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 없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낄낄거리며 봐야 그나마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을 대충 때울 수 있다. 그게 홈비디오용 영화의 생존 비결이 아니던가. 이 영화는 정확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영화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