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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데이빗 레이치

주연 : 브래드 피트, 조이 킹, 애런 테일러 존슨,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앤드류 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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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나의 반골 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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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들에게 장선우 감독의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보여 줬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2002년 9월에 개봉했던 이 영화는 꽤 많은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엄청난 혹평 속에 흥행에 실패했고, 지금까지 한국 영화 최악의 졸작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내가 굳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아들에게 보여준 이유는 아들이 영화를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의미였다. 아들은 친구들과 한국 영화 최악의 졸작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클레멘타인]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은 이 두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직접 [성냥팔이 소녀]를 보여 준 것이다. 최소한 영화를 봐야 그 영화를 혹평할 자격도 생기는 것이니까. (하지만 [클레멘타인]은 도저히 못 보여주겠다. 나도 함께 봐야 하지만 [클레멘타인]을 또 볼 자신이 없다.) 영화를 본 아들의 평가는... 반전은 없었다.

나는 영화에 관해서는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해야 직성이 풀린다. 영화의 취향은 제각각이기에 100명 중 99명이 재미없다고 해도 내가 그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1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릿 트레인]을 볼 때도 그랬다. 내겐 [불릿 트레인]과 [육사오 (6/45)]라는 두 개의 선택지가 놓여 있었다. [불릿 트레인]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이고, 브래드 피트, 애런 테일러 존슨이 내한까지 했지만 우리나라 관객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 흥행 참패를 겪고 있다. 이 영화를 본 대다수의 관객들은 '괴작이다', '너무 왜색적이다', '재미없다'라는 평가했다. 그와는 반대로 [육사오 (6/45)]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2위를 하는 등 깜짝 흥행을 거두고 있고, 관객들 반응도 '웃긴다', '재미있다'가 대다수이다. 과연 두 영화 중 어떤 영화를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약간의 고민이 있긴 했지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불릿 트레인]을 선택했다. 애초에 [불릿 트레인]은 극장에서 보겠다고 찜해 놓은 상황이기도 하지만, '정말 그렇게 재미없어?'라는 궁금증이 나를 오히려 더 끌어당겼다. [불릿 트레인]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기괴하고, 어떤 부분이 그렇게 왜색적이며, 어떤 부분이 그렇게 재미없는지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평일 오후 텅 빈 극장에서 나를 포함한 세 명이 [불릿 트레인]을 관람했다. 그래서 영화는 어땠냐고? 나는 재미있었다. (이후 다수의 스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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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버그(무당벌레)의 재수 없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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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릿 트레인]의 주인공은 레이디버그(브래드 피트)라는 암호명을 가지고 있는 킬러이다. 그는 정신상담을 받으며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중이다. 그런 그에게 의뢰가 들어온다. 기차에서 가방 하나만 회수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임무이다. 임무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손잡이에 기차 스티커가 붙어 있는 가방을 손쉽게 회수한 레이디버그. 이제 기차에서 내려 의뢰인에게 가방만 전달하면 임무 완료이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결국 레이디버그는 기차에서 내리지 못한 채 사건에 휘말린다. 영화 초반 TV에서 방영되던 '무당벌레의 재수 없는 하루'는 레이디버그가 기차에서 겪게 될 사건을 예고한 것이다.

사실 기차에는 여러 명의 킬러들이 타고 있다.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 보스인 백의 사신(마이클 섀넌)의 아들을 구하고 몸값이 든 가방과 함께 백의 사신에게 돌려보내야 하는 2인조 킬러, 탠저린(애런 테일러 존슨)과 레몬(브라이언 타이리 헨리)은 누군가에 의해 기차에서 백의 사신의 아들이 암살 당하고, 돈 가방까지 잃어 버리면서 위기에 빠진다. 남미 마피아 조직의 중간 보스인 울프(배드 버니)는 결혼식 날 독살당한 약혼녀의 복수를 위해 기차에 오르고, 백의 사신의 부하인 기무라(앤드류 코지)는 어린 아들을 옥상에 밀어 의식불명 상태로 만든 범인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프린스(조이 킹)는 기무라를 이용해서 백의 사신을 암살하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차에서 백의 사신의 아들을 암살하는데 성공한 킬러 호넷(재지 비츠)까지. 세계 최고의 킬러임을 자부하는 그들은 기차에서 한판 대결을 펼친다.

굉장히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의외로 영화는 복잡하지 않고 깔끔하다. 그들은 각자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차에 모인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의 한 가운데에는 백의 사신의 아들 몸값이 담겨 있는 돈 가방이 있다. 레이디버그는 돈 가방 회수가 임무였고, 탠저린과 레몬은 돈 가방 사수가 목적이다. 그리고 프린스는 돈 가방에 폭탄을 설치해서 백의 사신을 죽이려 하고, 백의 사신의 아들을 암살한 호넷은 그 대가로 돈 가방을 가져가려 한다. 물론 돈 가방이 목적이 아닌, 가족의 복수를 위해 기차에 오른 기무라와 울프도 있긴 하지만 그들 역시 돈 가방에 얽혀있기는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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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억지스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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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영화의 구성이 그다지 치밀하지는 않다. 아내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아내의 죽음에 얽혀 있는 킬러들을 기차에 모아 놓은 백의 사신의 계획은 여기저기 허점이 보인다. 당장 백의 사신이 원했던 킬러 커버(라이언 레이놀즈)가 아닌, 레이디버그가 대타로 임무를 맡게 되면서 기차에 오르며 처음부터 백의 사신의 계획은 어긋나 버린다. (커버는 백의 사신의 아내를 죽인 킬러이기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만 눈치 빠른 커버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임무를 맡지 않았다.) 만약 커버가 임무를 맡았다고 하더라도 그가 끝까지 기차에 남아 있을 확률도 적다. 레이디버그는 돈 가방을 회수하고 기차에서 내리려다가 울프와 마주치게 되면서 내리지 못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기차에는 출입구가 굉장히 많다. 두 킬러가 기차 출입구에서 마주칠 확률은 그렇기에 희박하다. 단지 울프와 마주친 레이디버그가 운이 좋지 않았다고 할 수밖에...

