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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 판타지 멜로를 기대하기엔 모든 것이 헐겁다.
12  쭈니 2019.04.19 16:32:22
조회 132 댓글 0 신고

감독 : 정용주

주연 : 이청아, 홍종현

최악이 될 뻔한 아내와의 극장 데이트

4월 18일은 나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는 날이다. 첫 번째는 4월 24일 개봉하는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의 아이맥스 예매가 오픈하는 날이고, 두 번째는 결혼기념일을 이틀 앞두고 아내와 극장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이다. 작년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를 CGV 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에서 봤는데, 아내와 아들의 반응이 좋아서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역시 CGV 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에서 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곳은 가장 예매가 치열한 곳. 나와 아내는 예매 오픈 시간인 오후 6시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문제는 오후 6시가 가까워지자 CGV 서버가 먹통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결국 나는 아내와의 극장 데이트 장소까지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올 아내에게 영화 예매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오후 6시 30분 극장에 도착했다. 그땐 CGV 예매 창이 열리긴 했지만 CGV 용산아이파크몰 아이맥스관의 티켓은 거의 매진된 상태였다. 그래도 CGV 영등포 스타리움관 예매는 성공했으니 최악은 면한 셈이다. 아쉬움과 안도의 한숨을 쉬는 동안 시간은 7시를 향해갔다. 영화 시작 시간은 오후 7시 25분. 그런데 아내에게 연락이 없다. 혹시나 해서 문자를 보냈더니 집이라고 한다. 아내는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예매에 정신이 팔려서 나와의 극장 데이트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나는 아내와의 극장 데이트를 기대했지만 아내에겐 나와의 극장 데이트가 깜박 잊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나 보다. 지금이라도 빨리 택시를 타고 극장으로 오라는 나와, 예매를 취소하고 영화는 나중에 보자는 아내. 결국 아내는 내 고집을 꺾지 못하고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극장으로 달려왔다. 아내와의 달달한 극장 데이트를 꿈꿨지만 아내에게 서운한 나와, 내 고집에 짜증이 난 아내의 눈빛이 교차했다. 하지만 다행히 결혼 16년 차 부부의 관록으로 별일 없다는 듯이 극장 데이트를 마무리할 수가 있었다. 그날 나와 아내가 본 영화는 [다시, 봄]이다.

매일 하루가 어제로 가는 여자

내가 [다시, 봄]을 아내와의 극장 데이트용 영화로 선택한 이유는 영화의 소재가 타임 리와인드이기 때문이다. '되감다'라는 뜻을 가진 'remind'에서 알 수 있듯이 타임 리와인드는 시간을 되감는 것이 영화의 주요 설정이다. 아내도, 나도 이런 시간 여행 영화를 좋아한다. 그렇기에 [다시, 봄]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일찌감치 나는 아내와 함께 봐야겠다고 결심한 터였다.

은조(이청아)는 삶의 유일한 희망이라 할 수 있는 딸, 예은(박소이)을 갑작스럽게 잃었다. 치매노인(박지일)에게 예은이 살해된 것이다.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잃은 은조는 자살을 결심하고 자살 동호회 회원들과 만나 한적한 절에서 죽음을 맞이하려 한다. 하지만 결국 자살에 성공한 것은 호민(홍종현)이라는 남성뿐이고 은조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은조의 다음날은 내일이 아닌 어제가 되어버린다.

매일 어제에 눈을 뜨는 은조에게 처음엔 그것은 축복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예은이 죽은 그날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고, 예은의 죽음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은의 죽음을 막은 이후에도 여전히 시간은 어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예은은 점점 어려지고, 결국 은조의 뱃속으로 들어간다. 다시 시간을 원래대로 돌리지 않으면 은조가 예은을 임신하기 전으로 돌아가 예은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처음엔 예은의 예정된 죽음을 막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던 은조는 이제 다시 시간을 원래대로 돌리기 위해 애쓴다.

내가 당신을 알아볼 때까지 기다려줘요.

은조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키를 쥔 것은 호민이다. 호민은 자살클럽에서 만난 남성으로 문제의 그날 유일하게 목숨을 잃은 인물이다. 하지만 은조는 그날 똑똑히 들었다. 사망선고를 받은 호민이 은조에게 '내가 당신을 알아볼 때까지 기다려줘요.'라고 속삭이는 말을... 은조는 그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돈다.

