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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브르 36번가] - [비스트]와 세세한 부분은 같지만 오히려 큰 줄기는 다르다.
12  쭈니 2019.07.03 18: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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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올리비에르 마샬

주연 : 다니엘 오떼유, 제라드 드빠르디유

[비스트]의 원작

며칠 전 [비스트]를 보고 왔다. [비스트]는 대한민국을 뒤흔든 희대의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마약 브로커 춘배(전혜진)의 살인을 은폐해준 형사 한수(이성민)와 한수의 라이벌 형사 민태(유재명)의 뒤틀린 욕망에 대한 영화이다. 내가 [비스트]를 기대한 이유는 이성민, 유재명의 연기에 대한 믿음과 욕망을 쫓는 두 형사의 대결이라는 독특한 설정 때문이다. 애초에 괴물, 짐승을 뜻하는 '비스트'는 영화 속 살인마가 아닌,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두 형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비스트]는 다른 스릴러 영화와는 분명 결이 다른 영화이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비스트]는 실망스러웠다. 살인사건의 결정적인 단서를 얻기 위해 춘배의 살인을 은폐해주지만 민태의 의심으로 서서히 무너지는 한수의 캐릭터는 잘 묘사된 반면, 괴물 중에서도 괴물이라 할 수 있는 민태의 캐릭터가 생략되었고, 영화 후반부엔 뜬금없이 연쇄 살인마에 대한 반전이 튀어나와 영화의 주제를 흩트려놓았다. [비스트]를 보고 나서 왜 이 좋은 소재를 이렇게밖에 만들지 못했는지 아쉽기만 했다.

[비스트]의 원작은 2005년 프랑스에서 자국 영화 관객 동원 1위를 기록한 [오르페브르 36번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6년 6월 16일에 개봉했었다. 물론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비스트]를 실망스럽게 보고 나니 [오르페브르 36번가]가 궁금해졌다. [비스트]라는 실망스러운 결과물이 애초에 원작인 [오르페브르 36번가] 때문인지, 아니면 이정호 감독의 욕심 또는 무능력 때문인지 알고 싶었다. (이후 [비스트], [오르페브르 36번가]의 스포가 포함됨)

유기적으로 연결된 오프닝 세 개의 장면

[오르페브르 36번가]의 오프닝씬은 크게 세 개의 장면으로 나뉜다. 에디의 퇴임을 앞두고 레오(다니엘 오떼유)가 이끄는 BRI 팀원들의 환송회 장면과 에디의 정보원인 마노의 폭행 장면, 그리고 18개월간 9회에 걸쳐 현금수송차량을 공격해 9명의 운송 직원을 죽이고 2백만 유로를 훔친 범죄 조직의 범행 장면이다.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세 개의 장면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에디의 환송회 장면은 레오와 에디의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는데, 에디는 범죄 조직 소탕 작전에서 클랑(제라르 드빠르디유)의 무리한 행동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다. 에디의 죽음은 레오와 클랑의 극단적인 대결의 서막이 된다. 마노의 폭행 장면은 레오의 복수로 이어진다. 레오가 마노를 폭행한 브루노를 납치해서 겁박하는 장면은 [비스트]의 오프닝과 같다. 하지만 [비스트]는 그 장면을 한수의 캐릭터 설명이라는 일회용 사용에 그친 반면 [오르페브르 36번가]에서는 브루노가 영화 마지막 장면에 재등장하여 클랑을 죽이는 역할을 해낸다.

[비스트]와 [오르페브르 36번가]의 가장 큰 다른 점은 바로 두 라이벌 형사가 해결해야 하는 사건이다. [오르페브르 36번가]는 현금수송차량 강도단 소탕 장면이고, [비스트]는 연쇄살인마 사건이다. 당연히 사건의 잔인함은 [비스트]가 훨씬 강하다. 하지만 애초에 이 영화는 범인과 형사의 대결을 다룬 영화가 아니지 않던가. 그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비스트]의 사건은 영화의 주제를 덮을 만큼 자극적이다. 그러나 [오르페브르 36번가]는 다르다. 현금수송차량 강도단은 영화 중반에 소탕되고, 후반부터는 레오와 클랑의 대결만이 전개된다.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된 두 형사의 대결이라는 영화의 주제는 [비스트]보다 [오르페브르 36번가]가 훨씬 잘 표현되었다.

세세한 부분은 같다.

[오르페브르 36번가]는 [비스트]의 원작답게 세세한 부분이 같다. 앞서 언급한 대로 자신의 정보원을 폭행한 브루노를 납치해 겁박하는 에디의 모습은 [비스트]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물론 그에 따른 놀라운 나비효과는 [비스트]에서 생략되었지만...) 그리고 클랑의 새 팀원 이브 역시 [비스트]에서 여미영(이상희)으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이브와 여미영은 마약국 소속으로 강력반에 전출된 것도 같고, 에디와 클랑의 진흙탕 싸움에 염증을 느끼고 다시 전출을 신청하는 것까지 같다.  

