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쉐인 블랙
주연 : 보이드 홀브록, 올리비아 문

인간에게 있어서 우주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며 인간이 우주의 신비를 벗기는 날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과는 달리  우주를 향한 인간의 의지는 상당히 더디게 진행된다. 이렇게 우주에 대해서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보니 우주는 호기심의 대상임과 동시에 두려움이 대상이 되곤 한다. 인간보다 문명이 발달한 혹은 엄청난 신체적 능력을 가진 외계 생명체의 지구 침략은 우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생겨난 결과일 것이다.
영화는 그러한 대중의 두려움을 적절하게 이용한다. 1979년에 만들어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은 대중의 두려움을 표현한 영화이다. [에이리언]은 4편의 시리즈가 제작되었고, [프로메테우스], [에이리언 : 커버넌트] 등 현재까지도 꾸준히 관련 콘텐츠가 영화화되고 있다.
그리고 1987년에 만들어진 존 맥티어난 감독의 [프레데터]도 외계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을 극대화한 영화이다. 엄청난 신체적 능력으로 관객에게 공포를 안겼던 [에이리언]과는 달리 [프레데터]는 발달된 과학 문명과 신체적 능력까지 겸비한 외계 사냥꾼을 등장시킨다. [프레데터]는 2편까지 시리즈가 제작되었고,  2010년 님로드 앤탈 감독의 [프레데터스], 2018년 쉐인 블랙 감독의 [더 프레데터]를 통해 시리즈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중에서 최근 개봉한 [더 프레데터]는 분명 주목할만한 영화이다. 이 영화를 통해 '프레데터'의 세계관을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셰인 블랙에게 메가폰을 맡긴 것 자체가 그러한 야망의 시작이다. 셰인 블랙 감독은 [아이언맨 3]를 통해 세계관 확장의 교과서라고 할 수도 있는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경험한 감독이다. 게다가 그는 [프레데터]에서 가장 먼저 '프레데터'에게 희생되는 특수요원 호킨스를 연기한 인연이 있다. 셰인 블랙 감독은 MCU를 경험했고, [프레데터]에 대한 애정까지 갖추고 있으니 새로운 '프레데터'의 세계관 확장에 적합한 인물인 셈이다.
셰인 블랙 감독이 [더 프레데터]에서 취한 전략은 딱 두 가지이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프레데터]에 대한 오마주이다. 첫 장면부터가 그러하다. [프레데터]는 우주 공간에서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지구에 작은 우주정을 사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더 프레데터]의 시작은 우주 공간에서 두 대의 정체불명 비행체가 격전을 벌이고, 결국 공격받은 한 대의 비행체가 공간 이동을 통해 지구로 불시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더 프레데터]의 첫 장면은 [프레데터]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프레데터'와 맞서 싸우는 특수부대 출신의 퀸(보이드 홀브룩)은 [프레데터]의 더취(아놀드 슈왈제네거) 소령과 캐릭터 자체가 비슷하다. (근육량의 차이는 논외로 치자.) 영화 초반은 정글에서 벌어지고, 중반 이후에는 시가전에 펼쳐지는데 이는 [프레데터]와 [프레데터 2]의 적절한 혼합처럼 보인다. [프레데터]에서는 더치 소령과 남미 게릴라 소속 여성, 아나만 살아남는데, [더 프레데터]에서도 퀸과 진화생물학자 케이시(올리비아 문)만 살아남는다. (이걸 스포라고 하지 말자. 당신도 그럴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지 않았는가?) 

