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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 - 느슨한 목줄을 끊고 '프랑스의 영광'이 된 여성의 이야기
12  쭈니 2019.07.10 14:45:23
조회 142 댓글 0 신고

감독 :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주연 : 키이라 나이틀리, 도미닉 웨스트

아주 작은 것이라도 창작을 해본 사람은 그 심정을 안다.

지금의 나는 만 1년이 채 되지 않은 초보 네이버 블로거이다. 하지만 1999년부터 영화에 대한 내 개인적인 감상평을 개인 홈페이지, 다음 블로그, 네이버 영화 게시판 등에 올렸었으니, 무한한 인터넷의 공간에는 수 천 개의 내 글이 떠돌고 있을 것이다. 가끔은 걱정이 된다. 내 글이 어떤 불순한 의도로 도용되거나, 어떤 사람이 내 글을 자신의 글이라고 속이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내 글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비록 특별하지는 않지만 내 시간과 노력이 투자되어 쓰인 나만의 창작물인 만큼 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도용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불쾌하다. 아마도 그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창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난 2015년 1월에 본 팀 버튼 감독의 [빅 아이즈]에 공감했었다. [빅 아이즈]는 1950년대 미국에서 '빅 아이즈'라는 독특한 그림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화가 마가렛 킨(에이미 아담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처음엔 '빅 아이즈'는 마가렛이 아닌 그녀의 남편 월터 킨(크리스토프 왈츠)의 그림으로 소개되었다. 여성 화가의 그림은 잘 안 팔린다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데, 비록 돈 때문에 마가렛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그림을 남편에게 빼앗겼지만, 결국 용기를 내서 법적 투쟁 끝에 '빅 아이즈'에 대한 권리를 되찾게 된다. 그 장면에서 나는 마치 내가 승소를 한 것만 같은 짜릿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콜레트]에 주목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콜레트]는 19세기 말, <클로딘> 시리즈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여성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마가렛 킨과 마찬가지로 남편인 앙리 고티에 빌라르의 이름으로 책을 출판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유령 작가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권리를 쟁취했고, 그 덕분에 프랑스에서 예술가로서의 성취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첫 번째 여성이 되었다.

순박한 시골 처녀가 '프랑스의 영광'이 되기까지...

[콜레트]의 시작은 1892년 생 소뵈르라는 시골 마을에 윌리(앙리 고티에 빌라르의 필명, 도미닉 웨스트)가 방문하면서부터이다. 순박한 처녀 '콜레트'는 윌리에게 푹 빠져 있었는데, 두 사람은 이듬해 결혼을 해서 파리에 장착하게 된다. 윌리는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다수의 히트작을 배출한 작가이지만 살롱 사교계에서 난봉꾼으로 통하는 인물이며, 유령 작가들에게 돈을 주고 대신 글을 쓰게 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는 사기꾼이기도 하다. 하지만 씀씀이가 헤픈 윌리는 곧바로 재정적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그때 '콜레트'가 자신의 학창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학교에서의 클로딘>이 큰 성공을 거두며 윌리와 '콜레트'는 재정적 위기를 벗어난다. 물론 <학교에서의 클로딘>은 언제나 그렇듯 윌리의 이름으로 출판된다.

솔직히 [콜레트]는 굉장히 담담한 분위기의 영화이다. '콜레트'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클로딘> 시리즈를 윌리에게 빼앗기지만 [빅 아이즈]에서도 그렇듯이 어디까지나 '콜레트'도 묵인하에 벌어진 일이다. 뻔뻔한 윌리는 바람을 피우다가 '콜레트'에게 걸리기도 하고, '콜레트'가 글을 쓰게 하기 위해 4시간 동안 방에 가둬두는 등 악행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그렇게 심각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그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당연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 대신 [콜레트]는 '콜레트'의 성장에 주목한다. 처음엔 순박한 시골 처녀에 불과했던 '콜레트'는 우리리에 사랑에 매달리는 힘없는 여성이었지만, 나중엔 윌리에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여성들과 밀회를 나누는 당당함을 갖게 된다. 그런 그녀가 벨베프 후작부인, 일명 미시(데니스 고프)와 만나며 본격적으로 감춰왔던 날개를 활짝 펴게 된다.

