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는 단지 범인을 밝혀내 코르테즈(베티 가브리엘) 형사에게 제보하려 했다. 하지만 그레이의 몸을 통제하기 시작한 '스템'은 잔인하게 복수를 실행한다. 이제 그레이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진다. 에론은 '스템'을 회수하려 하고, 코르테즈 형사는 일련의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그레이를 의심한다. 게다가 아샤를 죽인 괴한들의 우두머리 피스크(베네딕트 하디에) 역시 그레이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레이는 몸의 통제권을 '스템'에게 넘겨야 한다. 하지만 과연 이대로 '스템'을 믿어도 되는 것일까? 피스크의 배후에 또 다른 음모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업그레이드]의 가장 큰 재미는 단연코 액션이다. 최첨단 두뇌 '스템'이 조종하는 그레이의 액션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다. 두려움이 질려 있는 그레이의 표정과는 달리 그레이의 몸은 정교한 살인 기계처럼 움직인다. 영화 후반 자신의 몸을 무기화시킨 피스크와의 한판 대결은 그렇기에 흥미롭다. 리 워넬 감독은 저예산 SF 영화의 묘미를 잘 살려낸 것이다. 

 

하지만 [업그레이드]의 진짜 재미는 따로 있다. 만약 이 영화가 그저 독특한 액션뿐이라면 [이퀼리브리엄], [존 윅] 등을 잇는 B급 액션 영화일 뿐이다. [업그레이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제목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업그레이드'는 '<컴퓨터>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성능을 기존 제품보다 뛰어난 새것으로 변경하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제목은 영화의 주제와 교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영화의 초반까지만 해도 '업그레이드'는 그레이의 상황을 지칭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보통 사람에서 사지마비 환자로 다운그레이드 되었지만 에론에 의해 보통 사람 때보다 휠씬 '업그레이드'된다. 뇌는 컴퓨터와 연결되고, 몸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액션을 척척해낸다. 어쩌면 그러한 그레이의 모습은 미래에서 진화된 인간의 모습이지 않을까?
그런데 후반에 가서는 모든 것이 뒤집어진다. 물론 피스크의 배후에 있는 인물이 에론이라는 사실은 너무 뻔한 반전이다. 그러나 에론의 배후에 '스템'이 있다는 반전은 놀라웠다. 결국 진정 '업그레이드'된 것은 그레이가 아닌, 그레이의 몸을 얻게 된 '스템'이었던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스템'에게 몸을 빼앗긴 그레이는 아샤가 살아 있는 가상공간의 세계에서 행복을 찾는다.(마치 [매트릭스]처럼...) 그레이는 내면의 세계에서 행복을 찾고, '스템'은 그토록 원했던 인간의 몸을 가졌으니 그레이의 몸을 차지한 두 개의 자아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스템'은 에론과 코르테즈를 죽임으로써 자유로워진다. 이제 그를 막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리 워넬 감독은 이러한 결말을 통해 우리 인간의 인위적 '업그레이드'를 경고한다. 분명 가까운 미래 [업그레이드]와 같은 일은 벌어질 것이다. 처음엔 그레이처럼 몸이 불편한 환자를 위한 치료 방법으로 개발되었다가, 돈 많은 이들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것이며, 어느 순간부터는 대중화되어 모든 인간들이 기계의 몸을 가지게 될 날도 오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과연 인간을 위한 '업그레이드'일까? 만약 '스템'과 같은 인공 기능 컴퓨터가 존재한다면 오히려 인간의 몸은 인공지능 컴퓨터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디스토피아 영화는 샐 수도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어쩌면 진짜 미래에 저렇게 될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관객에게 심어준 영화는 별로 없다. [업그레이드]가 내게 깜짝 놀랄만한 재미를 안겨준 이유는 [업그레이드]를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