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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한재림

주연 :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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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개봉하는구나.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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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하도 떨어져서 주식창을 열지 않고 5년간 묵혀 두기로 결심했지만, 한때 코스피 지수 3,000을 넘으며 주식 초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주식투자에 뛰어들었던 2년 전, 나 역시도 난생처음으로 주식 투자라는 것을 해보았다. 그때 내가 매수했던 것이 초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매수한다는 삼성전자와 영화가 좋아서 CJ CGV, 그리고 남는 푼돈으로 쇼박스를 매수했었다. 처음엔 삼성전자와 CJ CGV를 매수하고 남는 돈으로 쇼박스 주식을 한, 두 개씩 매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쇼박스 주식을 차근차근 모으고 있었다.

그때 내가 하염없이 기다렸던 영화가 바로 [비상선언]이다.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등등 초호화 캐스팅에 빛나는 [비상선언]이 개봉하면 쇼박스 주가가 하늘 높이 치솟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3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자된 [비상선언]은 코로나19 방역조치로 극장에 관객이 눈에 띄게 줄어들자 개봉일을 하염없이 늦췄다. [비상선언]만 개봉하면 쇼박스 주식은 대박이 날 것이라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나는 결국 작년 10월 쇼박스 주식을 모두 매도하고 말았다. 3천 원대에 매수해서 6천 원대에 매도했으니 쇼박스는 내게 꽤 많은 수익을 안겨줬지만 나는 [비상선언]만 개봉하면 쇼박스 주가가 1만 원을 호가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매도 버튼을 누르면서 아쉬움이 남았다.

드디어 [비상선언]이 개봉했다. 참 오랫동안 기다렸던 영화이다. 그래서 [비상선언]이 개봉한 지금 쇼박스 주가는 어떨까? 새 정부 들어서 주가는 땅 깊은 곳으로 처박히고 있고, 쇼박스 역시 5천 원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비상선언]이 개봉한 이후 쇼박스 주가는 더욱 떨어지고 있었으니, 쇼박스 주가가 1만 원을 호가할 것이라는 주식 초보자의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비상선언] 개봉은 영화 외적으로 반가웠고, 이렇게 감회가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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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너무 닮은 바이러스 재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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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일 아내, 아들과 함께 [비상선언]을 보고 왔다. 일단 [비상선언]을 보고 나니 이 영화가 왜 개봉일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워낙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이니 극장가가 예전처럼 호황일 때 개봉하려고 미루는 줄 알았다.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더 큰 이유는 영화의 내용에 있다. [비상선언]은 하와이행 비행기에서 바이러스 테러가 벌어진다는 내용을 담은 재난 영화이다. 사실 바이러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재난, 공포 영화의 단골 소재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시국에 바이러스는 더 이상 흥미로운 영화의 소재가 아니다. 현실 공포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비상선언]이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던 1, 2년 전 개봉했다면 영화의 내용 때문에 논란이 있었을 것이다. 쇼박스는 그러한 논란을 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시간을 되돌려 보자. 중국에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졌던 2020년 초, 대한민국 정부는 중국 동포를 안전한 국내로 소환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한 정부의 계획은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중국처럼 코로나19가 확산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코로나19 확진 의심자 격리 장소에서는 반대 시위도 벌어졌었다. 그러한 풍경은 [비상선언]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미국, 일본에서 착륙을 허가받지 못한 KI501 항공기는 결국 서울 공항으로 기수를 돌리지만, KI501의 착륙을 반대하는 국내 여론과 시위에 가로막힌다. 영화를 보며 같은 국민끼리 저럴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불과 2년 전 우리는 그랬었다.

또 다른 장면도 있다. 초호화 크루즈에 코로나19 감염자가 속출했지만 일본 당국이 크루즈의 승객을 내리지 못하게 막아서 크루즈에서 상당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사건도 있다. [비상선언]에서 최현수(김남길) 부기장은 자신이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본 나리타 공항에 착륙하려 하지만 일본은 자위대까지 출동시켜 KI501의 착륙을 막는다. 위협사격을 하고, 자위대 전투기 조종사는 KI501에 정조준하며 미사일 발사 여부를 상부에 묻기도 한다. 영화적 상황이라고? 아니, 크루즈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지켜만 보던 당시 일본 정부의 방침을 보면 실제 상황이라도 그들은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미사일을 발사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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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자신의 목숨까지 내걸고 바이러스 테러를 저질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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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비상선언]이 1, 2년 전 개봉했다면 해당 내용들은 충분히 논란이 되었을 것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코로나19 시국에 적응해 나갔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당시의 행동들을 까맣게 잊어버렸기에 별다른 논란 없이 개봉 첫날 흥행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뿐이다. [비상선언]을 완성해 놓고 벌어진 코로나19 시국의 풍경에 영화 관계자들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눈에 훤히 보이는 듯하다. 그래, 이제 지긋지긋한 코로나19 이야기는 그만하자. 영화는 영화일 뿐이니까. 영화의 내용과 코로나19 시국의 기시감을 걷어내고 본다면 [비상선언]은 영락없는 가족 드라마이다.

먼저 자신과는 일면식도 없는 150여 명이 탑승한 KI501 항공편에 바이러스 자살 테러를 감행한 류진석(임시완)을 살펴보자. 사실 그는 최종 빌런은 아니다. 분명 모든 재난의 시발점이 되긴 했지만 영화 중반에 자신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는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자신의 죽음까지 불사하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테러를 자행한 것일까? 영화에서 직접적을 나오지는 않지만 그의 과거 행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모든 문제의 근원이 그의 어머니에게 있었음이 밝혀진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미생물학자였던 어머니 밑에서 혹독하게 공부에만 매달렸던 그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미생물학자가 되지만, 그에 대한 스트레스를 동물 학대로 푸는 등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발휘한다. 결국 회사 동료들에게 일부러 바이러스를 유출했다는 의심을 받고 회사에서 해고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마저 죽자 인생의 목표를 잃은 그는 이 말도 안 되는 테러를 감행한다.

