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겪은 일이다. 어느 날 선임이 나에게 후임 교육을 시키라고 명령을 했다. 그전까지 나는 후임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선임에게 별 이유 없이 얼차려를 당했었고, 내가 선임이 되면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후임 교육을 떠안게 되자 나 역시도 나의 선임과 똑같은 짓을 하고 말았다. 더욱 섬뜩한 것은 나의 말 한마디에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얼차려를 받고 있는 후임의 모습에서 묘한 쾌감이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나 역시 폭력에 중독이 되었구나.

시집살이를 당한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되면 며느리에게 더 독한 시집살이를 시키고, 매 맞고 자란 아이는 부모가 되면 자식에게 매를 든다고 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바로 폭력의 중독이고 악순환이다. 이번에 본 두 편의 영화는 폭력의 악순환을 잘 보여준다. 전쟁 기간 중 독일군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여성의 복수극 [더 시크릿]과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B급 액션 영화 [서바이브 더 나잇]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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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시크릿] - 폭력의 트라우마는 용서를 통해 사라지기도, 복수를 통해 증폭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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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유발 애들러

주연 : 누미 라파스, 조엘 킨나만, 크리스 메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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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붙잡혀 성폭행을 당한 아픔을 가슴속 깊이 숨기고, 군의관 출신의 루이스(크리스 메시나)와 만나 미국에서 가정을 꾸린 마야(누미 라파스)는 15년 전의 악몽 때문에 괴롭지만, 그래도 나름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그토록 잊으려 애썼던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만다. 과거 자신을 성폭행했던 나치 병사가 토마스(조엘 킨나만)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세탁한 후 이웃에 새로 이사를 온 것. 마야는 충동적으로 토마스를 납치하고 루이스의 도움을 받아 지하에 감금한다. 하지만 토마스는 자신이 스위스 사람이며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루이스는 누가 진실을 이야기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마야는 15년 전 그날의 진실을 알고 싶다며 토마스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면 풀어주겠다고 제안하는데...

인류 역사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행된 폭력은 최악 중에서도 최악으로 기록될 것이다. 특히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는 유대인을 비롯하여 무고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 마야는 루마니아의 집시 출신으로 나치 수용소에 2년이나 잡혀 있다가 겨우 탈출하지만 도주 도중 나치에 붙잡혀 자신은 성폭행을 당하고 여동생은 죽음을 당하는 아픔을 겪는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이 동생을 남겨 두고 혼자 도망쳤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뿐이다. 마야가 토마스를 납치한 것은 복수심도 있지만, 그날의 진실을 알고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마스는 끝까지 자신은 스위스인이며 나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정말 마야의 기억은 맞는 걸까? 마야는 15년 전의 사건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고, 과거 마야를 치료한 의사들조차 트라우마로 인하여 기억이 조작될 수도 있다고 조언을 한다. 루이스가 느끼는 혼란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혼란이 된다. 영화에서 루이스는 일단 마야를 믿고 도와주지만, 그러는 한편 토마스가 정말 나치였는지에 대한 조사도 병행한다.

[더 시크릿]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1995년 국내 개봉했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시고니 위버의 진실]이다. 이 영화는 남미의 한 나라를 배경으로 군사 독재 정권에서 비인간적인 고문을 받았던 파올리나(시고니 위버)가 15년 전 자신을 고문했던 미란다(벤 킹슬리)를 만나 납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더 시크릿]이 [시고니 위버의 진실]을 리메이크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두 영화의 설정은 비슷하다. 물론 [더 시크릿]은 제2차 세계대전을, [시고니 위버의 진실]은 남미의 군사 독재 정권을 폭력의 시작으로 규정했지만, 한 여성이 비인간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오랜 세월 트라우마로 고생하다가 복수를 한다는 점은 같다.

그렇다면 결말은 어떨까? [시고니 위버의 진실]에서도 [더 시크릿]과 마찬가지로 미란다는 자신이 15년 전 파올리나를 고문했던 의사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미란다의 남편 헤라르도(스튜어트 윌슨)도 미란다의 말을 100% 믿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미란다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파올라나에게 낱낱이 고백하며 용서를 빌고, 타올라나는 그러한 미란다를 용서함으로써 15년간 자신의 삶을 짓눌렀던 트라우마에서 해방된다. [더 시크릿]도 비슷한 전개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루이스가 돌발 행동을 함으로써 결말은 180도로 달라진다.

