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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연상호

주연 : 강동원, 이정현, 이레, 권해효, 김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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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로결석의 고통도 잊게 해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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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에 무려 6mm의 결석이 내 요로에 자리 잡고 있음이 갑작스러운 복통 때문에 간 병원에서 드러났다. 곧바로 체외충격파석쇄술이라는 것을 받았는데 결석이라는 놈이 얼마나 단단한지 뼈 때리는 고통을 참고 무려 2,500회의 충격을 결석에 가했지만 반으로 쪼개졌을 뿐이었다. 결국 지난 수요일 회사에 연차휴가를 내고 두 번째 체외충격파쇄석술을 받았다. 오전 9시에 병원에 갔다가 병원 진료가 끝난 시간은 오전 11시 50분경. 거의 3시간 동안의 진료와 시술로 나는 지칠 대로 지쳤다. 체외충격파쇄석술로 인하여 배는 아프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어지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날 나에겐 한 가지 일정이 더 남아 있었다. 바로 [반도] 관람이다.

병원에서 극장까지 걸어서 20분, 버스를 타면 세, 네 정거장이다. 솔직히 고민했다.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그러나 오늘이 아니면 언제 [반도]를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내 소중한 연차휴가를 병원 진료만으로 소모하기엔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병원 진료라는 힘든 일을 치렀으니 영화관람이라는 선물을 내게 선사하도 되지 않을까? 좀 억지스러웠지만 암튼 내 스스로에게 그런 변명을 하며 극장으로 향했다.

참 신기하다. 분명 배가 아팠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영화에 몰입이 되었다. 아마도 [반도]가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선사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내 몸의 반응일 것이다. 영화에 대한 긴장감이 나의 다른 감각을 마비시켜버린 것일지도... 실제 [반도]를 볼 땐 멀쩡했었는데 영화가 끝난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복통이 시작되었다. 확실히 [반도]는 요로결석의 고통도 잊게 해준 영화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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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그 후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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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는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한국을 벗어나기 위해 군인인 정석(강동원)이 누나 가족과 함께 피난선을 타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가는 도중 정석은 민정(이정현) 가족을 만난다. 제발 태워 달라고... 안되면 어린아이만이라도 태워 달라고... 애원하는 민정을 무시한 채 정석은 피난선에 탑승한다. 원래 일본으로 향할 예정이었던 피난선이 항로를 홍콩으로 바꾸는 사이 피난선에도 좀비가 창궐하고 결국 정석은 누나와 조카를 포기한다. 그리고 4년 후 홍콩에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정석에서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 들어온다. 2천만 달러를 운반하던 트럭이 한국의 오목교 근처에 방치되어 있으니 이 트럭을 홍콩으로 가져오면 50%인 1천만 달러를 주겠다는 것. 홍콩에서 살 길이 막막한 정석과 정석의 매형인 철민(김도윤)을 비롯한 네 명이 팀을 꾸려 지옥으로 변한 한국으로 다시 향한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좀비뿐만이 아니었다.

[부산행]이 개봉한 것이 2016년이니까 어느덧 4년이 흘렀다. 당시 [부산행]은 천만 관객을 불러 모을 만큼 흥행에 성공했는데 그 이면에는 한국 영화로는 낯선 소재인 좀비의 힘이 컸다. 느릿느릿 어기적거리며 걷는 서양의 좀비와는 달리 거의 야수급인 K 좀비는 충격적이면서도 새로웠고 좀비가 창궐한 부산행 KTX 열차 안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도 영화의 재미를 더해줬다. 하지만 [부산행]은 좀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만 보여줬을 뿐, 좀비가 어쩌다가 창궐했는지, 좀비를 물리칠 해결책은 무엇인지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부산행]의 프리퀄인 애니메이션 [서울역]을 기대했던 것이다. 문제는 [서울역] 역시 관객의 궁금증을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반도]에 대한 관객의 기대는 [부산행]과는 사뭇 다르다. [부산행] 이후 이미 K 좀비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최근 개봉한 [#살아있다]를 비롯하여 넷플릭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킹덤>까지... [부산행] 이후 K 좀비는 어느덧 주류 장르가 되었다. 결국 [반도]가 내세워야 할 것은 [부산행]에서 제시된 수수께끼들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것과 [부산행]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재미를 안겨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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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공간을 벗어나자 자유롭게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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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반도]가 [부산행]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영화적 재미로 제시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넓은 공간을 이용한 차량 추격씬이다. [부산행]의 경우는 KTX라는 좁은 공간에서 좀비가 창궐했기 때문에 액션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좀비를 한 손으로 때려눕히는 상화(마동석)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반도]의 공간은 더 이상 한정적이지 않다. 폐허의 땅이 된 한국, 그중에서도 수도 서울과 항구 도시 인천이 주요 무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좀비를 한 손으로 때려눕히는 상화와 같은 캐릭터는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들다. 아무리 슈퍼 히어로라고 하더라도 숫자로 밀어붙이는 좀비를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니...