미시는 어떻게 '콜레트'를 깨웠나?

솔직히 '콜레트'가 미시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콜레트'와 윌리 부부에겐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클로딘>시리즈가 벌어다 준 막대한 수익으로 그들은 부를 함께 축적했고, 프랑스 전역의 트렌드를 이끄는 셀러브리티 커플로 명성을 함께 나누었다. 양성 연애자인 '콜레트'가 윌리와 부부 관계를 유지하면서 여성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그들의 자유분방함이 눈에 띄었다. 사정이 그러하기에 '콜레트'는 미시에게 '윌리가 좀 까다롭긴 하지만 자유도 많이 줘'라며 항변한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미시의 결정적인 한마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가 나온다. "목줄을 느슨히 맸다고 목줄을 안 맨 건 아니지." 이 한마디는 윌리의 그늘에서 나름 행복하게 살던 '콜레트'를 깨웠다. 그렇다. 윌리는 '콜레트'에게 느슨한 목줄을 채워주고 그녀를 자신이 이끄는 대로 조종했던 것이다. '콜레트' 자신은 목줄이 매여져 있는지도 모르게 아주 느슨하게...

결국 '콜레트'는 그 목줄을 끊어 버린다. 그리고 파리의 뮤직 홀에서 무용을 하며 새로운 예술가의 재탄생한다. 뮤직 홀에서 공연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콜레트]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리고 영화는 자막을 통해 그 후 그녀의 인생을 관객에게 들려준다. 뮤직 홀 공연 경험을 그린 '콜레트'의 소설 <방랑자>는 그녀의 이름으로 출간되어 큰 호평을 받았고, '콜레트'와 미시의 관계는 그 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윌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콜레트'는 이혼 후 윌리와 한 번도 만나지 않았으며, 그녀는 저작권 소송을 벌여 결국 승소했다고 한다.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탐한 자의 최후라 할만하다. '콜레트'는 30여권의 소설과 단편들을 발표 프랑스 문학 사상 최고의 작가로 자리매김했으니 느슨한 목줄을 끊은 그녀의 용기를 통해 그녀는 많은 것을 획득했다고 할만하다.

잔잔하게 볼 만한 영화

'콜레트'의 삶은 분명 파란만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굉장히 잔잔하기도 하다. 솔직히 '콜레트'의 삶이 영화적 재미를 갖추려면 윌리의 아내 학대, 그리고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고난 등이 '콜레트'를 끊임없이 괴롭혀야 하지만, 예상보다 '콜레트'가 마주하게 되는 고난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콜레트]는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 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콜레트'가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스스로의 자아를 깨뜨리는 과정일 것이다. '콜레트'는 윌리의 그늘 아래에서 <클로딘>시리즈를 쓰며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녀는 안정적인 수입을 누리며 방탕한 상류층 여성의 삶을 맘껏 누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거부했다.

윌리의 그늘 밑, 안정적인 삶을 거부하면서 '콜레트'를 내면의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 홀로 서야 한다는 두려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두려움을 이겼기 때문에 윌리가 아닌 '콜레트'의 이름이 프랑스 문학사에 남겨진 것이다. 분명 [빅 아이즈]와 비교해서 영화적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19세기 후반,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순박한 시골 처녀에 불과했던 '콜레트'가 어떻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프랑스의 영광'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콜레트]는 충분히 112분의 시간을 투자할만한 영화였다.

'콜레트'의 작품인 <학교에서의 클로딘>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이름은 클로딘이다. 난 몬티니에 산다. 1884년에 거기서 태어났다. 아마 죽을 땐 다른 데서 죽겠지.' 이는 마치 '콜레트'의 인생과도 같다. 평범한 시골 여자아이로 태어난 그녀는 죽을 땐 수많은 여성들의 롤모델이자 '프랑스의 보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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