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조규장
주연 : 이성민, 김상호, 진경, 곽시양

1964년 3월 13일 금요일 새벽 미국 뉴욕 퀸스 지역 아파트 단지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도의 칼에 찔려 살해되었다. 범인은 윈스턴 모즐리. 그는 6일 후 다른 절도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스스로 제노비스 살인을 자백했다. 평범한 살인사건처럼 보이는 이 사건은 2주 후인 3월 27일 '뉴욕 타임즈'에서 '살인을 목격한 38명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냄으로써 큰 화제가 되었다. '뉴욕타임즈'는 정상적인 남녀 목격자 38명이 창가에 서서 희생자가 마지막 30분 동안 비명을 지르는데도 구조는커녕 경고성 고함 한 번 지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훗날 '뉴욕타임즈'의 편집국장이 된 기자 에이브러햄 로젠탈은 이 사건을 소재로 <38명의 증인들 : 키티 제노비스 사건>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는데, 책에 의하면 "이런 냉담함은 대체로 심리적인 생존에 관건이 된다. 어떤 사람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압력을 받았을 때, 그가 이 무수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침입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능한 한 그들을 무시하는 것뿐이다. 자기 이웃과 그들의 고통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다른 대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뉴욕의 생활에서 불가피한 조건 반사이다."라고 방관자 효과를 설명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방관자 효과' 참조)
[목격자]는 '키티 제노비스 사건'을 연상시키는 영화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 한 여성이 과천의 대단지 아파트 단지에서 살해를 당한다. 아파트 주민인 상훈(이성민)은 베란다에서 이 사건을 목격하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범인 태호(곽시양)가 불 켜진 자신의 집을 쳐다봤기 때문이다. 결국 상훈은 '키티 제노비스 사건'의 38명의 목격자 중 한 명인 셈이다. 

 

 

[목격자]는 기본적으로 스릴러 영화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재미, 즉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거나, 감취진 진실을 밝혀내거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있거나 하는 것등은 이 영화에 없다. 범인의 정체는 처음부터 까발려지고, 그의 범행에 감춰진 진실 따위도 없다. 그는 단지 배고프면 밥을 먹듯,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미친놈일 뿐이다. 물론 관객의 뒤통수를 칠만한 반전 역시 없다.
그렇다면 [목격자]가 가지고 있는 스릴러 영화로서의 영화적 재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관객과의 공감이다. 관객이 상훈과 감정이 이입되어 그의 방관을 이해하고, 태호의 위협에 오싹함을 느끼면 되는 것이다. 현재(9월 2일)까지 [목격자]의 누적관객 수가 순익분기점을 넘어 250만 명에 육박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목격자]의 흥행 전략은 일반 제대로 들어맞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상훈의 방관을 공감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태호의 끔찍한 살인을 목격했다. 하지만 모르는 척 입을 다물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키티 제노비스 사건'의 38명의 목격자와 비슷하다. 단 한 가지만 빼놓는다면... 그것은 바로 가해자의 위협이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의 목격자들이 침묵했던 이유는 나서지만 않으면 자신은 안전할 것이라는 인식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상훈은 다르다. 태호는 상훈의 목격을 인식했고, 그를 직접적으로 위협했다. 그런데 상훈은 그러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입을 다문다.  

 

다시 사건 당일로 돌아가 보자. 상훈이 태호의 범행을 목격한 것은 새벽 2시경이다. 그는 이미 만취 상태였고, 따라서 그의 인지 능력은 정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태호가 불 켜진 자신의 층수를 세는 것을 보며 당황한 나머지 경찰에 신고하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이다.
사건 담당 형사인 재엽(김상호)은 '목격자'가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아파트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 조사에 나선다. 사건 당일 신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피해자가 죽게끔 내버려 둔 상훈에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는 이제 만취 상태도 아니고, 갑작스러운 범행 목격에 당황한 상태도 아니다. 이성적이라면 재엽에게 제보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또다시 그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가족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과연 그의 명분은 정당한 것일까? 가족을 지키려 했다면 오히려 태호가 빨리 잡히도록 재엽을 돕는 것이 더 현명하다. 살인마가 멀쩡히 자신의 아파트를 배회하는 것보다 더 큰 위협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 살인마는 자신의 아파트 호수와 전화번호까지 알고 있지 않는가?  

 

상훈에게 찾아온 세 번째 기회는 범행의 목격자인 402호 서연(배정화)이 함께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하자고 간절히 요청했을 때이다. 이때도 상훈은 애써 서연을 외면한다. 이쯤에서 나는 상훈의 방관에 공감 대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가만히 있으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안전할 것이라는 확신은 어디에서 나온다는 말인가? 태호는 상훈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데, 상훈은 그저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상훈이라면... 가장 먼저 아내 수진(진경)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가족을 친정집이나 친구 집 등 다른 곳으로 피신시켰을 것이다. 태호에게 노출된 상황에서 그의 집은 가장 위험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훈은 수진에게 문단속 잘 하라는 당부 외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마치 위험천만한 아파트 단지에 갇힌 것처럼 행동한다.
서연의 죽음을 목격했을 땐 지체하지 않고 재엽에게 태호의 범행을 이야기했어야 했다. 아파트 단지 내 정신지체아인 콜라와 서연을 죽인 태호는 '목격자'를 살려두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상훈은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어버리니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해서 미처 버릴 지경이었다. 이쯤 되면 상훈이 어서 빨리 태호에게 호되게 당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상훈의 방관은 [목격자]에서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다. 하지만 그의 방관을 공감하지 못하니 [목격자]는 답답한 고구마 같은 스릴러 영화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상훈의 방관에 공감하지 못하다 보니 [목격자]의 재미가 반감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목격자]가 최악의 스릴러인 것은 아니다. 자신의 주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지만 아파트값이 떨어질 것만 걱정하는 아파트 부녀 회장의 모습은 씁쓸하기만 하다. 우린 언제부터 사람의 목숨보다 내 집값을 더 중요시했단 말인가? 아파트 부녀회장의 모습은 집값이 떨어진다며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어찌 그들 뿐이겠는가?)
아파트 복도 끝에서 망치를 들고 달려드는 태호의 모습은 섬뜩했다. 마치 [여고괴담]에서 학교 복도 점프 컷을 보는 것만 같았는데, 영화 속 상훈의 집과 같은 복도식 아파트의 끝 집에 사는 나로서는 집에 들어갈 때마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 망치를 들고뛰어올까 봐 반대편 복도 끝을 주시하는 새로운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영화 마지막 산사태 장면은 의미심장했다. 우리의 방관이 그렇게 많은 피해자를 만든 것은 아닐까?
[목격자]는 분명 의미 있는 스릴러 영화이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개인주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상훈의 방관을 관객 입장에서 좀 더 공감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대부분의 관객이 어쩌면 방관자일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관객이 상훈처럼 자신과 가족의 위협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답답한 고구마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