그렇기에 [더 시크릿]의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전까지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것은 마야였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마야는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이다. 대신 루이스의 표정은 어둡고 무겁다. 아마도 마야는 토마스를 용서함으로써 파올리나가 그랬듯이 트라우마에서 해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노를 참지 못한 루이스는 새로운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이다. 폭력이란 그런 것이다. 당한 사람도, 저지른 사람도 똑같이 영혼을 갉아먹는다. 그렇기에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던 [시고니 위버의 진실]과는 달리 [더 시크릿]은 찝찝함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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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브 더 나잇] - 살인에 중독된 멍청한 범죄자의 전형을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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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맷 에스칸다리

주연 : 브루스 윌리스, 채드 마이클 머레이, 시어 버크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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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사고로 파산한 의사 리치(채드 마이클 머레이)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부모님이 살고 있는 외딴 농장으로 돌아온다. 누나의 도움으로 마을 병원에 일자리를 얻지만 아버지 프랭크(브루스 윌리스)와의 사이는 냉랭하기만 하다. 한편 제이미(시어 버크너)와 매트(타일러 존 올슨) 형제는 사람을 죽이고 거금을 훔쳐 멕시코로 도망을 치던 중 잠시 들린 휴게소에서 싸움에 휘말려 매트가 다리에 총상을 당한다. 치료가 필요한 그들은 마을 병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리치를 미행하여 그의 집에 쳐들어가 가족을 인질로 잡고 매트의 치료를 강요한다. 전직 보안관인 프랭크는 치료를 무사히 끝마친다고 해도 그들이 가족을 살려두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고 조용히 반격을 준비한다.

한때 [다이하드]를 통해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블록버스터 액션 스타로 군림했던 브루스 윌리스는 최근 들어서 B급 액션배우로 추락한 것 같다. 그렇기에 매년 꾸준히 영화를 찍지만 그의 이름을 믿고 선택한 영화들은 어김없이 실망을 안겨준다. 안타깝게도 [서바이브 더 나잇]도 그중의 한 편이다. 단란한 가정에 침입한 범죄자라는 B급 액션, 스릴러 영화의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는 별다른 특별함 없이 답답한 전개만 보여주다가 1시간 30분 만에 서둘러 끝낼 뿐이다.

[서바이브 더 나잇]에서 가장 답답한 캐릭터는 형제 범죄자 중 동생인 제이미이다. 영화에서는 매트와 제이미 형제의 과거, 그리고 첫 번째 범죄를 송두리째 생략해 버린다. 단지 두 사람의 대화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첫 번째 범죄에서 반항하는 피해자를 제이미가 살해했다. 매트는 동생인 제이미에게 더 이상의 살해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하지만 한번 살인에 맛이 들린 제이미는 휴게소에서 또다시 살인을 저지른다. 만약 매트의 계획대로 조용히 멕시코 국경을 넘었다면 그들의 첫 번째 범죄는 성공을 거두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이미가 불필요한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르는 바람에 모든 일이 꼬여 버린다.

프랭크의 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찌 되었건 그들은 리치의 치료가 필요하다. 리치가 치료를 거부한다면 총상을 입은 매트는 과다출혈로 사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매트는 제이미에게 또다시 신신당부한다. 절대로 살인은 안된다고... 하지만 제이미는 우발적으로 프랭크의 아내를 죽이는 세 번째 살인을 저지름으로써 또다시 모든 일을 꼬이게 만든다. 이미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리치가 순순히 매트를 치료할 리가 없고, 아내의 죽음을 목격한 프랭크의 분노 게이지만 최대치로 높여 놓은 꼴이 되었다. 영화에서 매트가 가장 많이 하는 대사는 '더 이상 살인은 안돼'이고, 제이미가 가장 많이 하는 대사는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겠어.'이다. 이 얼마나 한심한 조합이란 말인가.

결국 제이미는 폭력에 중독된 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첫 번째 살인은 어렵지만 두 번째 살인은 쉽다고 한다. 이건 딱 제이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제이미가 휴게소에서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 조용히 물건을 사들고 나왔다면 리치의 집에 침입할 필요도 없고, 프랭크의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면 어쩌면 매트를 치료를 받고 멕시코로 도주를 이어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폭력에 중독된 제이미가 자처한 것이며, 그래놓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폭력을 휘두르다가 최후를 맞이한다.

제이미 때문에 처음부터 나의 짜증을 유발한 [서바이브 더 나잇]은 영화 후반 리치의 멍청한 행동으로 또다시 나를 짜증 나게 했다. 아내와 딸을 잘 숨겨 놓고, 멍청하게 제이미를 아내가 숨어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꼴이라니... 진심으로 이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영화를 보며 욕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따위 멍청한 캐릭터가 난무하는 영화라면 어쩔 수 없다. 이젠 너무 늙었는지 브루스 윌리스의 활약도 미미하고, 전개는 답답하고, 암튼 이 영화는 브루스 윌리스의 실망스러운 B급 영화 중 한 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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