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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차왕 엄복동] - 최악은 아니다. 하지만 장점을 찾을 수는 없더라.
12  쭈니 2019.05.10 10:52:48
조회 106 댓글 0 신고

감독 : 김유성

주연 : 정지훈, 강소라, 이범수

'1UBD'의 위엄

영화계 은어로 '1UBD'라는 단위가 있다고 한다. '1UBD'는 17만 명을 의미하는데, 'UBD'는 '엄복동'을 뜻한다. 결국 '1UBD'는 거액의 제작비가 들었지만 17만 관객밖에 동원하지 못하고 흥행에 참패한 [자전차왕 엄복동]을 조롱하는 것이다. 그만큼 [자전차왕 엄복동]은 2019년이 아직 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2019년 최악의 흥행 실패작으로 등극이 유력하다.

참 이상하다. 나는 욕먹는 영화가 궁금하다.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길래 흥행에 참패하는 것도 모자라 조롱의 대상이 된 것일까? 개봉 당시에는 [자전차왕 엄복동]에 큰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딱 봐도 못 만든 영화라는 것이 눈에 보였으니까. 그런데 '1UBD'라는 은어의 의미를 알게 된 이후에는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비록 아들의 강력한 거부로 혼자 [자전차왕 엄복동]을 봐야 했지만, 목요일 저녁 결국 '1UBD'의 위엄을 몸소 체험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자전차왕 엄복동]이 최악까지는 아니었다. 하긴 희대의 망작이라 일컬어지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도 나는 재미있게 봤으니 너무 놀랄 필요는 없다. 물론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자전차왕 엄복동]은 엄청 못 만든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영화적 만듦새는 허술했고, 캐릭터 구축은 대충이었으며, 스토리 전개는 너무 구식이다. 분명 '엄복동'이라는 캐릭터 자체는 매력적인데 영화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영화의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전혀 장점이 없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악까지는 아니었던 이유는 거의 2시간 동안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지루함은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별 고민 없이 쉽게 창업하는 자영업자처럼...

요즘 나는 수요일 밤이면 SBS에서 방영하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즐겨 본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면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현실이 드러난다. 물론 많은 분들이 작은 식당 하나를 운영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메뉴를 개발하며 노력을 하지만, 다른 많은 분들은 별생각 없이 안일하게 식당을 열었다가 손님이 없어 위기를 맞이한다. 식당을 내는 것이 큰돈이 들어가는, 어쩌면 나와 같은 소시민에게는 인생을 거는 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저들은 왜 저렇게 큰 고민 없이 쉽게 식당을 내고, 장사가 안된다고 징징거리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딱 별생각 없이 식당을 냈다가 손님이 없어 폐업을 하게 된 식당 같은 영화이다. 메뉴는 좋다. 식당 위치도 훌륭하다. 하지만 음식 맛이 형편없다. 그렇다면 그 식당은 망하기 마련이다. [자전차왕 엄복동]도 마찬가지이다. 소재는 좋았다. 그리고 3.1운동 100주년에 맞춰 영화를 개봉했으니 시기도 잘 맞췄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영화 자체가 허술하다. 그러면 흥행에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 저 좋은 소재로 영화를 저렇게 밖에 못 만들었던 것일까?

아마도 제작자인 이범수는 '엄복동'이라는 소재로 3.1운동 100주년에 맞춰 영화를 개봉시키면 흥행에 성공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실존 인물을 영화로 만들으려면 그 실존 인물에 대한 자료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시나리오 작업에 공을 들여야 한다. 그렇기에 잘 만든 영화들은 촬영 들어가기 전, 기획에만 몇 년씩 걸린다. 그런데 [자전차왕 엄복동]은 딱 봐도 '엄복동', '독립운동'을 대충 짜 맞춘 티가 난다.

'엄복동'이라는 인물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엄복동'이라는 인물을 네이버에 검색하면 한국 민족문화대박과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서울 출생. 아버지는 선양이며, 어머니는 김씨이다. 당시 자전거 판매상인 일미상회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중 1913년 4월 경성일보사와 매일신보사가 인천, 용산, 평양 등에서 공동 주최한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에서 우승하였다.' 그 뒤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엄복동'의 활약과 말년의 불우한 삶을 짤막하게 나열되어 있다.

하지만 [자전차왕 엄복동]은 '엄복동'(정지훈)의 활약을 좀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누구나 쉽게 검색해볼 수 있는 '엄복동'의 일생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영화에서 '엄복동'은 서울 태생이 아닌 시골 태생이다. '엄복동'이 집을 나와 황재호(이범수)의 눈에 띄어 자전차 선수가 되는 과정, 독립운동을 하는 김형신(강소라)과 만나고 김형신을 구하려다가 일본 경찰인 사카모토(김희원)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는 장면 등 모든 것이 그냥 상상력에 의한 것이다.