결국 [반도]는 총격씬과 차량 추격씬을 꺼내 들었다. 주인공인 정석이 군인 출신이라는 설정은 괜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부산행]에서 주먹을 부르는 얄미운 인간이었던 용석(김의성)을 대신하는 것이 631부대라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맨주먹으로 좀비에 맞서 싸우던 상화는 총기로 무장한 정석으로, 자기 혼자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용석은 원래 민간인 구조 부대였지만 결국엔 미치광이가 된 631 부대로 대체된다. 이렇게 한국에선 드물게 총기 사용이 가능한 군인이 [반도]의 전면에 배치되면서 영화는 현란한 총격씬이 난무한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차량 추격씬이다. 영화 초반 준(이레)이 선보이는 신기에 가까운 드리프트 실력은 [부산행]과 비슷한 좀비 액션을 기대했던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좀비가 소리와 빛에 반응한다는 점을 이용한 어린 유진(이예원)의 RC카 원격 조종도 흥미로웠다. 영화 후반부엔 정석 일행과 631부대의 차량 추격씬이 펼쳐지는데, 폐허가 된 도로와 좀비를 뚫고 벌어지는 차량 추격씬은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재미였다. [부산행]과의 차별화에 연상호 감독이 꽤 신경을 쓴 것이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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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밥 회수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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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반도]는 [부산행]과는 차별화된 영화적 재미를 내게 제시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반도]가 [부산행]의 속 편이기에 당연히 [부산행]에서 제기된 수수께끼가 풀리길 나는 바랐다. 이미 [서울역]에서 실망을 맛보았기 때문에 [반도]는 한국에서 좀비 창궐의 이유, 그리고 좀비를 퇴치할 수 있는 방법 등이 제시되길 기대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반도]는 나의 기대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연상호 감독은 마치 '그런 건 중요한 것이 아니야.'라고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물론 [부산행]의 수수께끼를 아예 무시한 것은 아니다. 영화 초반 해외 뉴스 화면에서 한국에서 좀비 창궐이 어느 바이오 회사에서 비롯되었다며 토론을 하는 장면이 나왔고, 좀비가 빛과 소리에 반응하고 어둠에 약하다는 특성도 제시가 되었다. 좀비 창궐의 원인을 제공한 바이오 회사의 연구 자료와 어둠에 약한 좀비의 특성을 이용한다면 좀비 퇴치가 가능할지도... [반도]에서는 그 정도의 단서만 제시했으니 만약 3 편이 나온다면 누군가 한국 재건을 위해 바이오 회사에 침투하여 연구 자료를 찾아내고, 대대적인 좀비 퇴치 작업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아쉽지만 [반도]에서는 그러한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반도]는 내가 영화를 보기 전 기대했던 두 가지 중에서 [부산행]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재미라는 한 가지만 만족시킨 영화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여전히 무시무시한 좀비와의 사투, 그리고 극악무도한 631 부대의 만행과 어떻게든 살아서 한국을 벗어나야 했던 정석 일행의 힘겨운 여정 등이 1시간 56분의 러닝타임 동안 숨 가쁘게 진행된다. 마지막 김 노인(권해효)의 활약이 조금 뜬금없긴 했지만 그래도 [반도]는 [부산행]을 잇는 K 좀비 영화의 맥을 잇기에 충분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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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이곳도 지옥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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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준은 이런 말은 한다. 이곳도 그렇게 지옥은 아니었다고... 나는 그 한마디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좀비가 창궐한 세상, 살아남은 사람들은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생지옥과도 같은 곳에서 자란 준과 유진은 오히려 그곳에서 행복했다고 말한다. 왜일까? 영화 초반 정석이 준과 유진에게서 구출이 되는 장면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준과 유진은 마치 재미있는 놀이를 하듯이 요리조리 좀비를 물리치며 정석을 자신들의 아지트로 데려온다. 아지트에는 그들의 보호자인 엄마 민정(이정현)이 있고, 조금 정신이 나간 듯하지만 준과 유진을 보물이라 부르는 김 노인이 있다. 그래서 준과 유진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반면 좀비를 피해 홍콩으로 피난을 가는데 성공한 정석과 철민에게 있어서 홍콩은 그야말로 생지옥과도 같다. 사랑하는 누나와 조카를 좀비에게서 구하지 못한 정석은 그들이 죽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철민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내와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구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은 정석을 원망하는 것 외에 철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비록 홍콩은 좀비가 없는 안전한 땅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그곳에서 정석과 철민은 죄책감과 원망만 안은 채 스스로를 지옥 안으로 내동댕이 쳤다. 결국 지옥은 좀비가 창궐한 세상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혼자가 된 세상인 것이다.

그렇기에 준과 유진은 민정 없이는 한국을 떠나는 것을 거부한다. 민정 없이 안전한 곳으로 떠나봤자 그곳은 지옥이 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함으로써 느끼게 된 지옥을 경험한 정석이 민정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장면 또한 마찬가지이다. 영화 후반 난데없는 신파는 이렇게 당위성을 얻는다. 나 또한 영화가 끝난 후 복통으로 지옥을 맛보았지만 퇴근하고 돌아온 아내의 정성스러운 간호 덕분에 거짓말처럼 복통이 사라지고 지옥에서 벗어났다. 조금 진부하지만 역시 사랑하는 가족의 힘은 대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