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 - 사랑으로 극복한 재난 영화의 정석
감독 : 발타자르 코루마쿠르
주연 : 쉐일린 우들리, 샘 클라플린
※ 영화 스포 주의
재난 영화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영화 속 주인공이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관객은 재난 영화의 주인공에 더욱 강하게 감정이입을 하고, 주인공이 재난을 뚫고 생존했을 때 진심 어린 박수를 쳐주는 것이다. 재난 영화가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둔 경우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실화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관객의 감정이입은 더욱 강력해질 테니까.
[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는 정확하게 그러한 재난 영화의 정석이다. 이 영화는 1983년 지상낙원이라는 타히티에서 운명처럼 만나 사랑에 빠진 태미(쉐일린 우들리)와 리처드(샘 클라플린)의 이야기이다. 두 사람은 요트를 타고 미국으로 향하던 중 허리케인과 만나 재난을 당하고, 결국 리처드는 실종되고, 태미는 43일간의 표류 끝에 극적으로 구조된다.
발타자르 코루마쿠르 감독은 이미 2015년 국내에 개봉한 [에베레스트]를 통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재난 영화를 선보인 바 있다. [에베레스트]는 '에베레스트'의 상업등반이 일반화되었던 1996년, 상업등반 가이드 롭 홀(제이슨 클락)이 전 세계에서 몰려든 등반가들과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향하던 중 겪게 되는 재난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는 [에베레스트]의 바다 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의 전개가 [에베레스트]와 똑같다는 것은 아니다. [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가 결정적으로 [에베레스트]와 다른 점은 재난을 당한 현재와 타히티 섬에서의 행복한 일상을 교차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러한 교차 편집은 태미와 리처드가 당한 재난을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끔 만든다.
대부분의 재난 영화는 영화 초반에 주인공의 행복한 일상을 보여주고, 후반에 가서 극한의 재난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린다. 그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다. [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는 그러한 일반적인 방식에 살짝 변형을 준 것이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후 부상당한 채 선실에서 깨어난 태미를 보여주고, 타히티 섬에 처음 도착한 태미를 보여주는 식이다.
태미가 심한 부상을 당한 채 보트에 매달려 있는 리처드를 발견하고 나서는 타히티 섬에서 무르익는 태미와 리처드의 달달한 사랑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사랑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었고, 관객으로 하여금 이 어여쁜 연인이 어서 빨리 구조되기를 바라게끔 만든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요즘처럼 자극적인 소재가 넘쳐나는 시대에 태미와 리처드의 재난은 너무 잔잔하다. 위력적인 허리케인 장면은 단 몇 분에 불과하고, 영화의 러닝타임을 가득 채우는 것은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정처 없이 표류를 하는 태미와 리처드의 모습뿐이다.
허리케인으로 부서지긴 했지만 그래도 호화 요트 안에는 물과 음식이 충분하다. 목마름, 굶주림 때문에 아귀다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허리케인이 지나가고 나니 별다른 위험도 없다. 가끔 나는 바닷속에서 상어떼가 출몰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해 했지만 그런 일 따위는 [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메가로돈]을 보고 난 후의 후유증이다.)
[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와 비교되는 영화 중에서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가 있다. 하지만 [라이프 오브 파이]에는 거대한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시켰다. [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의 아쉬운 점은 [라이프 오브 파이]의 '러처드 파커'와 같이 긴장감을 유지시킬 존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도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극적 장치를 만들어 놓는다. 그것은 바로 허리케인 직후 태미가 구조한 리처드가 태미의 환각이라는 반전이다. 하긴 따지고 보면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도 '리처드 파커'가 실존한 것인지, 파이(이르판 칸)이 만들어낸 허상인지 의견이 분분했었다. 결국 리처드는 [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의 '리처드 파커'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둘 다 리처드이다.)
태미는 리처드의 환영을 붙잡고 43일간 바다 한가운데에서 버틴다. 파이에게 '리처드 파커'가 있었고, [캐스트 어웨이]의 척 놀랜드(톰 행크스)에게는 '월슨'이 있었지 않은가? 태미가 리처드의 환영 덕분에 43일을 버틸 수 있었다는 설명은 이전 재난 영화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일견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는 1998년 출간되어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오른 태미 올드햄 애쉬크래프트의 자서전 <슬픔의 붉은 바다(Red Sky in Mourning: A True Story of Love, Loss and Survival at Sea)>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원작에서도 태미가 리처드의 환영과 함께 바다 위를 표류했다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영화의 재미를 위해 각색된 부분이 아닐까?
솔직히 [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는 지루한 영화이다. 손에 땀을 쥐게 할 극한의 재난도 없고, 내 눈물샘을 마구 자극할 슬픈 장면도 딱히 없다. [에베레스트]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것을 감안한다면 [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는 분명 [에베레스트]보다 재미가 없는 영화이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잔잔했지만, 태미 본인의 입장에서는 43일간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죽음과 싸운 극한의 재난이었을 것이다. [어드리프트 : 우리가 함께한 바다]가 영화의 재미를 위해서라며 태미의 표류기에 MSG를 팍팍 쳐댔다면 그것은 재난을 극복한 태미에게도 결코 못할 짓이다.(실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그래서 어렵다.)
비록 영화를 보며 몇 번이나 하품을 했지만,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태미와 리처드의 실제 사진은 분명 깜짝 놀라웠다. 쉐일리 우들리와 샘 클라플린는 실제 그들과 싱크로율 100%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연인을 잃고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태미는 여전히 항해를 하고 있다는 마지막 자막도 인상 깊었다. 그녀야말로 두려움을 극복한 영웅이 아니던가. 만약 내가 태미처럼 바다 위에서 혼자 표류를 한다면 43일간 버틸 수 있었을까? 그리고 다행히 구조되었다고 해도 또다시 바다에 나갈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영화로만 따진다면 지루했지만, 태미가 극복해낸 재난 그 자체만은 분명 훌륭한 영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