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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구찌] -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동화 같은 결말이 끝나고 나면 벌어질지도 모를 일
13  쭈니 2022.01.21 14:27:07
조회 126 댓글 2 신고

감독 : 리들리 스콧

주연 : 레이디 가가, 아담 드라이버, 자레드 레토, 알 파치노, 제레미 아이언스, 셀마 헤이엑

정말 '신데렐라 스토리'는 해피엔딩으로 끝날까?

가난한 여성이 모든 역경을 딛고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이다. 서양의 전래동화인 <신데렐라>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콩쥐팥쥐>, <심청전>, <춘향전>등 사랑을 통해 신분 상승을 이끌어 내는 여성의 이야기가 꽤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과거, 남성 중심의 신분제 사회에서 신분이 낮은 여성이 이룰 수 있는 성공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신데렐라 스토리'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렸을 적에 <신데렐라>를 읽었던 나는 당연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의문을 품었다. 과연 평민 출신의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분명 결혼 후에 그들이 넘어야 할 편견의 벽은 어마 무시할 텐데,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는 결혼만 하면 모든 것이 원만하게 해결된다는 듯이 결혼과 동시에 끝나 버린다. 정말 그럴까? 어렸을 적에 그러한 의문을 품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니 의문은 확신이 되었다. 그들은 결혼하기 전에 겪었던 수많은 문제들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훨씬 심각하고 다양한 문제들과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과연 그러한 문제들을 뚫고 서로의 사랑을 지켜나가는 진정한 동화 속의 주인공은 몇이나 될까?

현실판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다이애나 스펜서만 봐도 알 수 있다. 결혼 당시 갓 스무 살이었던 그녀는 영국 제1 왕위 계승자인 찰스 왕세자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불행한 결혼 생활 끝에 파경을 맞이했고, 다이애나 스펜서는 1997년 8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며 현실판 '신데렐라 스토리'는 비극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녀의 비극은 2014년 국내 개봉한 [다이애나] 그리고 올해 개봉이 예정되어 있는 [스펜서]를 영화화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도 현실판 '신데렐라 스토리'의 비극적 결말을 담고 있다. 단, 이 영화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은 '신데렐라'가 아닌 왕자라는 점이 특이할 뿐이다.

구찌 왕국에 입성한 여성

사실 나는 명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물론 그것은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평범한 남자들이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도 구찌라는 상품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있다. 그 정도로 구찌는 명품을 대표하는 브랜드이다. 운송업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는 파트리치아 레지아니(레이디 가가)가 파티장에서 우연히 만난 마우리치오 구찌(아담 드라이버)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녀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마치 첫눈에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녀는 마우리치오가 아닌 구찌라는 그의 성에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다. 이후 파트리치아는 노골적으로 마우리치오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그녀가 원했던 대로 사랑을 쟁취한다.

하지만 그녀에겐 넘어야 할 벽이 많다. 우선 마우리치오의 아버지인 로돌프 구찌(제레미 아이언스)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러나 로돌프는 파트리치아가 구찌 가문의 돈을 보고 접근했다고 의심하며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한다. 결국 마우리치오는 집을 나오게 되고, 파트리치아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며 조졸한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하게 신다. 만약 여기에서 영화가 끝이 난다면 신분의 차이를 극복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끝을 맺을 것이다. 특히 구찌라는 이름을 포기하고 파트리치아의 아버지 일을 도우며 소소한 행복에 겨워하는 마우리치오의 모습은 돈 많은데 소박하기까지 한 왕자라는 완벽한 모습을 만들어 낸다.

문제는 마우리치오의 삼촌인 알도 구찌(알 파치노)가 마우리치오와 파트리치아에게 손을 내밀면서부터이다. 허영심만 가득한 자신의 아들 파올로 구찌(자레드 레토)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알도는 마우리치오에게 자신의 사업을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파트리치아는 주저하는 마우리치오를 설득한다. '지금도 행복한데 왜 우리의 삶을 바꿔야 해?'라고 묻는 마우리치오에게 임신했음을 밝히는 파트리치아의 전략은 그대로 맞아떨어졌고, 자신의 딸에게 좀 더 나은 미래를 안겨주기 위해 마우리치오는 알도의 손을 잡고 구찌 가문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리고 비극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무속인이 끼어들면 이런 어이없는 비극이 일어난다.

구찌 가문의 비극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영매 술사인 피나 아우리엠마(셀마 헤이엑)의 등장이다. 피나의 첫 장면부터가 현실과 동떨어져있다. 늦은 밤 TV를 보던 파트리치아는 피나의 TV 광고를 보게 되고 즉석에서 전화를 건다. 그런데 TV 광고 속의 피나가 파트리치아의 전화를 받는다. 그럼으로써 TV 속의 피나와 현실의 파트리치아는 전화로 대화를 나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 마치 현장에서 구찌 가문의 비극을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생생한 현장감을 강조했는데, 피트리치아와 피나가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만큼은 현실 감각을 무너뜨리고 몽환적으로 그려 낸다. 이후 피나는 점괘를 통해 파트리치아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고 파트리치아는 피나의 조언을 바탕으로 구찌 가문을 하나씩 무너뜨린다.

