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변혁
주연 : 박해일, 수애

조선 말기인 1894년 갑오개혁에서 공식적으로 신분제도는 폐지되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여전히 신분제도가 남아 있다. 물론 조선 시대처럼 양반, 중인, 천민으로 구분해 놓지는 않았지만, 경제적 능력에 따라 상위층, 중산층, 하위층으로 나뉘는 것이다. 당연히 신분상승의 기회가 막혀 있지는 않다. 하위층에 속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노력을 하고 능력이 된다면 중산층을 넘어 상위층으로 올라갈 수는 있다. 하지만 IMF 이후 빈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노력과 능력만으로 신분상승을 이루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류사회]는 신분상승을 꿈꾸는 중산층 부부 장태준(박해일)과 오수연(수애)의 이야기이다. 학생들에게 인기와 존경을 동시에 받는 경제학 교수 태준과 미래 미술관의 부관장 수연은 일반인이 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좀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태준은 우연한 기회를 통해 민국당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함으로써 자신의 오랜 꿈인 시민은행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고, 수연은 미래 미술관의 관장 자리를 넘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신분상승이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이뤄질 리가 없다.  상위층 사람들이 이루어 놓은 카르텔은 태준과 수연이 뚫고 들어가기엔 너무나 탄탄했다. 그 속에서 태준과 수연은 철저하게 이용당한다. [상류사회]는 그러한 과정을 2시간 동안 관객 앞에 차근차근 풀어 놓는다. 


 

 

분명 [상류사회]는 그다지 특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상위층을 이루고 있는 재벌, 정치가의 더러운 속 사정에 대한 이야기는 수많은 영화에서 이미 했던 이야기가 아니던가? 그중 임상수 감독의 2012년 영화 [돈의 맛]은 [상류사회]와 많이 비슷하다. [돈의 맛]은 재벌 백씨 집안의 은밀한 뒷일을 도맡아 하던 비서 영작(김강우)이 '돈의 맛'을 알아가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영작 역시 부질없는 신분상승을 꿈꾼다는 점에서 [상류사회]의 태준, 수연과 닮아 있다.
이렇게 [상류사회]는 관객의 이목을 끌만한 특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보니 자꾸 다른 것으로 이슈를 만들어 홍보하려 한다. 그것이 바로 배우들의 노출 연기이다. 데뷔 이후 내내 청순한 이미지로 사랑받던 수애의 파격적인 노출 연기와 일본 AV 배우인 하마사키 마오의 출연이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수애와 하마사키 마오의 노출 연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상류사회]를 보려는 관객이 있다면 충고를 하고 싶다. 수애의 노출 연기는 노출이라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수위가 낮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애당초 톱스타인 수애의 파격적인 노출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 그리고 하마사키 마오의 노출 연기를 보고 싶다면 [상류사회]가 아닌 차라리 하마사키 마오가 출연한 일본 AV 영화를 보길 진심으로 추천한다.  

 

배우들의 노출 연기라는 부질없는 기대감을 접어두고 [상류사회]를 평가한다면 나는 '욕망의 노예에 대한 교과서적이고 게으른 영화'라고 표현하고 싶다. 변혁 감독은 [상류사회]를 굉장히 전형적으로 진행시킨다. 우선 태준을 보자. 태준은 분신자살을 시도한 소상공인 노인을 구하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기회를 잡고 자신을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옛 제자와 바람을 피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계획된 음모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민국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위해 이용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수연도 동일하다. 미래 그룹 한용석(윤제문) 회장의 후원으로 이화란(라미란)에 이어 관장의 자리에 오를 기회를 갖게 된 수연은 옛 애인이자 유명 예술가 신지호(이진욱)와 바람을 피운다. 하지만 지호와의 섹스 동영상 때문에 협박을 당하게 되고, 결국 원하던 관장의 자리에 앉지만 한 회장의 아들 제이슨(박성훈)을 위한 허울뿐인 자리이며 미래 그룹 비자금 조성에 이용당한다. 
변혁 감독은 게으르다. 태준과 수연의 이야기는 거의 동일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태준이 기회를 잡으면 수연도 기회를 잡고, 태준이 바람을 피우면 수연도 바람을 피우고, 태준이 위기를 맞이하면 수연도 위기를 맞이한다. 마치 한가지 이야기를 태준의 버전과 수연의 버전으로 나누어 두 배로 뻥튀기한 느낌이다.   

 

 

태준과 수연의 욕망과 좌절은 마치 기승전결이라는 짜인 틀 안에서 착착 진행된다. 그러한 와중에 영화의 결말은 마치 도덕 교과서 같다. 이미 태준과 수연은 '상류사회'의 맛을 보았다. 그리고 욕망의 노예가 되었다. 소상공인을 위한 시민은행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태준은 시민은행이 민국당의 불법 정치자금 동원에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다. 언제나 당당하던 수연은 자신의 섹스 동영상 때문에 비굴하게 무릎을 꿇고, 화란을 위해 한 회장을 유혹하기까지 한다.
어쩌면 태준과 수연은 국회의원이 되고, 미래 미술관의 관장이 되면 '상류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다. 그들은 '상류사회'의 일원이 아닌, '상류사회'의 노예가 될 뿐이다.
태준과 수연이 이 더러운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기만 하면 된다. 어쩌면 태준과 수연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상류사회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자유로운 하류사회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나은 선택은 아닐까? [상류사회]는 이렇게 태준과 수연에게 교과서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영화를 끝맺음한다. 

 

솔직히 나는 개인적으로 [상류사회]에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이 영화는 자극적인 소재를 너무 교과서적으로 풀어 놓았다. 좀 더 파격적으로 스토리 라인을 끌고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변혁 감독의 연출력은 그저 게을러 보이기만 할 뿐이다. 태준이 민국당과 미래 그룹의 비리를 폭로하기 위한 비자금 자료를 손에 넣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자신의 치부를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하지 않는다. 그런데 변혁 감독은 태준의 반격이라는 영화 후반부의 가장 중요한 장면을 정말 대충 찍어 놓았다. 
교과서적인 스토리 전개와 별도로 한 회장 장면은 우스꽝스러운 과장이 잔뜩 섞여 있다. 마치 영화의 흥행을 위해 억지로 코미디를 넣은 듯한데, 한 회장이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 예술을 빙자한 미나미(하마사키 마오)와의 섹스, 그리고 아내인 화란과 티격태격하는 장면까지... 사회 풍자 드라마에서 이렇게 어이없는 실소를 터트리는 장면이 왜 필요한지 도대체 모르겠다. 
[상류사회]는 개봉 첫 날인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너의 결혼식]에 이어 일일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관객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토요일부터는 [서치]에 밀려 3위로 떨어졌다. 수요일까지만 해도 [상류사회]는 [서치]의 두 배가 넘는 일일 관객 수를 기록했지만, 월요일엔 [서치]가 [상류사회]보다 두 배가 넘는 일일 관객 수를 기록 중이다. 이러한 [상류사회]와 [서치]의 엇갈린 박스오피스 성적은 배우들의 노출 연기라는 홍보보다 영화의 만듦새가 더 중요함을 증명한다. 변혁 감독은 [주홍글씨]에 이어 [오감도]를 거쳐 [상류사회]까지 여배우의 노출을 내세우는데, 부디 다음 영화에서는 영화의 만듦새에 좀 더 치중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