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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 - 씁쓸한 정치 풍자도 그가 하면 재미있다.
12  쭈니 2019.04.18 10:17:37
조회 155 댓글 0 신고

감독 : 아담 맥케이

주연 : 크리스찬 베일, 에이미 아담스, 스티브 카렐, 샘 록웰

의외의 기대작

사실 정치 영화는 어렵다. 우리나라의 정치 영화일 경우는 그래도 내가 사는 나라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관심을 가질 수가 있지만, 미국의 정치 영화는 도통 집중이 안 된다. 내가 미국의 정치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1996년 국내에 개봉한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닉슨]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미국의 제37대 대통령인 리차드 닉슨을 소재로 무려 3시간 10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자랑했던 이 영화는 안소니 홉킨스의 명연기가 돋보이는 영화였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 근대사 수업을 듣는 기분이었다.

[닉슨]의 영향 때문에 미국의 정치 영화는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이 생겨버렸다. 그런데 그 편견은 [바이스]의 예고편을 보며 깨져 버렸다. 20kg 가까이 몸무게를 늘린 크리스찬 베일의 명연기는 일찌감치 정평이 나있었지만, [바이스]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솔직히 따지면 [닉슨]의 안소니 홉킨스 연기도 크리스찬 베일 못지않게 어마어마했다.) 지루하고 딱딱한 정치 영화의 틀을 벗어나 유쾌하고 풍자가 넘쳐 보이는 [바이스]의 예고편은 단숨에 내 마음을 빼앗아버렸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미국은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나라이다. 미국의 정치 상황은 한반도 평화와 우리나라의 경제와 직결된다. 요즘도 보수단체 시위에서는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가 휘날리지 않는가. (그건 좀 창피하다) 그러한 현실 때문이라도 나는 [바이스]를 봐야 했다. 월요일 오후 나 혼자 극장을 찾은 이유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담 맥케이 감독은 유쾌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바이스]를 풀어냈다.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한국사를 재미있게 설명하는 설민석의 한국사 강의를 보는 느낌이랄까... [바이스]는 딱 그런 영화이다.

왜 딕 체니 부통령일까?

대개의 정치 영화는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바이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아닌 딕 체니 부통령을 소재로 내세웠다. 그건 아담 맥케이 감독이 보기에 당시 부시 행정부의 실질적인 권력자는 부시 대통령이 아닌 딕 체니 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딕 체니는 어떻게 대통령을 제치고 실질적인 권력자가 될 수 있었을까? [바이스]는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의 젊은 시절부터 부시 행정부의 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최대한 상세하게 잡아낸다.

[바이스]가 잡아낸 딕 체니의 일생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체포되는 젊은 시절 딕 체니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그의 젊은 시절은 한마디로 한심하다. 예일대학교를 전액 장학금으로 입학했지만 적응하지 못한 채 중퇴하고, 막노동을 하며 툭하면 폭력을 휘둘러 경찰에 연행된다. 그런 그가 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 린( 에이미 아담스) 덕분이다. 큰 야망을 가진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한계 때문에 딕 체니에게 모든 것을 걸었고, 린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딕 체니는 린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의회 인턴이 되는 등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한다. [바이스]에선 딕 체니의 시작이 린을 만나면서부터라고 설명한다.

이후 딕 체니는 도널드 럼즈펠드(스티브 카렐)의 측근이 되었고, 닉슨 정권에서 헨리 키신저에게 밀려나 정계를 잠시 떠났을 때 운 좋게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는 덕분에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 안된 공화 당원으로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한다. 물론 딕 체니가 처음부터 권력에 미친 괴물은 아니었다. 자신의 둘째 딸인 메리(알리슨 필)가 동성애자임을 알고는 딸을 위해 대통령 경선을 포기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도 선보인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해피엔딩을 선언하며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다. 물론 그렇다고 극장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진짜 시작은 그 이후부터이기 때문이다.

부시와 체니의 잘못된 만남

[바이스]의 중반쯤 딕 체니와 린은 파티장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조지 W. 부시(샘 록웰)의 모습을 본다. 딕 체니와 린은 그런 부시에게 '가문의 수치'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사실 조지 W. 부시에 대한 이야기는 CBS 뉴스 프로그램 '60분' 팀이 현직 대통령이자 재임을 노리는 조지 W. 부시의 군 복무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의 영화 [트루스]에서 다뤄진 바 있다. [트루스]는 권력자가 어떻게 진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지 보여주는 영화로, 조지 W. 부시는 자신의 군 복무 비리 의혹의 핵심 증거인 문서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며 제보자의 약점을 파고들어 결국 '60분' 팀을 굴복시키고 재선에 성공한다.

