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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 누구나 마음속에 짐승 한 마리씩 있긴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다.
12  쭈니 2019.06.28 16: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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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이정호

주연 : 이성민, 유재명, 전혜진

내 속의 짐승이 꿈틀거렸다.

목요일 오후, 그날의 일정이었던 교육이 예정보다 일찍 끝났다. 당연히 회사로 복귀해야 하지만 내 속의 짐승이 그냥 땡땡이 치자고 나를 유혹한다. 결국 나는 그 유혹에 넘어가 회사 복귀 대신 극장에서 [비스트] 보는 것을 선택했다. 평일 오후 조용히 [비스트]를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짐승의 유혹에 넘어간 대가 때문일까? 조용히 영화를 관람하겠다는 내 바람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문제는 내 뒷자리에 노인 관객 세 분이 앉으면서부터이다. 그분들은 마치 집에서 TV 드라마를 보듯이 영화 상영 내내 계속 대화를 나눴고, 시체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쯧쯧쯧' 혀를 차다가,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노'하며 불만을 터트렸다. 결국 영화 후반부가 되자 뒤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이게 뭐냐?'라고 역정을 냈고, 그 옆에 앉으신 할아버지는 '뭐긴 뭐야 비스트지'라며 만담까지 주고받았다. 그 순간 영화에 대한 내 집중력은 흐트러지고 말았다. 너무 화가 나서 내 속의 짐승이 '할아버지, 할머니, 앞으로는 극장 오시지 마시고 그냥 집에서 TV 드라마나 보세요.'라고 쏘아붙이라고 나를 자극했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러 못하고 그저 꾹 참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원래는 [비스트]를 본 후 [존 윅 3 : 파라벨룸] 까지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비스트]를 보는 내내 노인 관객 세 분에게 기가 다 빨려서인지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영화 관람을 방해한 노인 관객에게 마음속으로 실컷 욕을 했다. [비스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누구나 마음속에 짐승 한 마리씩 있다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음속 짐승은 그날의 나처럼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고 꿈틀거리다 속으로 삭혀진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다. 비뚤어진 욕망을 맘껏 분출하고, 분노를 억누르지 않고 폭발시키는 사람들, [비스트]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정보원과의 신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형사

언제나 그렇듯 [비스트] 역시 첫 오프닝씬이 굉장히 중요하다. 오프닝씬에서 복면을 쓴 괴한 두 명이 외딴 산길로 차를 몰다가 고라니 한 마리를 로드킬한다. 죽은 고라니를 길가로 치우는데 세워둔 차가 갑자기 흔들리고, 복면을 쓴 괴한 두 명은 차 트렁크를 열어 납치된 남자를 폭행한다. 복면을 쓴 두 괴한은 강력반 형사 한수(이성민)와 그의 파트너 종찬(최다니엘)이다. 그들이 납치한 남자는 조직폭력배로 그는 한수의 정보원인 오마담(김호정)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혼쭐이 나고 있는 중이다. 다시는 오마담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한수의 캐릭터가 모두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한수의 수사 방식은 곳곳에 심어 놓은 정보원에 의한 것이다. 한수의 정보원들은 경찰의 정보원 노릇을 하다가 들통이 나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한수를 돕는다. 그만큼 한수와 정보원들 간에 신뢰가 두텁다. 한수와 오마담의 관계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종찬은 한수에게 정보원에게 정주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들 역시 언제든 잡아 놓을 대상이라며... 하지만 한수는 오히려 종찬에게 주의를 준다. 한수에게 있어서 정보원은 같은 배를 탄 식구와도 같은 것이다. 그렇게 한수와 정보원 간의 신뢰는 [비스트]의 주인공인 한수를 이루는 뼈대가 된다.

수감 중 알게 된 연쇄 살인마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한수와 거래를 한 춘배(전혜진) 역시 한수의 성격을 잘 알기에 무모한 모험을 한 것이다. 춘배는 연쇄 살인마에 대한 정보를 한수에게 넘겨주는 대신 자신을 배신한 마약 브로커를 살해한다. 만약 다른 형사였다면 춘배에게 연쇄 살인마에 대한 정보만 넘겨받은 후 춘배를 살인 혐의로 체포했을 것이다. 굳이 정보원 때문에 살인 방조죄를 뒤집어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수는 춘배를 도왔고, 춘배는 한수가 자신을 도울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수에게 비수가 된다.

그렇다면 민태의 캐릭터는?

[비스트]는 여성을 납치해서 토막살인을 하는 잔혹한 연쇄 살인마를 잡기 위한 라이벌 형사 한수와 민태(유재명)의 경쟁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두 형사가 경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진급이다. 범인을 먼저 잡는 자가 반장으로 진급을 하게 될 것이기에 한수와 민태는 서로 경쟁을 하며 먼저 범인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 경쟁은 정보원 춘배를 이용한 한수가 한발 앞서 나간다. 한수는 춘배의 살인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연쇄 살인마의 집을 알아내고 검거 직전까지 간다. 하지만 연쇄 살인마가 기거하는 아파트가 중국 마약 조직의 본거지임이 드러나며 사건은 복잡해진다. 광역수사대까지 얽힌 이 복잡한 사건에 한수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민태가 치고 나간다.

