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결혼식] - 우리는 첫사랑의 서투른 실수를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감독 : 이석근
주연 : 박보영, 김영광
이준익 감독의 [변산]에서 선미(김고은)가 쓴 책 '노을 마니아'에는 첫사랑에 대한 명언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 내가 무릎을 탁 치며 공감했던 것은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완성된다.'와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그를 사랑한 내 마음을 사랑한 것이다.'라는 부분이다. 이 두 명언은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에 대해서 자기만족을 하거나, 아예 첫사랑의 그(혹은 그녀)를 부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어쩌면 첫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첫사랑은 서툴다. 그렇기에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서투름 때문에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은 두고두고 후회로 남고, 그러한 후회는 더욱 첫사랑을 잊지 못하게 만든다. 선미는 그러한 첫사랑에 대한 후회를 자기만족과 부정으로 애써 변명하고 있는 것이다.
여름 극장가에서 흥행에 깜짝 성공하며 첫사랑 열풍을 불러일으킨 영화 [너의 결혼식]도 서투른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황우연(김영광)에게 환승희(박보영)는 첫사랑이다. 고등학교 3학년에 시작한 첫사랑. 그는 서투르지만 승희와의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시작한 사랑은 주변 환경에 의해 만났다, 헤어졌다는 반복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게 된다. 오랜 시간을 함께 했어도 우연은 여전히 첫사랑에 서툴렀던 것이다.
[너의 결혼식]은 승희에 대한 우연의 사랑을 단계별로 보여준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전학생 승희에게 첫눈에 반해버린 우연은 이후 친구라는 미명 아래 승희에게 접근한다. 어쩌면 그것은 우연이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이다. 폭력적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남자에 대해 철벽인 승희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우정이라는 장막을 씌워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우연의 방법은 적중했다. 승희도 서서히 우연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줬고, 이제 두 사람은 친구에서 연인으로 조금씩 발전해 나간다.
하지만 미성년자의 사랑은 부서지기 쉽다. 우연과 승희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헤어지게 된다. 승희가 서울로 전학을 감으로써 우연의 첫사랑은 안타깝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연에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온다. 우연히 승희가 다니는 대학을 알게 된 것이다. 우연은 사랑을 위해 공부를 하고 승희가 다니는 대학에 입학함으로써 두 번째 기회를 움켜잡는다.
문제는 승희의 마음이다. 승희에게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우연이 승희에게 그러했듯이 3초 만에 첫눈에 반해버린 첫사랑이... 그래도 우연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우연의 모습은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을 가진 대다수의 관객에게 응원을 받는다. 비록 나는 이루지 못했지만 부디 우연만큼은 첫사랑을 이루길 바라며...
여기까지 [너의 결혼식]의 분위기는 달콤한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이다. 이제 우연의 진심이 승희의 마음을 움직여 두 사랑의 사랑이 이뤄지기만 하면 된다. 우연과 승희의 해피엔딩은 첫사랑을 이루지 못해 후회를 안고 사는 관객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 줄 것이다.
그런데 [너의 결혼식]은 여기에서 다시 한번 꼬아 버린다. 철없는 고등학교 시절, 서로 엇갈렸던 대학교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된 두 사람은 다시 만나고 드디어 사랑을 시작한다. 처음에 두 사람은 너무 행복해 보인다. 비록 가난했지만, 젊음이 있고, 서로의 사랑이 있으니...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보내는 동안 같은 골목에서 서로를 향해 행복한 미소를 짓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이대로 영화를 끝내버려도 될 정도로 훈훈하다. 하지만 [너의 결혼식]은 잔인했다. 우연과 승희의 사랑에 현실을 끌어들인 것이다.
돈은 없지만, 서로의 사랑으로 행복한 커플. 왠지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에서만 가능한 아름다움이다. 사랑만으로 행복한 것은 영원하지 못하다. 사랑 밖에 없는 우연과 승희의 행복은 딱 사계절 동안만 유효했다. 승희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날린 탓에 어깨를 다친 우연은 취업을 하지 못했고, 점점 자신의 미래에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불안감은 두 사람의 사랑을 갈라 놓는다.
'만약 승희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어깨를 다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지금처럼 불안한 미래 때문에 발버둥 치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의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모두 똑같다.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남탓을 하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 인정하는 순간 더욱 비참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것이라 스스로를 속인다. 승희의 아버지도 그러지 않았던가?
우연의 서투른 사랑은 철없던 고등학교 때가 아니었다. 겁 없이 막무가내로 승희 앞으로 달려들던 대학교 때도 아니었다. 군대도 다녀오고, 이제 성인으로써 충분히 성장한 다음이었다.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승희 탓이라 생각했던 그 어리석음. 그 어리석음이 그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소중한 첫사랑의 감정을 갉아먹었고, 첫사랑을 떠나게 만들었다.
어쩌면 우연은 딱 한 번의 실수라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에 담아놓았던 진심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온 것이다. 그래서 저 멀리 떠나는 승희를 잡을 수도 없다. 모든 것이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자기 자신의 탓이기 때문에...
[너의 결혼식]을 보며 마음이 아픈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어렵게 승희와의 사랑을 이루어 냈지만 결국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승희를 떠나보내야만 했던 우연의 모습은 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변산]에서 선미는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완성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내 마음을 사랑한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서투름과 첫사랑을 떠나보면 어리석음에 대한 자기 위로일 뿐이다.
영화의 제목이 '너의 결혼식'이라는 것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승희와 딴 남자의 결혼식 날 우연은 깨닫는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임을... 그리고 승희와의 사랑 덕분에 자신은 한 단계 성장했음을... 첫사랑이 소중한 것은 첫사랑의 서투른 실수를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첫사랑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는 것은 첫사랑이 지금의 사랑을 위한 받침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지금의 사랑이 완성되었고, 첫사랑을 사랑했던 내 마음은 지금의 사랑을 사랑하게끔 단련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너의 결혼식]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이 영화를 뒤늦게 봤다. 로맨틱 코미디의 천편일률적인 해피엔딩도 식상하고, [피끓는 청춘]에서 보여준 여고생 박보영에 대한 실망감이 [너의 결혼식]에도 연결되었다. 하지만 [너의 결혼식]은 뻔한 로맨틱 코미디도 아니었고, 박보영과 김영광의 연기 또한 좋았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그 옛날 첫사랑을 떠나보낸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했고, 그 어리석음 덕분에 지금의 사랑을 이루게 된 것에 대해 고마웠다. 그래서 [너의 결혼식]은 내게 재미와 더불어 여운과 의미를 안겨준 영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