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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노라 핑스체이트

주연 : 산드라 블록, 빈센트 도노프리오, 비올라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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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의 긴 수감 생활을 거쳐 가석방된 루스 슬레이터(산드라 블록)의 죄명은 경찰 살인죄이다. 부모 없이 어린 여동생을 부양하며 살았던 루스는 살던 집이 은행에 넘어가게 되자 격렬하게 저항을 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실수로 경찰을 죽이게 된 것. 가석방 후 그녀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경찰 살인범이라는 사회의 낙인에 자유롭지 못하다. 주변의 차가운 눈초리를 받으면서도 그녀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입양된 여동생 케이티를 찾겠다는 의지 때문. 하지만 케이티의 양부모는 이를 가로막는다. 그리고 루스에게 살해된 경찰의 아들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루스의 곁을 맴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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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서 산드라 블록은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었다. 물론 동시대에는 줄리아 로버츠, 멕 라이언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에 특화된 걸출한 두 여배우가 있었지만,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 보여준 산드라 블록의 상큼한 매력은 결코 줄리아 로버츠, 멕 라이언 못지않았다. 물론 많은 이들이 그녀를 [스피드], [미스 에이전트]의 액션 스타로 기억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액션 영화에서도 산드라 블록의 상큼한 매력은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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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나의 영화 생활을 뒤집어 놓았을 때 산드라 블록은 [버드 박스]라는 SF 공포 영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이름을 올렸다. [버드 박스]는 괴현상으로 인하여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볼 수 없게 된 미래에 두 아이를 지켜야 하는 한 여성의 극한 사투를 그린 영화이다. 꽤 호평을 받은 영화였지만 [버드 박스]에서의 산드라 블록의 캐릭터가 내 기억 속의 이미지와는 너무 달라서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아직까지 고민만 하다가 [버드 박스]를 보지 못한 이유이다. 그렇기에 산드라 블록의 두 번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언포기버블]이 2021년 12월 10일에 공개되었을 때에도 나는 머뭇거려야 했다. [버드 박스]만큼이나 [언포기버블]에서의 산드라 블록의 캐릭터는 내게 너무나도 낯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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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포기버블]을 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칠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삶에 지친 루스의 모습에서 이제는 나이가 들어 예전의 상큼한 매력을 잃어버린 산드라 블록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20년간의 수감 생활, 그리고 경찰 살인범이라는 무겁기만 한 사회의 낙인, 그녀에게 이 세상 모든 것이었던 여동생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가느다란 희망, 산드라 블록의 깊숙한 주름 위에는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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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잔잔하게 진행된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잔잔함은 후반부의 폭발을 위해 차곡차곡 에너지를 쌓아 올리는 과정이다. 그리고 드디어 20년 전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장면에서부터는 지금까지 쌓아 올렸던 에너지를 한꺼번에 폭발시킨다. 루스를 비난하는 리즈(비올라 데이비스)에게 그날의 진실을 이야기하며 울부짖는 루스의 모습에서 나는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경찰을 살해한 죄를 지은 루스가 과연 사회에서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영화의 메시지에 집중했는데, 후반부에 이런 반전이 숨어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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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 납치극이 벌어지는 장면에서는 그냥 슬펐다. 루스에게 아버지를 잃은 남자의 복수도, 그리고 그의 복수를 막아야 하는 루스의 애처로운 몸부림도 그냥 슬펐다. 그들은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다. 잔인한 운명에 서로 엮여 있는 피해자. 영화의 제목인 'Unforgivable'은 '용서할 수 없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993년 국내 개봉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주연의 서부극 [용서받지 못한 자]의 원제인 'Unforgiven'가 '용서받지 못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언포기버블]을 보며 자꾸만 [용서받지 못한 자]가 떠올랐다. 과거로 인하여 발목이 잡힌 그들은 용서를 받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용서이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용서를 받아내지 못하고 가혹한 대가만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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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의 이웃에 경찰 살인죄로 20년간 감옥에 수감되었던 여성이 새로 이사를 온다면 나는 과연 그녀를 이웃으로 선뜻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가 없을 것 같다. 물론 그녀가 루스와 같은 사연을 가지고 있더라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루스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마도 죽는 순간까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용서할 수 없는' 나쁜 X의 낙인을 안은 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정작 루스가 용서받고 싶은 대상은 단 하나이다. 곁에서 지켜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하나뿐인 동생 케이티. 케이티의 따뜻한 포옹이 있었기에 루스는 '용서할 수 없는' 나쁜 X의 낙인을 안았으면서도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굉장히 암울한 분위기의 영화였는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만큼은 가슴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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