물론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 상상력에 의존한 각색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실존 인물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게 일반적인 룰이다. 그런데 [자전차왕 엄복동]은 그러한 룰을 무시한다. 그러려면 차라리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야만 했다. 그냥 '엄복동'이라는 소재는 쓰고 싶고, 그 소재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으니 입맛에 맞게 캐릭터를 마구 바꾸어 놓고, 실존 인물 영화라고 내세운 셈이다. 이건 마치 '수제 닭꼬치'라고 광고해 놓고, '기성품 닭꼬치'를 파는 것과도 같다.

캐릭터 소모도 이 정도면 과소비이다.

[자전차왕 엄복동]에는 많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캐릭터들이 뭔가 어색하다. 그저 '엄복동'이라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려고 억지로 만들어진 까닭이다. 그중에서 가장 어색한 캐릭터는 '엄복동'의 동생 귀동(신수항)이다. 귀동은 아버지(이경영)가 논밭을 팔아 마련한 학비로 '엄복동'에게 자전거를 사줬다가 '엄복동'이 집을 나가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고, 돈을 벌기 위해 만주로 철도 개설 작업에 갔다가 카츠라(정석원)의 총에 맞아 죽는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엄복동'과 카츠라의 자전차 경주 대결을 좀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설정인데, '엄복동'은 귀동이 만주에서 카츠라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가 없기에 상당히 불필요한 장면이 되고 말았다.

이홍대(이시언)라는 캐릭터는 영화이 웃음을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캐릭터로 보이는데, 역시나 영화에서 별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홍대는 서울에 온 '엄복동'을 사기 쳐서 전 재산을 빼앗고, '엄복동'을 꼬드겨 불법 자전차 대회에 출전시켰다가 '엄복동'으로 하여금 퇴출 위기를 맞게 만든다. 이건 뭐 웃음을 위한 캐릭터라기보다는 빌런에 가깝다. 도대체 이런 발암 캐릭터는 왜 만들어서 영화의 러닝타임을 소모시키는 것일까?

'엄복동'을 남몰래 짝사랑하는 경자(민효린), '엄복동'의 여동생 봉선(박진주) 등 [자전차왕 엄복동]에는 도대체 왜 필요한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캐릭터들이 넘쳐난다. 이는 마치 장사가 안되는 식당이 메뉴만 잔뜩 만들어 놓고, 재료 관리를 못해 허둥대는 것과도 같다. 차라리 메뉴를 간소화시켜서 맛에 집중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점이듯이 [자전차왕 엄복동]도 캐릭터를 간소화시켜서 '엄복동' 캐릭터'에 집중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뻔했다.

장르의 쾌감이 전혀 없다.

[자전차왕 엄복동]은 엄밀하게 따진다면 스포츠 영화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벌어진 자전거 경주 대회가 영화의 주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전거 대회의 스피드, 스펙터클함이 제대로 담겨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쾌감은 전혀 없다. 이 영화에서 자전거 질주 장면은 스피드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마치 일반인이 자전거 타는 것을 캠코더 카메라에 담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건 순전히 연출진의 능력이 부족한 부분이다.

좋다. 연출진이 능력이 부족해서 스포츠 영화의 스피드, 스펙터클을 제대로 잡지 못한 것을 넘어가 주자. 그렇다면 최소한 독립운동 영화의 감동을 제대로 잡았어야 했다. 애초에 '엄복동'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독립운동을 억지로 끼워 맞추다 보니 김형신, 안도민(고창석) 등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캐릭터는 주먹구구식이고, 하세가와(박근형), 사카모토, 카츠라 등 일제 캐릭터들은 그냥 단순 악당에 불과하다. 특히 김형신이 죽는 장면... 감동적이어야 하는데 너무 과도하게 비장미 넘치게 연출되어서 실소가 나왔다.

내 글을 전부 읽었다면 '뭐야 최악은 아니라더니...'라며 의아해할 것이다. 솔직히 '1UBD'라 조롱당하고 있는 [자전차왕 엄복동]이 가여워 어떻게든 영화의 장점을 찾아 부각시켜주고 싶었는데,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더라.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장점이 보이지 않으니... 마치 망해가는 식당이 안쓰러워 어떻게든 맛있게 먹어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맛없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심정이랄까. [자전차왕 엄복동]을 보며 제발 영화 한 편을 만들으려면 철저하게 기획하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물론 나는 백종원이 아니라서 내 마음이 그들에게 닿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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