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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왕] - 피는 마약보다 강하지 않더라.
12  쭈니 2018.12.28 17: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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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우민호

주연 : 송강호, 조정석, 배두나

강추위를 뚫고 극장으로 달려간 보람이 없었다.

연말을 맞이하여 기대작들이 대거 개봉하는 바람에 나의 영화 관람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영화를 볼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보고 싶은 영화는 많고... 이럴 때면 또다시 나의 고질병이 도진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불안감에 휩싸이는 것. 특히 기대작의 흥행이 미지근해서 조만간 극장 간판이 내려질 위기에 처해있다면 불안감에 조급증까지 더해진다. 지금 현재로서는 [마약왕]과 [스윙키즈]가 그러한 상황이다. 일단 나는 목요일 저녁, 시간을 억지로라도 내서 두 영화 중 한 편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심사숙고 끝에 [스윙키즈]보다는 [마약왕]을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날의 내 선택은 실패였다.

나는 [마약왕]을 보는 내내 실망감에 휩싸였다. 2015년 연말, 극장가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의 신작이며, [괴물], [의형제],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사도], [밀정], [택시운전사] 등 흥행이면 흥행, 연기면 연기 모두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송강호 주연의 영화인 만큼 기본 이상은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약왕]은 그러한 내 기대감을 짓밟아 버렸다.

물론 송강호의 연기력은 이견의 여지없이 최고이다. 특히 영화 후반부 마약에 중독되어 폭주하는 장면은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송강호의 광기 어린 연기는 [마약왕]의 완성도와는 별도로 분명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마약도 수출하면 애국이 되던 1970년대에 대한 풍자도 인상 깊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오히려 나쁜놈들 전성시대였던 1980년대를 풍자한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가 떠올랐다. 하지만 연기와 설정이 좋다고 해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약왕]이 바로 그러하다. 

 

 

이두삼은 처음부터 부자였나 보다.

[마약왕]은 이두삼(송강호)를 중심으로 그의 흥망성쇠를 다룬 영화이다. 이두삼은 부산 지역에서 금은방을 하며 밀수에 뛰어든 하급 밀수꾼에 불과하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이 밀수 소탕 작전을 지시하자 꼬리 자르기의 희생양에 되어 중앙정보부에 체포, 갖은 고문 끝에 교도소에 수감된다. 교도소에서 간통 혐의로 잡혀 들어온 밀수꾼 최진필(이희준)을 알게 되고, 새로운 마약 밀수 계획을 세운다. 그 후 이두삼은 마약 밀수로 승승장구하며 '마약왕'의 자리까지 오른다.

자!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평범한 하급 밀수꾼에 불과한 이두삼이 '마약왕'의 자리를 차지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리얼한가?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러한 과정이 영 매끄럽지 못하다. 하나하나 짚어보면... 이두삼은 교도소에 수감되자 교도소 보안계장에게 뇌물을 먹여 출옥한다. 그리고 최진필에게 돈을 주며 동업을 제안하고, 마약 제조 기술자인 백교수(김홍파)를 거액의 돈으로 영입한다. 마약 제조 공장은 돼지 농장으로 은폐시키고, 마약 제조를 위한 원료도 대량으로 들여온다. 그런데 도대체 이두삼은 마약 밀수 사업을 위한 그 많은 돈을 어디에서 구했을까?

애초에 이두삼은 하급 밀수꾼에 불과했고, 이두삼의 부인인 성숙경(김소진)은 교회 목사 딸로,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교도소 보안계장 뇌물에 쏟아부었다. 그렇다면 이두삼은 더 이상 돈이 없어야 맞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뒤에 물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처음부터 이두삼이 가진 돈이 많은 부자였다는 설정만이 이 미스터리를 해결할 수가 있다. 

 

 

이두삼은 마약왕이 되기까지 너무 탄탄대로이다.