 

[더 프레데터]를 보며 [프레데터]의 재탕처럼 느껴질 즈음 셰인 블랙 감독은 두 번째 카드를 꺼내든다. 그것은 바로 유머와 업그레이드이다. [프레데터]에서 셰인 블랙이 맡은 호킨스라는 캐릭터는 책에서 배운 어쭙잖은 유머로 동료들을 웃기려 애쓰다가 가장 먼저 죽음을 당한다. 그런데 셰인 블랙은 30년 후 감독이 되어 호킨스가 하지 못했던 유머를 영화에서 맘껏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호킨스의 여한은 이렇게 30년 만에 풀렸다. 
문제는 업그레이드이다. [더 프레데터]는 초반 '프레데터'가 단순히 다른 행성에서 사냥 게임을 즐긴 것이 아니라  다른 종의 DNA를 이용해서 더욱 영리하고 치명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진다. 그리고 그렇게 진화한 '프레데터'의 위력은 영화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다시 1987년 [프레데터]로 돌아가 보자. 영화 속 '프레데터'는 강력하다. 모습을 투명하게 감출 수도 있고, 몸에 두르고 있는 슈트는 인간의 무기로는 뚫기 어렵다. 게다가 강력한 최첨단 무기마저 장착하고 있으니 아무리 근육질의 아놀드 슈왈제네거라도 '프레데터'를 쓰러뜨리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프레데터'는 겁에 질린 더취 소령 부대원의 무차별 난사에 부상을 입기도 하고, 더취 소령이 파놓은 원시적인 함정에 결국 무너진다. [프레데터]가 걸작의 칭호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최첨단 무기를 장착한 '프레데터'가 원시적 함정에 쓰러지는 아이러니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더 프레데터]는 다르다. 영화 속 '프레데터'는 인간의 무기로는 상처 하나 입힐 수가 없다. 퀸과 부대원들이 총을 난사하지만, [프레데터] 때와는 달리 그러한 행위가 무의미해 보인다. 결국 '프레데터'를 무찌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지닌 외계 무기뿐이다. [더 프레데터]의 초반만 해도 그렇다. 만약 퀸이 우연히 외계 무기를 손에 넣지 않았다면 그는 일찌감치 자신의 부대원들과 마찬가지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퀸의 카리스마가 혼자의 힘으로 '프레데터'를 무찌른 더치 소령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이다.
'프레데터'의 능력이 이렇게 업그레이드되다 보니 '프레데터'를 무찌를 수 있는 방법도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프레데터 킬러'라는 무기이다. 그런데 이 무기의 등장이 굉장히 뜬금없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프레데터'와 싸워 이길 방법이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넘사벽 아이템이라는 티를 팍팍 낸다. 
물론 셰인 블랙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지금의 설정으로는 '프레데터'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프레데터'는 사냥을 하고, 인간은 사냥을 당하다 어렵게 반격에 성공해 살아남는다는 설정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정에서 시리즈를 이어나간다는 것은 장소 변경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프레데터]는 정글, [프레데터 2]는 도심, [프레데터스]는 외계 행성이 영화의 무대가 되었다. 외계 생명체의 공포를 다룬 대표적인 두 캐릭터 '에이리언'과 '프레데터'를 합친 변종 [에이리언 VS. 프레데터]가 2편이나 나온 이유도 '프레데터' 하나 만으로는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 없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프레데터'의 세계관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프레데터 킬러'의 등장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간에게도 '프레데터'와 동등하게 싸울 수 있는 무기를 안겨줘야 이전 영화들과는 다른 새로운 '프레데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쉬움이 남았다. 과연 이 방법 밖에 없단 말인가? 인간 스스로 '프레데터'를 연구해서 '프레데터'에게 치명적인 무기를 만드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프레데터'의 업그레이드를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프레데터'와 맞서 싸울 인간 부대를 조직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프레데터 킬러' 하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은 너무 안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더 프레데터] 이전까지는 '프레데터' 시리즈를 극장에서 관람한 적이 없다. [프레데터스]와 [에이리언 VS. 프레데터]를 개봉 후 한참만에 TV에서 본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더 프레데터]를 본 후 '프레데터' 시리즈에 관심이 생겨 '프레데터' 시리즈의 시작인 [프레데터]를 뒤늦게 봤다. 문제는 [프레데터]를 보고 나니 [더 프레데터]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부각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프레데터'의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셰인 블랙 감독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더 프레데터]는 [프레데터]의 놀라움을 뛰어넘지 못한 범작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