호민은 불행한 청년이다. 한때 유도 유망주였지만 시합 도중 어깨 부상으로 유도를 그만두게 되었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치매에 걸리고 만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예은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바로 그 치매노인이다. 은조는 예은의 복수를 위해 치매노인을 죽이려 병원에 갔다가 호민과 마주치게 된다. 그럼으로써 자신과 호민의 악연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예은이 죽던 바로 그날 그동안 몰랐던,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던 진실을 알게 된다. 결국 호민도 그날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이후 영화는 은조와 호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흘러 예은은 은조의 뱃속으로 되돌아가버렸기에 이제 은조는 호민을 위해 시간을 쓴다. 은조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호민의 불행을 막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매일 호민에게 접근하지만, 다음날이면 호민을 은조를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은조의 다음날은 호민에게 어제이기 때문이다. 2017년 10월에 국내 개봉한 일본의 판타지 로맨스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가 떠올랐다. 에미(고마츠 나나)에겐 타카토시(후쿠시 소우타)와의 첫 만남이 타카토시에겐 에미와의 마지막 만남이고, 반대로 에미의 입장에서 타카토시와의 마지막 만남은 타카토시에겐 첫 만남이 된다. 이 독특한 로맨스 영화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감동적인 영화로 남아있다. [다시, 봄]은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의 독특한 로맨스를 따라간 것이다.

판타지 멜로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솔직히 나는 [다시, 봄]을 재미있게 보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비록 영화를 보기까지의 과정에서 아내와 약간의 충돌이 있었지만, 어찌 되었건 [다시, 봄]은 나와 아내의 결혼 16주년을 기념하는 영화가 아니던가. 이건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다시, 봄]은 재미없다. 영화가 끝나고 아내도 '만듦새가 그리 좋지는 않네.'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안타깝지만 그건 사실이다.

일단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와 같은 판타지 멜로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비록 은조는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엄연한 아기 엄마이고, 호민은 청년이다. 그래서일까? 정용주 감독은 은조와 호민의 로맨스를 마치 경계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알기로는 원작 웹툰에선 은조와 호민의 로맨스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시, 봄]에서는 전혀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은조는 호민에게 미안해서, 그리고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서 호민의 주위를 맴도는 것뿐이다. 아내와 함께 달달한 판타지 로맨스를 보고 싶었지만 결국 실망감만 느껴야 했다. (극장 데이트용 영화를 잘못 선택했다. 차라리 [파이브 피트]를 볼걸...)

이청아와 홍종현의 연기력도 기대 이하였다. 사실 이청아의 연기는 2004년에 개봉한 [늑대의 유혹] 이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다시, 봄]에서 보니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더라. 딸을 잃은 엄마의 슬픔, 분노, 그리고 거꾸로 가는 시간에 빠진 주인공의 당혹감과 호민을 향한 감정까지 모든 것이 그저 무덤덤하다. [늑대의 유혹]에서는 통통 튀는 매력이 있었는데... 하긴 그것이 이미 15년 전의 일이다. 홍종현은 술에 취한 연기 하나만 귀여웠다. 이청아와 홍종현의 연기가 기대 이하이다 보니 [다시, 봄]은 나의 그 어떤 감정선도 제대로 건드리지 못했다.

모든 것이 헐겁다.

내가 [다시, 봄]에 가장 큰 실망을 느낀 부분은 타임 리와인드라는 소재를 잘 이용하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매일 어제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은조. 그것을 제대로 잡아내기 위해서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루하루에 대한 묘사가 중요하다. 하지만 [다시, 봄]에서는 거꾸로 가는 하루하루를 대충 마구 건너뛴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은조가 겪게 되는 거꾸로 가는 시간이 2018년에서 2011년으로 무려 7년이라는 긴 세월이기 때문이다. 7년이라는 세월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은조와 호민의 외모, 그리고 시대를 나타내는 소품까지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럴 거면 차라리 은조의 거꾸로 가는 시간의 범위를 확 줄이는 것이 나았을뻔했다.

은조에게 시간을 다시 원래대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준호(박지빈)라는 캐릭터도 어색했다. 은조가 스스로 거꾸로 가는 시간을 탈출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고, 준호가 친절하게 설명하는 식의 스토리 전개는 너무 안일하다. 게다가 은조와 함께 은조의 노트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니, 이건 반칙이다. 시간이 거꾸로 가면 노트의 내용이 지워져야 하는데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노트는 호민의 불행을 지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나라면 차라리 로또 번호를 회차별로 적어놓고 호민에게 줬을 것이다. 그러면 호민은 훨씬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은조의 노트는 불필요한 장치이다.

[다시, 봄]은 뚜렷한 결말을 내지도 못한다.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온 은조는 과연 예은의 죽음이라는 이미 일어난 사건을 되돌릴 수 있었을까? 호민은 은조의 노트 덕분에 어깨 부상을 막고 유도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을 그저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타임 리와인드라는 정교한 소재를 가지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헐거운 스토리 밖에 만들지 못한 [다시, 봄]의 한계이다. '인생에 만약은 없다'라는 대사가 영화에 두 번 등장한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인생에 만약은 없지만 영화에서만이라도 만약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만약이라는 것을 정말 그럴듯하게 꾸미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다시, 봄]은 만약을 타임 리와인드로 꾸몄지만, 전혀 그럴듯하지 않기에 내게 실망만 안겨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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