뭐 좋다. 이두삼이 밀수꾼으로 일하며 그동안 숨겨놓은 돈이 많았다고 치자. 진짜 문제는 그 이후이다. 최진필과 동업을 하여 마약 밀수를 시작했지만 그가 곧바로 '마약왕'의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이두삼이 최진필의 밑에서 일하는 부하 정도로만 여겼다. 이에 이두삼은 사업 확장을 위해 부산 지역 조직폭력배 두목인 조성강(조우진)을 찾아가고, 조성강의 소개로 일본 마약 업계와 직접 줄을 댄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어이없는 행운이 찾아든다. 하필 그 시간에 반대파의 습격이 있었고, 이두삼이 우연히 반대파의 계획을 들은 후 온몸으로 반대파의 습격을 막아낸 덕분에 손쉽게 일본 마약 업계와 손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우연과 행운은 시작에 불과하다. 김인구(조정석) 검사의 수사가 시작되자 이두삼은 서울로 피신하는데, 그곳에서 또 우연히 김정아(배두나)를 만나게 되고, 김정아 덕분에 승승장구한다. 그런데 왜 김정아는 이두삼의 든든한 빽이 되어준 것일까? 이두삼이 김정아에게 접근하여 '식사나 한번같이 하자'라고 제안했을 때 김정아가 코웃음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중앙정보부 3인자 함실장(최귀화)의 애인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고위급 인사와 전방위적 친분을 자랑하는 김정아에게 이두삼은 그저 피라미에 불과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김정아는 이두삼의 스포츠카 따위에 홀딱 반해 '연애나 한번 하자'라는 뻔뻔스러운 제안을 덥석 물어버린다. 이두삼의 첩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뭐지? 너무 탄탄대로이다. 뭔가 이상하다. 하급 밀수꾼에서 마약왕이 되기까지 사람들은 스스로 이두삼의 빽이 되어주길 자청하고, 그 덕분에 이두삼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마약왕'의 자리에 오른다. 뭐가 이렇게 쉬워? 이두삼에게 어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라도 있는 것일까?  

 

  

성공만큼 몰락도 순식간이다.

김정아 덕분에 '마약왕'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이두삼의 몰락은 그가 마약을 하면서부터이다. [마약왕]은 이두삼을 고문했던 중앙정보부 백운창(김해곤)의 등장과 함께 이두삼 몰락의 서막을 시작한다. 이두삼은 조총련 출신 김순평(윤제문)과 함께 백운창을 죽이고, 살인에 대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댄다. 그렇게 마약에 중독된 이두삼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는다.

여기에서 한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다. 그는 왜 자신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사촌동생 이두환(김대명)을 내버려 둔 것일까? 마약에 중독된 이두환이 사고를 칠 때마다 부산으로 달려갈 정도로 애정이 있다면 이 사고뭉치를 자신의 곁에 두고 감시하는 것이 맞다. 이두환이 귀찮다면 그를 처리함으로써 후환을 없애거나, 그가 사고를 치건 말건 모르는 척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는 이두환을 부산에 버려두었으면서도 그가 사고를 칠 때마다 부산으로 달려가 걱정한다. 이 말도 안 되는 행동은 결국 이두삼이 김인구에게 덜미가 잡히는 원인이 된다.

그가 김정아를 내치는 장면도 이상하다. 김인구의 손아귀에서 이두삼을 빼내준 김정아에게 이두삼은 막말을 하고 쫓아 버린다. 도대체 왜? 이제 이두삼은 김정아 없이도 충분히 '마약왕'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 테지만, 그래도 김정아는 아직 이용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두삼은 이용 가치가 충분한 김정아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결별을 선택한다. 이 모든 이두삼의 어이없는 행동들을 그가 마약에 중독되어 판단 능력이 흐릿해졌기 때문이라고 치부해도 되는 것을까? 

 

 

박정희 암살과 이두삼의 몰락

이두삼이 하급 밀수꾼에서 '마약왕'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도 억지스러웠지만, 유신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이두삼의 몰락 과정은 더욱 억지스럽다. 결국 [마약왕]은 박정희의 암살을 이두삼의 몰락에 대입시키는데, 그러한 시도는 속이 너무 뻔히 보여서 오히려 짜증이 날 지경이다. 사실 박정희 암살 사건 이후에도 이두삼은 충분히 재기할 수 있었다. 박정희 암살 이후의 정권은 유신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줄을 대고, 빽을 찾아 뒷돈을 먹이면 될 터인데, 이두삼은 그냥 몰락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창고에 돈과 마약을 쌓아 놓은 채 스스로 광기에 휩싸이면서...

물론 후반부 송강호의 열연은 정말 대단했다. 송강호 덕분에 [마약왕]을 끝까지 집중하며 볼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이 영화는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다. 이두삼의 성공도 설렁설렁, 몰락도 어영부영 담아낼 뿐이다. [마약왕]의 감독과 [내부자들]의 감독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내부자들]에서 권력의 이면을 담은 우민호 감독의 뜨거운 피가 [마약왕]의 마약이 스며들며 형편없이 망가진 모양새다.

2시간 20분이다. [마약왕]의 러닝타임은... 나는 [마약왕]을 보며 두 번 시계를 쳐다봤다. 최근에는 영화 중간에 시계를 보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마약왕]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퇴근 후 곧장 극장으로 달려갔기에 배가 고프기도 했고, 이두삼이라는 캐릭터가 짜증이 나서 잠시 내 이목을 스크린이 아닌 다른 곳에 둬야 하기도 했다. 아마도 [마약왕]은 2018년 내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재미없었던 영화는 아닐지라도, 내 기대를 가장 크게 배신한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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