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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들] - 캐릭터에 공감이 되니, 영화에 푹 빠져든다.
12  쭈니 2019.06.25 18:04:34
조회 40 댓글 0 신고

감독 : 홍승완

주연 : 문소리, 박형식

법정에 서면 보통 사람은 압도된다.

몇 년 전, 회사의 미수 채권 때문에 법정에 선 적이 있다. 원래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지만 미수 채권 금액이 그다지 크지 않았기에 내가 직접 서류를 꾸며 판사 앞에 선 것이다. 처음엔 '뭐 그까짓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판사 앞에 서니 말도 버벅대고 이유 없이 진땀이 흐르더라. 결국 몇 번의 공판 끝에 승소를 거두었지만 미수 채권은 회수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 이후 나는 법원 가는 것이 그냥 꺼려졌다.

2008년 1월부터 우리나라엔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되었다. 국민참여재판이란 만 20세 이상의 국민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형사 재판에 참여하여 유, 무죄 평결을 내리는 제도이다. 만약 배심원에 선정되었는데 정당한 사유 없이 법원에 출석하지 않으면 2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내가 배신원에 선정된다면 과연 나는 압도적인 법원의 분위기를 이겨내고 피고인의 유, 무죄를 잘 판단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아마 나는 내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대세에 따라 결정해서 빨리 법원을 빠져나가고자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배심원에 선정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200만 원의 과태료를 낼 돈도 없다.)

지난 5월 영화 [배심원들]이 개봉했다. 2008년 국민참여재판이 처음 열리던 날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실제 사건과 상상력이 적절하게 혼합된 영화라고 한다. 개봉 이후 관객 평이 꽤 좋은 편이었지만 이상하게 극장에서 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마도 법원에 대한 내 거부감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막상 oksusu를 통해 보니 재미있었다. 개성만점의 캐릭터, 그리고 평범한 일반인들과 엘리트 판사의 팽팽한 대립, 서서히 드러나는 사건의 진실 등이 꽤 촘촘하게 짜여 있는 영화였다.

일반 사람들이 판결을 내린다?

사실 우리나라의 국민참여재판은 미국의 배심원 제도와는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우리나라의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평결은 구속력이 없고 단지 권고적 효력만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배심원이 무죄를 평결해도 판사가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판사 마음대로 할 것이면 뭐 하러 국민참여재판을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암튼 그렇단다. 아마도 법률 지식이 없는 일반 사람들에게 판결을 맡길 수 없다는 법원의 엘리트 의식이 반영된 결과인 듯한데, 그러한 상황은 [배심원들]에서도 잘 표현되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20대 청년 권남우(박형식)이다. 그가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대책 없는 백수이고, 여성 치한 퇴치용 제품 특허로 대박을 꿈꾸는 한심한 몽상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그는 사회적 관념으로 봤을 때 평균 이하의 청년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 여덟 번째 배심원으로 선정된다. 자기주장도 없고, 판단력 또한 형편없는 그가 과연 배심원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런데 비단 권남우 뿐만이 아니다. 다른 배심원의 면면을 보면 만학도 법대생, 요양보호사 할머니, 무명배우, 전업주부 등 평범하기만 하다. 그들은 그저 첫 국민참여재판의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동원된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주연은 재판장인 김준겸(문소리) 판사.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고, 그저 배심원들은 자리만 채워주면 된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배심원 중 가장 한심해 보이는 권남우가 갑자기 사건의 진실에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 김준겸 판사가 그린 좋은 그림은 꼬여 버리고 만다.

확신이 없는데, 이렇게 중요한 결론을 내려도 될까?

사건은 단순하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장애인 아들이 노모를 망치로 내려친 후 아파트 베란다에서 밀어 버린 것. 목격자도 있고, 살해 도구도 발견되었고, 범행 동기도 확실하다. 게다가 범인은 자백까지 했다. 그런데 권남우는 뭔가 의심스럽다. 망치가 살해 도구가 아닌 것 같고, 목격자인 경비원이 정확히 목격한지도 잘 모르겠으며, 모자 사이가 살인으로 이어질 만큼 나빠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배심원들은 유죄를 확신한 상태이지만, 권남우는 모든 것이 확실히 밝혀질 때까지 유, 무죄 판단을 거부한다. 그로 인해 판결은 늦어지기만 한다.

배심원 중 한 명인 조진식(윤경호)은 귀찮은 듯 말한다. 정 모르겠으면 대세를 따르라고... 배심원 중에서 나름 엘리트인 대기업 비서실장 최영재(조한철)는 윗 사람들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따르면 된다고 윽박지른다. 그런데 정말 그래도 될까? 다른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결정인데 그냥 대세를 따르고, 잘난 사람들의 결정을 무조건 따르기만 해도 되는 걸까?

내가 [배심원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권남우의 그러한 질문이 공감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 일이라면 어차피 내 결정을 책임질 사람 또한 나이기에 결정이 쉽다. 하지만 남의 일이다. 내 결정으로 인하여 누군가는 평생 어머니를 살해한 패륜아로 살아야 한다. 만약 내 결정이 잘 못 된 것이라면 그 죄책감은 어쩌란 말인가? 내가 권남우의 입장이라도 마찬가지로 고민하고, 쉽게 결정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12명의 성난 사람들]과 비슷해도 너무 비슷하다.

[배심원들]의 최대 장점은 이렇게 공감되는 캐릭터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내가 만약 영화 속 배심원이라면...이라는 상상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몰입된다. 그러면서 마치 추리 영화처럼 사건의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는 재미도 느낄 수가 있다. 특히 권남우의 용기가 다른 배심원들의 안일한 인식을 바꿔 넣고, 김준겸 판사 역시 그러한 배심원들로 인하여 초심을 되찾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평범한 사람들도 이렇게 뭔가를 바꿀 수가 있다. 그러한 쾌감이 영화를 본 후 나를 감쌌다.

사실 [배심원들]을 그렇게 독창적인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보며 이거 어디선가 많이 본 내용인데 싶었다. 알고 보니 시드니 루멧 감독의 그 유명한 법정 드라마 [12명의 성난 사람들]과 내용이 똑같았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미국 영화연구소가 선정한 역대 법정 드라마 2위에 올라와 있는 걸작이다. 존속살인, 모두가 유죄라 생각하지만 8번 배심원만이 의문을 제기한 점, 배심원 간의 갈등, 그리고 결국 8번 배심원의 주장에 따라 판결이 무죄로 바뀌는 장면 등... 이쯤 되면 [12명의 성난 사람들]의 리메이크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영화를 본 후 [배심원들]과 [12명의 성난 사람들]과 비슷해도 너무 비슷한 내용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평범한 사람들인 배심원에 의해 엘리트 중의 엘리트인 김준겸 판사가 변하는 장면은 [12명의 성난 사람들]에는 없는 [배심원들]에만 있는 짜릿함이다. 그런데 배심원의 판결이 구속력이 없다는 기형적인 우리나라의 배심원 제도가 만들어낸 영화적 재미라는 점에서 조금 씁쓸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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