기차에 탄 킬러들이 백의 사신과 그의 킬러 부대가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정차역까지 간다는 보장도 없다. 누군가 돈 가방을 차지해서 이전 정류장에 내려 버린다면 백의 사신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게다가 변수도 있다. 실제로 백의 사신의 딸인 프린스가 기차에 탄 것은 백의 사신의 계획에는 없었다. 프린스는 기무라를 불러냈고, 기무라가 기차에 탄 까닭에 백의 사신에게 원한이 있는 기무라의 아버지도 기차에 탔다. 이는 복수를 두려워하며 스스로 철옹성 안에 은둔하던 백의 사신이 스스로 자신의 무덤으로 걸어 들어온 꼴이 되었다. 이렇게 허술한 자가 어떻게 일본 최고의 야쿠자 조직 보스가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레이디버그에 의해 기차 밖으로 떠밀려 나간 탠저린이 기차에 매달려 유리를 깨고 들어오는 장면에서는 아무리 영화라고 할지라도 기본적인 물리 법칙을 한참이나 어긋나서 당혹스러웠다. 나처럼 과학을 잘 모르는 문과형 인간도 관성의 법칙은 안다. 시속 300km로 달리는 고속 기차의 뒤에 매달린다면 과연 영화처럼 유리를 깨고 (그것도 맨 주먹으로) 기차 안으로 들어올 수가 있을까?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기차가 철로에서 벗어나 마을을 덮치는 장면 등, [불릿 트레인]은 너무 과장되고 억지스러운 장면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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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는 맛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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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영화의 내용이 치밀하고, 전개에 당위성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영화적 재미까지 갖춘다면 그 영화는 걸작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확실한 것은 [불릿 트레인]이 걸작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적당히 보고 즐기는 팝콘 무비에 알맞다. 그렇기에 백의 사신의 계획이 허점 투성이이고, 억지스럽다고 해도 영화적 재미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보는 맛을 살릴 수는 있다. 내게 있어서 [불릿 트레인]이 딱 그랬다.

일단 각지각색의 개성을 가진 킬러들의 캐릭터가 흥미롭다. 킬러 주제에 내면의 평화를 추구하는 레이디버그부터 시작해서 '토마스와 친구들'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는 레몬, 귀여운 외모로 상대방을 방심하게 만드는 프린스와 치명적인 나무 독사의 독을 무기로 쓰고 있으며, 마스코트 인형을 쓰고 위장한 호넷까지. 그들은 마치 독특한 킬러 경연 대회에 참가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개성을 뽐낸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오마주한 듯한 말의 향연, 그리고 가이 리치 감독의 초창기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의 얽히고설킨 관계까지. [불릿 트레인]은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나의 정신을 쏙 빼놓으며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스턴트맨 출신인 데이빗 레이치 감독의 인맥도 영화의 재미에 한몫한다. 많이 알려졌다시피 브래드 피트의 캐스팅은 데이빗 레이치 감독과의 인연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확실히 브래드 피트의 능글맞은 연기는 이 영화 재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게다가 데이빗 레이치 감독의 [데드폴 2]의 인연으로 우정 출연을 한 것으로 보이는 라이언 레이놀즈의 깜짝 등장과 브래드 피트와의 인연으로 우정 출연한 산드라 블록의 목소리와 영화 후반 카메오 연기 등. [불릿 트레인]은 확실히 보는 맛이 있는 영화였다. 그렇기에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킬러들의 코믹한 만찬을 맘껏 즐길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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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 무비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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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영화를 혹평하는 이들의 의견도 타당하다. 확실히 영화는 기괴하다. 애초에 일본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마리아 비틀>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 영화의 배경도 일본이지만 주요 캐릭터들 모두 백인, 흑인으로 교체되어 동서양의 이종교배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게다가 영화 자체가 B급 코미디 액션 영화를 표방하다 보니 일부러 유치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기까지 한다. 이 영화에 왜색이 짙은 어쩌면 당연하다. 애초에 일본 소설이 원작이고, 일본이 무대이며, 일본 자본으로 설립된 소니 픽처스가 제작한 영화가 아니던가. 그냥 서양 배우들을 캐스팅한 일본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영화에 왜색이 짙은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분명 단점이 많이 보이는 영화이긴 했다. 그런데 데이빗 레이치 감독의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영화이기도 했다. [불릿 트레인]은 데이빗 레이치를 스타 감독의 반열로 올려놓은 [존 웍]의 킬러 세계관과 [데드폴 2]의 B급 병맛 정서를 반쯤 섞어 놓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나는 팝콘 무비의 미덕이 영화를 보는 동안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영화를 보고 나서는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불릿 트레인]이 내게 딱 그러했다.

그나저나 프린스를 연기한 배우가 왠지 낯이 익었다. 귀여운 외모에 잔인한 사이코패스이며 아버지인 백의 사신에 대한 애정 결핍으로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프린스를 얄미울 정도 잘 소화해낸 배우는 조이 킹이다. 그녀가 누구더라? 한참을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넷플릭스의 인기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 시리즈 [키싱 부스]의 그녀였다. 우와! 우리 엘이 아주 잘 컸구나.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 이래저래 [불릿 트레인]은 '얼마나 엉망이길래.'라는 심정으로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가, '이거 재미있는대.'라며 웃으며 극장 밖을 나올 수 있는 영화였다. 역시 나는 다른 사람들과 영화 취향이 많이 다르긴 다른가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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