한수와 민태는 [비스트]의 두 축을 이루고 있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영화는 한수의 캐릭터를 중점적으로 설명할 뿐, 민태의 캐릭터는 의도적으로 생략한다. 민태가 한수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이유가 고작 승진 경쟁 때문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라이벌이자 동기가 나의 상사가 된다는 것은 분명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테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렇게 민태의 캐릭터 설명이 부족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는 한수를 주축으로 영화를 보게 되고, 민태의 마음속 짐승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후반부가 느닷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분명 마음속의 짐승을 먼저 끄집어 낸 것은 한수이다. 그는 연쇄 살인마를 잡기 위해 춘배의 살인을 묵인했다. 그것은 경찰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한수는 연쇄 살인마를 잡고 싶고, 진급을 하고 싶다는 욕망의 짐승에 사로잡혀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말았다. 한수가 먼저 마음속의 짐승을 끄집어 냈다면 민태는 한수보다는 좀 늦게 짐승을 끄집어 냈다. 그러나 민태의 짐승은 한수의 그것보다 더 악랄하다. 그런데 한수와는 달리 민태의 캐릭터는 생략되어 있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이후 스포 가득함)

어느덧 뒤로 밀려난 연쇄 살인사건

[비스트]의 진정한 시작은 한수와 민태의 욕망이라는 짐승이 충돌하면서부터이다. 우여곡절 끝에 연쇄살인마는 잡았다. 비록 살인마의 늙은 아버지는 놓쳤지만 인슐린 없이는 며칠 버티지 못할 당뇨병 할아버지를 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다.) 연쇄 살인마를 잡은 후, 한수와 민태의 싸움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한수는 민태의 무리한 작전 진행으로 파트너를 잃었고, 민태는 한수의 증언 한마디에 경찰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그런 가운데 춘배가 저지른 범행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직감적으로 민태는 춘배의 뒤에 한수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한수의 목을 조여온다.

그 순간부터 [비스트]는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려는 한수의 당혹감과 한수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민태의 잔인함이 부딪힌다. 그러한 가운데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연쇄 살인사건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비스트]가 그리 잘 만든 스릴러 영화가 아닌 이유는 연쇄살인마가 아들이 아닌 아버지임이 너무 뻔하게 드러난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한 아파트 진입 작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연쇄살인마의 아버지를 놓치는 장면은 정말 최악이다. 이게 말이 되나? 중국 마약 조직 때문에 아파트 진입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친 몸으로 리어카를 끌고 아파트 밖으로 나간 연쇄살인마의 아버지를 놓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아파트 진입 작전을 뒤로 민다고 해도 연쇄살인마의 아버지 신변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그 순간 연쇄살인마는 아들이 아닌 아버지임을 확신했다.

더 웃긴 것은 비실거리는 당뇨병 할아버지가 연쇄살인마임이 밝혀지면서 갑자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는 점이다. 그러더니 영화 후반에는 한수에게 몇 번이나 집어 던져졌음에도 불구하고 끄떡없다. 연쇄 살인마는 영화 초반 굉장히 중요한 사건으로 취급되다가, 한수와 민태가 충돌하며 뒷전으로 밀리더니, 갑자기 영화 후반부에 억지스럽게 무대 중앙으로 달려든다. 영화를 보며 이건 뭔가 싶었다.

멋진 연기, 헐거운 짜임새

[비스트]를 보기 전 영화부 기자들의 리뷰를 몇 개 읽었다. 대부분 이성민과 유재명, 그리고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시도한 전혜진의 연기력이 좋았음에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영화 내용의 짜임새가 너무 헐거웠다고 입을 맞췄다. 그 의견에 나 역시 전적으로 공감한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믿고 볼만하다. 특히 전혜진의 연기 변신이 인상적이었는데, 솔직히 장사장(김홍파)은 두려워하며 한수는 두려워하지 않는 춘배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영화 후반 마약에 취한 듯 중얼거리며 폭주하는 춘배의 모습 만큼은 끝내줬다. [독전]의 진서연이 떠올랐다.

하지만 영화의 짜임새는 한숨만 나왔다. 형사 VS 연쇄 살인마, 한수 VS 민태의 대결을 동시에 잡아내려다 보니 이야기가 중구난방으로 어질러진다. 연쇄살인마의 정체에 대한 반전은 하나도 놀랍지 않고, 오히려 반전이 밝혀진 후 회춘해서 슈퍼 빌런이 된 듯한 연쇄 살인마의 모습은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그 가운데 가장 어이가 없는 것은 마지막 민태의 선택이다. 한수가 죽어가도록 남겨 둠으로써 반장 진급을 얻어낸 민태. 결국 욕망의 짐승이 된 한수와 민태의 대결에서 최종 승자는 민태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대로 한수와는 달리 민태의 캐릭터가 생략되었으니 민태의 승리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캐릭터 설명이 잘 된 한수가 승리해야 마땅하다.)

[비스트]의 프랑스 영화 [오르페브르 36번가]를 리메이크한 영화이다. [오르페브르 36번가]는 2005년 프랑스 자국 영화 관객 동원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이다.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그만큼 재미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렇게 재미가 보장된 원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재미를 왜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일까? ([오르페브르 36번가]는 주말에 볼 예정이다.) 이정호 감독은 한수와 민태의 마음속 짐승을 끄집어는 냈지만, 그 짐승을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참 아쉬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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