범인이 창문 밖으로 몸을 날리는 장면 또한 [오르페브르 36번가]와 [비스트]에서 공통적인 장면이다. 단지 [오르페브르 36번가]의 범인은 레오를 안고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지만 즉사한 범인과는 달리 레오는 조금 다쳤을 뿐 멀쩡했고, [비스트]에서는 한수의 파트너 종찬(최다니엘)이 범인과 함께 창문 밖으로 떨어져 함께 죽임을 당한다. 결국 종찬은 [오르페브르 36번가]의 에디 역할인데, 솔직히 이 부분은 [오르페브르 36번가]보다 [비스트]가 더 낫다고 생각된다. [오르페브르 36번가]에서 레오를 안고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는 범인의 장면이 왜 나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었고, 중요한 작전에서 자신이 밀려났다는 이유로 술을 마신 후 작전을 망치는 클랑 때문에 에디가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약간 억지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신을 밀고한 자를 죽이기 위해 레오에게 정보를 넘겨주고 살인을 저지르는 실리앵(로쉬디 젬)은 [비스트]에서 전혜진의 명연을 통해 춘배로 재해석되었고, 레오의 아내(발레리아 골리노)의 죽음 역시 [비스트]에서 연쇄살인마에게 희생되는 정연(안시하)로 탈바꿈되었다. 이로 인하여 레오와 한수는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리는데, 그가 복수의 칼을 겨누는 대상은 각기 다르다. 레오는 클랑에게, 한수는 연쇄살인마에게 복수한다.

약간의 변화로 큰 줄기는 정말 바뀌었다.

분명 세세한 몇몇 장면만 놓고 본다면 [비스트]는 [오르페브르 36번가]를 착실하게 리메이크한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세한 몇몇 장면이 같다고 해서 같은 영화가 아니듯이 [비스트]와 [오르페브르 36번가]는 기본적으로 다른 영화가 되어버렸다. 이 두 영화를 서로 갈라놓은 것은 두 형사가 해결해야 하는 사건의 무게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비스트]의 연쇄살인마는 한수와 민태의 대결이라는 애초의 주제를 흐트러 놓았다. 영화가 끝나면 욕망으로 인하여 괴물이 된 한수와 민태에게 서늘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데,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것은 갑자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당뇨병 할아버지의 회춘뿐이었다.

[오르페브르 36번가]는 다르다. 이 영화에서 현금수송차 강도단 소탕 작전은 그저 곁가지에 불과하다. 자신이 2년간 매달린 작전에서 레오에게 밀린 클랑은 질투에 휩싸이고, 그의 질투는 서투른 실수를 불러일으킨다. 클랑은 이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레오를 무너뜨려야만 한다. 그리고 레오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실리앵을 잡아야만 한다. 그러한 클랑의 집착은 레오의 아내마저 죽음으로 내몰고 만다. 이제 클랑 입장에서는 돌이킬 수가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짐승이 되는 수밖에... 진짜 '비스트'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것은 어물쩡거리는 민태보다는 클랑에게 더 어울린다.

아내의 죽음으로 이성을 잃고 스스로 무너지는 한수와는 달리 레오는 아내의 복수를 위해 7년간을 꾹 참고 버틴다. 7년 동안 모범수로 죗값을 치른 레오는 출소하자마자 가장 먼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캐낸다. 그리고 그 추악한 클랑의 이면을 보고 지방 경찰서로 전근을 신청한 이브를 통해 그날의 추악한 진실을 알게 된다. 이미 거물이 된 클랑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레오도 짐승이 될 수밖에 없다. 흐지부지 민태의 승리로 끝냈던 [비스트]와는 달리 [오르페브르 36번가]는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만든다.

왜 이 멋진 영화를 이렇게 밖에 리메이크하지 못했을까?

그래서 과연 레오는 스스로 괴물이 되어 클랑에 대한 복수를 완수했을까? 아니, 레오에겐 어린 딸이 있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아빠의 교도소 수감으로 혼자가 된 레오의 딸 롤라는 클랑에게 복수를 준비하고 있는 레오에게 "저를 두 번 버리지 마세요."라고 이야기함으로써 레오가 짐승이 되는 것을 막아낸다. 어쩌면 한수에게도 남겨진 딸이 있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이성을 잃고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오프닝 장면에서 그냥 스쳐 지나간 브루노가 영화의 마지막 순간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롤라 덕분에 짐승이 되지 않았던 레오는 롤라와 함께 머나먼 곳으로 떠나며 [오르페브르 36번가]는 끝을 맺는다. [비스트]와는 달리 [오르페브르 36번가]는 레오의 승리로 막을 내린 셈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욕망 때문에 짐승이 된 클랑의 처참한 최후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다. 그와는 달리 민태의 승리로 막을 내린 [비스트]는 이도 저도 아닌 허무함만 남겨줬다.

[오르페브르 36번가]는 오랜만에 제대로 즐긴 프랑스 느와르 영화라 할만하다. 다니엘 오떼유와 제라르 드빠르디유의 불꽃 튀기는 연기 대결이 볼만했고, 예측을 불허하는 전개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이정호 감독은 왜 이 영화를 그렇게 많이 바꾸었을까? [오르페브르 36번가]가 그리 유명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옮겼어도 큰 무리가 없었을 텐데... 욕망에 사로잡힌 두 형사의 대결에 집중하기엔 난데없는 연쇄살인마의 등장, 춘배의 폭주, 허탈한 한수의 죽음과 민태의 승리라는 결말이 아쉬웠다. 아무래도 이정호 감독의 욕심이 과했던 듯... [비스트]를 보고 나서도 실망스러웠는데, [오르페브르 36번가]를 보고 나니 더욱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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