물론 그 모든 것을 파트리치아와 피나의 잘못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처음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마우리치오는 결국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삼촌인 알도를 분식 회계 혐의로 고발하고, 사촌인 파올로의 구찌 지분도 빼앗는다. 하지만 그러한 가족끼리의 분쟁을 부추긴 것은 명백히 파트리치아이고 그 뒤에서 파트리치아를 조종하는 것은 피나이다. 결국 마우리치오에게 이혼을 당한 파트리치아는 마우리치오를 살해할 결심을 하고, 그녀의 살인 계획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운 것 역시 피나이다. 그 결과 파트리치아는 29년형을, 피나는 25년형을 선고받았다고 하니, 파트리치아와 피나의 만남은 모두에게 비극만을 안겨준 셈이다.

어디에서 많이 본 풍경 아닌가? 최근 유력 대통령 후보의 무속인 스캔들이 일어났다. 그 후보는 자신은 몰랐다고 열심히 발뺌을 하나 본데, 정황상 그것은 거짓말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유력 대통령 후보의 부인까지 그 스캔들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최첨단 과학의 시대에서 아직도 이렇게 비과학적인 무속인 스캔들이 나오는 것은 스스로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에 의한 결과이다. 파트리치아는 자신이 가질 모든 것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피나의 점괘에 기댄 것이라면, 워낙 저지른 죄가 많은 유력 대통령 후보와 그의 처가는 대통령이 되지 못하면 구속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무속인을 선거 캠프에 불러들인 것은 아닐까? 그 결과는 [하우스 오브 구찌]에 잘 나와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 또한 [하우스 오브 구찌]처럼 비극으로 치닫게 되지 않기를...

욕심은 욕심을 부를 뿐이다.

물론 비극의 주체는 파트리치아를 비롯한 구찌 가문이다. 피나는 그러한 비극에 살짝 부채질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피나의 부채질은 구찌 가문 전체를 활활 타오르게 만들 정도로 화력이 강력했다. 그리고 그러한 화력을 만들어낸 불씨는 파트리치아와 마우리치오에게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파트리치아와 마우리치오가 구찌 가문을 집어삼킬 야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 초반 그들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일상에 만족하기도 했다. 하지만 알도가 마우리치오를 사업에 끌어들이면서 그들은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욕심은 또 다른 욕심을 불렀고, 점점 커져 버린 욕심은 그 무엇도 채우지 못한 채 모두를 활활 태워 버렸다.

그 과정을 보자. 마우리치오는 반강제로 구찌 사업에 참여한다. 하지만 파트리치아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현 상황에서 구찌는 알도의 것이었으니까. 구찌가 마우리치오의 것이기를 바랐던 파트리치아는 먼저 알도의 약한 고리인 파올로를 공략하여 알도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혼자 남은 파올로의 지분을 확보하고, 감옥에서 출소한 알도의 지분까지 빼앗는데 성공한다. 이제 구찌는 파트리치아가 원했던 대로 마우리치오의 것이 되었다. 그러자 파트리치아의 욕심이 이번엔 마우리치오에게 옮겨붙는다. 마우리치오는 파올라 프란치(카미유 코탱)과 내연 관계를 맺으며 파트리치아를 내쫓는다. 파트리치아와 이혼에 성공한 마우리치오는 파올라와 초호화 생활을 즐긴다.

문제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톰 포드를 기용해서 구찌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마우리치오. 하지만 이번엔 그의 욕심이 마우리치오의 최측근인 도메니코 데 솔레(잭 휴스턴)에게 옮겨붙고, 결국 마우리치오 또한 모든 것을 빼앗긴다. 욕심의 불씨가 옮겨가며 모든 것을 불태워버린 꼴이다. 그래서 남은 것은 구찌 가문의 몰락과 마우리치오의 죽음, 그리고 살인범이 된 파트리치아뿐이다. 허망하지 않은가? 모두가 선망하는 구찌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추악한 비극의 모습이...

구찌에는 구찌가 없다.

러닝타임이 무려 2시간 38분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의 러닝타임은 최근 2시간을 훌쩍 넘긴다. 올해 개봉한 그의 또 다른 영화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의 러닝타임도 2시간 32분이었고, 2017년에 개봉한 [올 더 머니]의 러닝타임은 2시간 12분이었으며, 2015년작 [마션]은 2시간 24분,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은 2시간 34분이다. 그가 연출한 영화 중 2시간 이내의 영화를 찾아보니 2013년에 개봉한 [카운슬러]의 1시간 57분이 최단 러닝타임이었다. 그만큼 이 노장 감독은 아주 천천히 이야기의 성을 쌓아가며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일지도...

[하우스 오브 구찌]도 그렇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파트리치아에게도, 마우리치에게도 관객의 감정이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관객은 누구의 편도 아닌 상태에서 이들의 비극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를 지루하게 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은 흥행을 위해 타협하지 않았다. 단지 관객 스스로 구찌라는 전 세계가 흠모하는 명품의 이름 뒤에 가려진 구찌 가문의 비극을 통해 욕심이 어떻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옮겨가며 무너뜨리는지 느끼게 만든다. 노장 감독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관객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한 욕심은 이렇게 모든 것을 망가뜨린단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에서 구찌 회사의 경영진에 구찌 가문의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밝힌다. 영화 초반 가문의 명예를 들먹이며 구찌라는 이름에 대한 자부심에 가득 찼던 그들은 결국 구찌를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긴 채 조용히 잊혔다. 파트리치아가 마우리치오를 죽이지 않았다면 사정이 달라졌을까? 글쎄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2시간 38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사실 감정이입을 하지 않은 채 멀찍이서 지켜만 보기엔 너무 긴 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뭔가 먹먹하다. 구찌 가문이 불쌍해서는 절대 아니다. 그들의 비극은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니까. 그렇다면 나의 먹먹함은 노장 감독의 단호한 교훈이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욕심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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