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아기 엄마, 부대로 가봐야겠어, 얼른. 아기 아빠가… 자살을 했대.”
“예? 뭐라고요?”
부대까지 무슨 차를 타고 어떤 걸음으로 달려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편이 죽었다는 말이 허공에 둥둥 떠다녔고 내 몸에 와 닿지 않았다.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남편을 묻으며 시댁 식구들은 “너 때문에 죽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나도 나 때문이라고, 내가 재수 없는 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남편을 보내고도 나는 곧장 옷가게로 출근했다. 딸과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감정을 추스르는 데 시간을 쓸 여유가 없었다. 먹먹한 가슴과 달리 현실은 바쁘게 나를 떠밀었다. 나는 더욱더 미친 듯이 일했고,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
“쟤가 그렇게 일을 잘한다며?”
남대문시장에서 나의 이름은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졌다. 43킬로그램의 마른 몸이었지만 나는 옷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훨훨 날아다녔고, 화장실 갈 기간, 식사 시간을 줄여 가며 일을 했다. 내가 기를 쓰고 하루를 살아 내면 우리 가족은 밥다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우리 가게 매출이 껑충껑충 올라가고 단골이 늘어 가자 옆 매장들은 시샘과 부러움이 섞인 눈으로 우리 가게를 지켜보았다. 어느날 앞집 가게의 언니가 명동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는 사장님을 소개해 주었다. 캐주얼복을 만들면서 가게 장사를 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나는 월급을 두 배로 받고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개미처럼 열심히 벌어서 몽땅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면, 어머니는 일수를 놓거나 계를 하고 부동산을 매입하는 등 여왕개미처럼 그 돈을 잘 불려 주었다. 마침내 우리 가족은 무허가 반지하집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1989년에는 독립해서 내 가게를 열었다. 내 생애 첫 사업이었다. 게게는 입소문을 타고 찾아오는 손님이 줄을 이었고, 소위 ‘대박행진’을 이어갔다.
“아파트나 빌딩을 청소하고 관리해 주는 일이에요. 처형과 함께 하면 성공할 자신이 있어요. 같이 해보실래요?”
강남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는 것으로 목격한 셋째 제부는 새롭게 생겨나는 아파트와 빌딩을 관리하는 사업을 제안했다. 어머니는 집을 대출받아 사업자금을 마련해 주었다. 나는 낮에 청소용역 일을 하고 밤에는 남대문에서 장사를 하는 투잡을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청소용역 일이 빠르게 자리 잡으면서 남대문 가게를 친구에게 맡기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청소용역업은 남대문 옷장사와 여러모로 달랐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발로 뛴 만큼 효과가 바로바로 나타났다. 아파트와 빌딩 건설 붐까지 맞물려 사업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남대문 점원부터 시작했던 열일곱 살 꼬마, 스물둘에 과부가 되었던 내가 회사를 차리고 성공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결코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다. 집안이 가난하고 머리도 똑똑하지 않았지만, 천만다행으로 나는 어떤 일이 닥쳤을 때의 대처능력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 남들은 최소한 몇 개월간 고민할 일도 앉은 자리에서 결정하곤 한다. 13년간 옷장사를 천직으로 알고 지내던 내가 청소용역업이라는 사업으로 방향전환을 할 때에도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 나는 변화를 낯설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신에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느라 쓰는 시간을 나는 실행하는데 썼다. 나의 결정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매일 한 걸음씩 내디뎠다. 빠른 판단과 실행력으로 붙잡은 ‘타이밍’, ‘촉’이라는 감각,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매일의 ‘최선’,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편이 죽은 후 내 인생은 다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막상 고통을 겪으며 살 때는 그것이 사람을 성장시켜 준다는 이야기가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살다보니 정말 다른 길이 있었다.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길은 여러 갈래였다. 그래서 인생이 끝났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다.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인생이고,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게 인생이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고, 하나의 문이 닫히면서 다른 하나의 문은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