기대했던 것보다 임시완의 출연 분량은 적다. 하지만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임시완은 임팩트를 남기고 퇴장한다. 영화 초반 공항 승무원에게 '걸레년'이라고 욕하는 장면, 박재혁(이병헌)과 그의 딸 수민을 쫓아다니며 시비를 거는 장면, 특히 '나는 이 비행기에 탄 모든 사람들이 죽었으면 좋겠어'라며 발악하는 장면에서 그는 선한 얼굴에 가려진 악마적인 본성을 잘 표현해냈다. 그리고 영화는 그의 죽음과 더불어 본격적인 공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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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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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석과 정반대되는 캐릭터는 바로 경찰서 강력계 팀장 구인호(송강호)이다. 남들은 모두 장난이라며 치부했던 류진석의 테러 예고가 심상치 않음을 포착하고 현장 조사를 나가 류진석의 집에서 바이러스로 사망한 시체를 발견한다. 그는 형사로서의 뛰어난 직감과 끈질김으로 류진석을 추적하고, 사건의 진실도 밝혀 낸다. 하지만 그를 그토록 절박하게 움직인 것은 바로 가족의 힘이다. 하 필 KI501 항공기에 친구들과 하와이 여행에 나선 그의 아내가 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끈질기게 류진석의 과거를 쫓아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혀낼 수가 있었던 것은 형사로서의 의무보다는 아내를 구해야 한다는 가장의 책임 때문이다.

솔직히 억지스러운 면도 없지 않아 있다. 특히 영화 후반부, 스스로 항바이러스 실험에 나서는 장면에서는 '저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 가족을 향한 사랑이다. 위기에 빠진 가족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구인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단 한 줌의 후회도 남지 않게끔. 그렇기에 나는 구인호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그 누구도 아닌 가족을 위해서라면 내 생명조차도 아깝지 않은 법이니까.

가족을 향한 사랑은 KI501 항공기 안의 승객들도 마찬가지로 발휘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고 싶다.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아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몸에 바이러스를 투여한 구인호처럼, 항공기 안의 승객들도 가족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선택을 한다. 항공기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 그 장면이 억지 감동이라고 느끼는 관객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 본다면 그들의 선택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만약 항바이러스 효과가 없다면 그들의 죽음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런데 공항에 내려 다른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죽는다면 그 죄책감은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울 것이다. '내 가족이 아픈 것보다 내가 아픈 게 나아.'라는 구인호 아내의 한마디처럼, 그들은 모두 KI501 항공기 밖에 살고 있는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해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가족의 힘은 이렇게 이성적으로 가늠할 수가 없다. [비상선언]은 그러한 감정선을 잘 포착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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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배척이 그들에게 더 큰 상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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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상선언]이 뻔한 항공기 테러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다. 외국 영화에서 보면 테러범들은 무장하여 승객들을 위협하고, 비행기 안에서 승객들은 테러범들의 인질이 되어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선다. 하지만 [비상선언]은 그렇게 뻔한 영화가 아니었다. 테러범인 류진석은 항공기 안에 바이러스만 퍼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문제는 류진석이 퍼트린 바이러스 또한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 류진석이 화장실에 뿌려 놓은 바이러스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승객과 승무원은 빠르게 죽음을 맞이하지만, 이미 1차 감염자에 의해 감염된 2차 감염자의 경우는 진행 속도가 현저하게 늦다. 항공기 안의 모든 승객과 승무원이 감염되지만 이후 바이러스로 인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테러범도, 바이러스도 아니라면 도대체 [비상선언]은 뭘로 관객의 공포심을 자극하려 한 것일까? 정답은 바로 사회의 배척이다. KI501 승객과 승무원들은 모두 테러의 피해자이다. 하지만 그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취급을 받는다. 미국과 일본의 거부에 더불어 자국의 국민들마저 그들을 거부하고 배척한다. 인간의 사회적 동물이다. 그렇기에 사회로부터 배척당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아토피 때문에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박재혁의 딸 수민은 그러한 공포심을 잘 보여준다. 그 어린 소녀는 사회에 배척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려 한다. 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며 사회의 배척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코로나19를 떠올리게 한다. 초창기 사람들은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들을 죄인 취급하며 배척했다. 나 또한 초창기 때 코로나19에 감염되어 회사에서 쫓겨날까 봐 두려워했었다. 그들 또한 코로나19에 감염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 텐데, 그들은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다. 영화는 구인호의 희생과 박재혁의 성공적인 착륙으로 해피엔딩이었지만, 만약 현실이었다면 KI501 항공기는 결국 착륙하지 못한 채 바닷속 깊숙이 가라앉지 않았을까? 사회에 배척당하고, 가족, 친구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보다 바닷속 깊숙이 가라앉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살아남은 KI501 승객들과 승무원들이 모여 파티를 하는 장면은 마치 천국에서의 장면 같았다.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가 없는... 언제나 그렇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더 냉혹하다. 그래서 우리는 비싼 관람료는 내고 영화를 본다. 영화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희망을 보기 위해. 영화를 보고 나니 그제서야 섬뜩함이 밀려 올라왔다. 코로나19 시국에 잘 버틴 나의 가족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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