결국 아담 맥케이 눈에 비친 조지 W. 부시는 전쟁 영웅 출신인 아버지 조지 H. W. 부시와는 달리 군 복무는 가짜로 꾸며냈고, (보수 후보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젊은 시절 알코올 중독과 음주운전, 마약 복용 등의 문제를 일으킨 망나니이며,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대통령에 출마한 철없는 애송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야망에 불타는 딕 체니를 러닝메이트로 손을 내밀었으니 그 결과는 뻔하다. 무능한 대통령과 야망에 불타는 부통령, 결국 이 잘못된 만남은 딕 체니로 하여금 무소불위의 권력을 마구 휘두르게끔 만든다. 마치 지난 박근혜 정권의 비선 실세 최순실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딕 체니는 골치 아픈 정책에 별 관심이 없는 부시에게 예산, 조세, 국방, 대외 정책에 대한 재량권을 얻어내고, 부통령이 되고 나서는 부자 감세 정책을 펴는 등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친다. 그런 그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9.11 테러이다.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테러 단체에 의해 발생한 9.11 테러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고, 딕 체니는 이를 이용하여 이라크전을 벌이는 등 세계 최강국 미국의 힘을 마구 휘둘러댄다.

그가 권력을 마구 휘두른 결과

딕 체니가 이렇게 권력을 마구 휘둘러댈 수 있었던 것은 '단일 행정부론'이라는 황당한 헌법 해석이다. '단일 행정부론'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무한대로 강화시켰고, 부통령은 입법부나 행정부에 속하지 않는 제4부라는 논리로 자기 자신은 모든 견제를 피해 간다. 3권 분립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나라 미국에서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바이스]는 딕 체니가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장면을 마치 코미디 영화처럼 유쾌하게 풀어낸다. 하지만 유쾌한 웃음을 짓고 있는 딕 체니와 그의 측근들의 모습은 섬뜩하게만 느껴진다. 딕 체니와 그의 측근들이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하듯이 온갖 위법적인 결정들을 선택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가 자기 마음대로 휘두른 권력 탓에 9.11테러와는 별 상관이 없던 이라크는 쑥대밭이 되어 무고한 이라크 국민들이 죽음을 당했고, 유가는 치솟고, 세계 경제는 곤두박질쳤으며, 전 세계는 테러의 공포에 시달리게 되었다. 머나먼 나라 미국의 미친 권력자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바이스]의 내용이 우리나라에겐 너무나도 치명적인 이유이다.

영화의 화자인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커트의 심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딕 체니에게 이식되는 장면에서는 절망감마저 느껴졌다.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좀 더 젊고 앞날이 창창한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이제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은 늙은 딕 체니에게 심장이 이식되다니 돈과 권력이 이래서 좋은가 보다. 유쾌한 어조로 시종일관 진행되는 [바이스]를 '깔깔'거리며 재미있게 보다가 문득 씁쓸함이 느껴진다. 그것이 [바이스]의 진가이다.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바이스]가 끝나고 어느 뮤지컬 영화에서 들어봤던 미국을 찬양하는 흥겨운 노래가 나온다. (이 노래가 어느 뮤지컬 영화에 나왔는지 생각해보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혹시 알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제발 댓글로 알려주길...) 순간 기분이 조금 멍해졌다. 노래의 가사와 영화의 내용이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서둘러 극장 밖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최근에 내가 했던 일 중에서 가장 바보 같은 짓이었다. 왜냐하면 [바이스]의 쿠키영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이스]의 쿠키영상은 어느 보수 성향의 미국인 남성이 [바이스]가 진보의 편견이라며 비난을 하자 진보 성향의 미국인 남성이 당신이 뽑은 오렌지색 머리의 대통령이 미국을 망치고 있다고 반격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육탄전을 벌인다. 이 장면을 극장에서 못 보다니... 이건 정말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잊지 말자. 쿠키영상은 슈퍼 히어로 영화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러하듯이 정치에 무관심했던 청년이었다. 하지만 대학 졸업반 때 IMF를 겪으면서 정치가 나와 같은 소시민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뒤늦게 깨달았고, 그 이후부터는 어느 정치인이 거짓말을 일삼고, 어느 정치인이 나에게 꼭 필요한 정책을 펼치는지 정신 바짝 차리고 지켜봤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거짓으로 치장한 그들은 우리를 속인다. 마치 부자 감세를 위해 상속세를 사망세라는 이름을 붙여 국민들을 속였던 닉 체니처럼, 그들의 새빨간 거짓말은 언론을 이용하여 나날이 지능화되고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가 좀 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똑똑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이스]는 관객들에게 제2의 딕 체니가 나오지 않게끔 정치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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