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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와이프] - 진정한 행복은 결코 거짓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12  쭈니 2019.05.03 15:34:19
조회 114 댓글 0 신고

감독 : 비욘 룬게

주연 : 글렌 클로즈, 조나단 프라이스

내 기억 속 팜므파탈 그녀, 많이 늙었더라.

글렌 클로즈는 1947년생, 만으로 72세이다. 그야말로 할머니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글렌 클로즈는 아직도 치명적인 팜므파탈이다.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1987년작 [위험한 정사]가 결정적이다. 이 영화에서 글렌 클로즈는 성공한 엘리트 변호사 댄(마이클 더글라스)을 유혹하는 뇌쇄적인 매력의 여인 알렉스를 연기했는데, 댄이 가정에 충실하려고 하자 그의 주위를 맴돌며 뜨거운 복수를 한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광기와 집착에 휩싸인 글렌 클로즈의 연기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위험한 정사]가 너무나도 강렬했기 때문일까? 이후에도 글렌 클로즈는 악녀 연기를 자주 맡았는데,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위험한 관계], 스티븐 헤렉 감독의 [101 달마시안], 최근에는 토미 위르콜라 감독의 [월요일이 사라졌다]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 모든 영화를 통틀어도 [위험한 정사]만큼의 임팩트는 아직 없다. 그만큼 글렌 클로즈는 아직도 내게 [위험한 정사]의 치명적인 악녀 알렉스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데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을 시청하며 [더 와이프]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글렌 클로즈의 모습을 본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의 모습에서 이젠 인자한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 [더 와이프]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2개월이 약간 지난 후에야 [더 와이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에게 숨겨진 비밀

[더 와이프]는 작가인 조셉 캐슬먼(조나단 프라이스)이 노벨문학상 수상이 확정되는 순간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조셉과 그의 아내 조안(글렌 클로즈)은 어린아이처럼 침대 위를 방방 뛸 정도로 기쁘다. 그리고 곧이어 축하 파트가 열리고, 조셉과 조안, 그리고 두 사람의 아들인 데이빗(맥스 아이언스)는 수상을 위해 스톡홀름으로 향한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작가이지만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데이빗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언제 폭발할지 모를 위태로운 상태이고, 전기 작가인 나다니엘 본(크리스찬 슬레이터)은 조셉의 노골적인 반감에도 불구하고 자꾸 이 두 부부의 주위를 얼쩡거린다.

그러면서 영화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1958년으로 시간을 옮긴다. 작가로써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작가가 되지 못한 조안은 자신의 담당 교수인 조셉과 사랑에 빠져 버린다. 이미 조셉은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아빠이지만, 결국 조안은 조셉의 사랑을 쟁취한다. 그리고 조셉이 작가로써 성공할 수 있도록 그의 글을 손봐주고, 그 덕분에 조셉은 작가로써 명성을 쌓아 간다.

재능을 도둑맞은 그녀의 대처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그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남편에게 자신의 작품을 빼앗기는 내용은 [더 와이프]가 처음은 아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팀 버튼 감독의 2014년작 [빅 아이즈]에서는 아내인 마가렛(에이미 아담스)의 독특한 그림 '빅 아이즈'가 자신의 그림이라며 거짓말을 하고 명성을 얻은 월터 킨(크리스토퍼 왈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결국 마가렛은 기나긴 법정 투쟁을 벌인 끝에 진실을 밝혀낸다.

하지만 [더 와이프]의 조안은 [빅 아이즈]의 마가렛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애초에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도전이 두려워 작가로서의 길을 포기한 것도 그녀 자신이었고, 가정이 있는 조셉을 사랑한 것도 그녀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다. 조셉의 성공을 위해 하루 몇 시간씩 소설을 대필한 것 역시 그녀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다. 그렇기에 조안은 조셉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진실을 캐내려는 나다니엘에게 끝까지 거짓말로 응대한다.

그래서 조안은 행복했을까? 자신의 글이 남편의 글로 탈바꿈되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남편 혼자 독차지하는데 행복했을 리가 없다. 조셉 역시 마찬가지이다. 조안이 글을 쓰는 동안 조셉은 가정일을 도맡아 했고, 자괴감에 수도 없이 불륜을 저질렀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부부였던 그들의 내면적 불행은 불만 가득한 아들 데이빗의 표정으로 대변된다. 진정한 행복은 결코 거짓으로 완성될 수 없는 법이다.

슬아슬한 영화의 분위기는 거짓에서 기인된다. 

[더 와이프]는 상당히 잔잔한 영화이다. [빅 아이즈]처럼 극적인 법정 투쟁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분위기는 아슬아슬하다. 이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나다니엘은 조안과 조셉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결정적 증언을 얻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데이빗의 반항은 언제 어디에서 터질지 모를 지경이다. 조안과 조셉이 안고 있는 비밀은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팽창한 풍선 같다. 만약 이 풍선이 터진다면 조셉은 노벨문학상의 명성을 더럽힐 세기의 스캔들 주인공이 될 것이다. 어쩌면 나는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풍선은 터지지 않고 갑자기 바람이 쭉 빠져 버린다. '빵'하고 터지는 풍선이 보고 싶었는데, 바람이 빠져 쭈글쭈글해진 풍선만이 내 앞에 덩그러니 남아버린다. 결국 조안은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는 짓을 안고 평생 사는 것을 선택한다. 무엇이 나은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다. 단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렇듯 이것 역시 그녀의 선택이고, 그로 인한 짐은 그녀 스스로가 짊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결말이 조금 맥 빠지기는 하지만 [더 와이프]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희생, 그리고 그로 인한 불행을 담담하게 잡아냈다. 조안이 나다니엘에게 경고했듯이 그녀는 평생 죽은 남편의 명예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명예가 거짓된 것일 일지라도 그것이 그녀가 선택한 길인 만큼 그녀는 거짓의 무게를 기꺼이 혼자 짊어질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영원히 불행할 것이다.

글렌 클로즈의 명연기, 이제 [위험한 정사]를 잊어도 될까?

영화의 내용자체가 조금 밋밋하긴 하지만 그래도 [더 와이프]는 글렌 클로즈와 조나단 프라이스의 명연기가 굉장히 인상 깊은 영화이다. 그 늙은 나이에도 젊은 여자에게 껄떡 되고, 조안에게 '그래도 당신을 생각해서 중간에 멈췄어.'라고 말하는 뻔뻔스러움이 돋보이는 조셉을 연기한 조나단 프라이스의 연기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중후함과 바람둥이 작가의 가벼움이 공존하는 이중적인 연기가 좋았다.

그래도 역시 최고는 글렌 클로즈의 연기이다. 영화 후반 자신의 재능을 빼앗아 명예를 독차지한 조셉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은 잔잔하기만 하던 [더 와이프]를 크게 출렁이게 만드는 명장면이었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나다니엘에게 경고를 하는 장면에서는 불행을 속으로 삼키고 모든 것을 혼자 떠안은 그녀의 모습에서 가련함이 느껴졌다. 이제 글렌 클로즈에게서 치명적인 팜므파탈을 지워도 될 것 같다. 그만큼 그녀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글렌 클로즈의 딸인 애니 스털크가 조안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것도 좋았고, 명배우 제레미 아이언스의 아들인 맥스 아이언스의 반항아적 연기도 좋았다. 결국 [더 와이프]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영화 재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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